‘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구상나무는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을 간다”고 말했다. 긴 수명 때문에 살아선 100년 동안, 죽어서는 고사목의 아름다움이 100년간 이어진다는 뜻이다.
“구상나무는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을 간다”고 말했다. 긴 수명 때문에 살아선 100년 동안, 죽어서는 고사목의 아름다움이 100년간 이어진다는 뜻이다. / 국립공원공단

시사위크=설공원 기자   지난 5월 제주도 친환경 에너지 발전소 현장 취재를 나섰을 때였다. 소나무와 유사한 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발전소 직원 A씨는 기자에게 이 나무를 ‘구상나무’라고 소개하며, “구상나무는 살아 백년, 죽어 백년을 간다”고 말했다. 긴 수명 때문에 살아선 100년 동안, 죽어서는 고사목의 아름다움이 100년간 이어진다는 뜻이다.

‘구상나무(Abies koreana)’란 높은 산에서 서식하는 상록침엽교목의 일종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서식하는 고유식물종 중 하나다. 현재 국내서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서 주로 발견된다. 평균 18m 정도 높이까지 자라며, 원통형의 열매가 9~10월 성숙해 자라난다. 가장 큰 특징은 선형의 뾰족한 잎으로, 어린 가지에 난 잎은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잎은 침엽수 중 특히나 아름다워, 세계적으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에 애용되기도 한다.

A씨가 말한 ‘살아 백년’이라는 말처럼 구상나무의 수명은 긴 편이다. 학계에 따르면 생물학적 한계수명은 약 150년 정도다. 구상나무가 속해있는 침엽수종치고는 긴 수명은 아니지만, 100년 이상 살 수 있는 장수 식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살아남아 천수를 누리는 구상나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의 평균 수명은 64년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리산, 제주도 등 서식지에선 허옇게 죽어버린 구상나무 고사목이 즐비하다. 특히 지리산의 경우, 반야봉 일대 구상나무 숲 절반 이상이 고사했다. 심한 곳은 90%까지 집단 고사가 일어났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의 평균 수명은 64년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리산, 제주도 등 서식지에선 허옇게 죽어버린 구상나무 고사목이 즐비하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내에 서식하는 구상나무의 평균 수명은 64년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리산, 제주도 등 서식지에선 허옇게 죽어버린 구상나무 고사목이 즐비하다. 사진은 기후변화, 마름병 등의 원인으로 고사한 제주 한라산 구상나무들./ 국립산림과학원 

◇ 높아지는 기온에 죽어가는 ‘구상나무’

‘살아 백년’이라던 구상나무가 이처럼 인간보다도 짧은 생을 마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학계에 따르면 아직까지 완전한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가 구상나무의 수명을 감소시키는 주요인이라고 꼽는다. 최근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 현상이 서늘한 곳에서 살아가는 구상나무에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 지구 지표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1C° 상승했다. 오는 2040년엔 지구 온도가 1.5C° 이상 높아진다.

온도가 높아지면 구상나무의 생존 능력이 감소한다는 연구결과도 존재한다. 지난 2006년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진은 한라산의 윗세오름, 영실(윗세오름과 영실사이), 진달래밭 등 3개 지역에서 구상나무의 광합성능력과 수분이용효율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구상나무는 서늘한 온도에서 광합성이 잘 이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환경부 연구진들은 “일반적으로 구상나무의 광합성능력은 서늘한 15°C일 때가 20°C, 25°C일 때 보다 높았다”며 “특히 몸이 약한 구상나무 개체군의 경우, 온도가 높은 6월과 8월에 광합성능력이 감소했으며, 가을철인 9월이 되자 광합성 능력은 다시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는 구상나무에게 치명적인 병원균 확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는 구상나무에게 치명적인 병원균 확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진은 제주도 산굼부리에서 기자가 촬영한 구상나무의 모습. / 시사위크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는 구상나무에게 치명적인 병원균 확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한다. 기온상승으로 포몹시스균, 발사균 등의 확산이 빨라지면서, 구상나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줄기마름병’ 등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확산이 가속화되고 있는 진균성 병원체 ‘눈곰팡이(Racodium therryanum)’는 제주 한라산에 서식하는 구상나무의 회복력을 저해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온 상승은 구상나무에게 치명적인 새로운 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4월 5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발표한 ‘제22호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라산 영실 병풍바위 일대 구상나무에서는 ‘잎녹병’이 국내 최초로 발견됐다. 잎녹병에 걸린 구상나무는 새로 자란 어린 잎을 잃어, 쇠약해지거나 죽을 수 있다.

