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주최·한국주류산업협회 주관 “한국 술 대표하는 이름 찾습니다”
로고 디자인 포함 K-Liquor·K-Suul 등 ‘K-’ 또는 자유형식 10자 공모
여론 “숲 못보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적 사고… ‘K’ 그만 좀”… 수상작 내정 의혹도
주최 측 “K- 쓰지 않아도 돼, 공모전 통해 아이디어 얻으려 기획… 공정한 심사 진행”

국세청과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우리나라 전통주 등 한국산 술의 해외 수출을 돕기 위해 ‘대한민국 술 브랜드 공모전’을 진행한다. 그러나 공모전에 대한 여론은 비판적이다. / 한국주류산업협회
국세청과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우리나라 전통주 등 한국산 술의 해외 수출을 돕기 위해 ‘대한민국 술 브랜드 공모전’을 진행한다. 그러나 공모전에 대한 여론은 비판적이다. / 한국주류산업협회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국세청과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우리나라 술을 해외에 알릴 수 있는 ‘대한민국 술 브랜드 로고 및 명칭 공모전’을 진행하고 나섰으나 비판적인 여론이 적지 않아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국세청이 주최하고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주관한 이번 ‘대한민국 술 브랜드 공모전’은 우리나라 술을 수출할 때 해외 소비자들에게 ‘한국술’, ‘한국산’을 강조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브랜드(CI)를 만들기 위해 기획됐다.

일례로 ‘사케(Sake)’는 일본어로 술(酒)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지만 해외에서는 ‘사케=일본술(니혼슈)’로 굳어져 인지도가 높고 주류 판매점에서는 사케 구역을 별도로 마련하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술의 경우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판단해 이를 보완하려는 게 이번 공모전의 취지다.

공모 주제는 ‘세계에 수출하는 대한민국 술로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독창적 브랜드’로, 브랜드명과 로고를 함께 만들어 제출하면 된다. 브랜드명은 ‘K-○○○’ 형식 ‘K-’ 외 10글자 또는 자유형식 10글자 이내로 한글과 영문 구분을 하지 않고 만들면 된다. K-○○○ 형식의 경우에는 예시로 ‘K-Liquor(케이-리쿼)’, ‘K-Suul(케이-술)’ 등이 가능하며, 예시 작품도 출품이 가능하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누리꾼들은 먼저 공모 작품 기준에 ‘K-○○○’ 형식을 명시한 것부터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유형식 10글자’ 형식으로도 공모가 가능하지만, 공모전을 주최·주관한 측에서 ‘K-’ 형식을 제시하고 있어서 한쪽으로 치우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 공모전과 관련해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K가 통하는 분야는 K-pop(케이팝) 뿐”, “K를 억지로 붙여 만드는 건 부정적”, “그놈의 K, 제발 그만 좀” 등 부정적인 의견이 주를 이뤘다.

또한 이번 공모전 자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했다. 한 누리꾼은 “전통소주나 막걸리 등 개성이 뚜렷한 우리나라 고유의 다양한 술을 하나로 묶어 ‘K-술’로 부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공모전을 기획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숲은 못보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