세계유산본부 연구진은 “구상나무림의 동태에서 갖는 중요성을 새롭게 평가하기 위해선 마름병과 잎녹병 등 구상나무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수목병의 발생과 분포를 폭넓게 조사하고 실제적 위험도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멸종위기의 구상나무, 산림생태계 건강의 ‘핵’

이 같은 다양한 환경 파괴 요인들로 구상나무는 현재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분류 목록인 ‘레드리스트(Red List)’에서 구상나무의 등급은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된다. 이 등급은 자연 서식 개체수가 매우 적어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종에게 주어지는 등급이다. 우리가 흔히 멸종위기종으로 알고 있는 ‘자이언트 판다(VU단계)’보다 구상나무가 더 큰 위험에 처한 셈이다.

 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분류 목록인 ‘레드리스트(Red List)’에서 구상나무의 등급은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된다.
IUCN이 발표한 멸종위기종 분류 목록인 ‘레드리스트(Red List)’에서 구상나무의 등급은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된다. 지리산 세석 근처에서 촬영된 구상나무 꽃의 모습./국립공원공단 

더욱 심각한 것은 구상나무의 멸종은 곧 그 지역 생태계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구상나무의 열매와 잎은 여러 곤충들의 먹이가 된다. 국립생태원이 201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라산 남벽 일대에는 구상나무 열매를 먹고 자라는 ‘큰솔알락명나방’과 ‘톡토기’가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때 톡토기는 작은 절지동물의 일종으로, 식물질병을 막아주고, 다량의 유기물을 분해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국립생태원 연구팀이 찾은 톡토기는 털보톡토기목(Entomobryomorpha) 마디톡토기과(Isotomidae) 강화마디톡토기속(Anurophorus)으로 국내선 처음 발견된 종이다.

구상나무의 존재는 산림 생태계 토양 건강과도 직결된다. 구상나무에서 나오는 수액 등이 토양을 영양지게 만들어주는 미생물들의 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재호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팀,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팀이 올해 1월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구상나무의 폐사는 토양 내 서식하는 ‘마이크로바이옴’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인간, 동·식물, 토양, 바다, 호수, 암벽, 대기 등 모든 자연 환경에서 서식하거나 공존하는 미생물군집이다.

공동 연구팀은 국내 구상나무 서식 지역의 토양에서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확보한 후, 구상나무 건강에 따른 미생물 조성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구상나무의 고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무당버섯(Russula), 곤약버섯(Sebacina), 페놀리페리아(Phenoliferia) 등 토양 공생 균류의 다양성 및 생존률이 크게 떨어짐을 확인했다.

공동 연구팀은 “구상나무의 죽음은 토양 영양분 농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구상나무가 고사한 지역의 토양은 오산화 인(P₂O₅) 및 칼륨 이온(K)과 수분 함량 농도가 낮아 버섯 등 균류와의 공생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산림 생태계의 건강 유지와 종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국내선 정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구상나무 복원사업이 이뤄진고 있다.
산림 생태계의 건강 유지와 종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국내선 정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구상나무 복원사업이 이뤄진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에서 유전자 식별표지(DNA 마커)를 이용해 선발한 우수한 유전자의 구상나무 7년생 유묘들. / 국립산림과학원

◇ 첨단생명과학기술이 구하는 구상나무

산림 생태계의 건강 유지와 종 보존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국내선 정부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구상나무 복원사업이 이뤄진고 있다. 여러 정부기관들 중, 가장 적극적인 기관은 산림청이다. 산림청은 최근 구상나무 보존과 관련한 여러 가지 연구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2019년 5월 경상남도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과 함께 금원산 구상나무 자생지를 조성했다. 해발 1,300m에 위치한 이 곳에서는 인근 2곳에 구상나무 1,350그루(5년생)가 심어졌다. 그리고 2022년 9월 산림청과 금원산산림자원관리소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에 이식한 구상나무 대부분이 초기 활착에 성공해, 3년 동안 성장을 거듭해 현재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성공적인 구상나무 초기 활착에 성공한 비결은 첨단유전과학기술에 있다. 2021년 3월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에서는 유전자 식별표지(DNA 마커)를 이용해 생존가능성이 높은 우수한 유전자의 구상나무를 선발했다. 그 다음, 이 구상나무 묘목들로 잔존집단 복원시험지를 조성했다. 그 결과, 2020년 기준 어린 구상나무의 생존율이 99%에 달했다. 이후 2022년 기준으론 90% 이상의 구상나무가 건강하게 활착하는데 성공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제주도 한라산에서 국내 환경에 적응한 토종 균근균을 최초 발견했으며, 이를 배양한 후 구상나무 유묘에 토종 균근균을 처리하기도 했다. 국내 토양에서 구상나무 유묘들의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실험 결과, 유묘 생존율은 평균 97%로 무처리(67%)보다 약 1.5배 향상됐다.

아울러 국립생태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는 2020년 구상나무 인공 종자 배양에 성공하기도 했다. 구상나무는 발아율이 50% 정도로 낮은 편이다. 때문에 생태계 복원을 위한 종자 및 유목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공동 연구진은 계절별로 구상나무 종자를 채집한 후, 다양한 배양조건에서 5년 간 연구를 진행해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

구상나무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에 서서히 그 생명과 힘을 잃어가고 있다.
구상나무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에 서서히 그 생명과 힘을 잃어가고 있다. 미래 후손들도 구상나무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구상나무 보전에 힘쓸 필요가 있다./ Pixabay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아쉬운 점은 있다. 구상나무의 심각한 상황에 맞지 않게, 정부에서 구상나무를 공식적으론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고 있진 않기 때문이다. 현재 환경부에서는 구상나무를 ‘관찰종’으로 등재한 상태다. 관찰종은 멸종위기 가능성이 있어, 관리가 필요한 종에게 붙는 등급이다.

국내 환경단체 녹색연합은 “환경부는 구상나무를 멸종위기종에 등재하고 보호 대책을 마련해야한다”며 “기후위기로 죽어가는 구상나무가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구상나무의 집단고사에 대한 담당부처의 조사나 분석은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머나먼 옛날, 원시 부족들이 특별한 생명과 성스러운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던 구상나무는 이후 기독교에서 예수의 탄생을 기리기 위한 ‘크리스마스 트리’로 발전했다. 그러나 구상나무는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에 서서히 그 생명과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후손들도 지금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볼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인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근거자료 및 출처

The death of Korean fir (Abies koreana) affects soil symbiotic fungal microbiome: Preliminary findings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fgc.2022.1114390/full

2023. 01. 12 경북대, 세계유산본부
 IUCN 레드리스트 ‘구상나무(Abies koreana)’
https://www.iucnredlist.org/species/31244/9618913
   
 한라산 구상나무 건전개체와 쇠약개체의 온도변화에 따른 광합성능력과 수분이용효율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0610102400536.page?&lang=ko

2006. 12. 30 국립산림과학원

사라져가는 구상나무 숲, 유전자(DNA) 이력 관리로 복원한다   

2021. 03. 24 산림청
 지리산 구상나무 집단 고사 지도 작성, 기후위기로 인한 집단고사 가속화 확인 돼 
2022. 08. 25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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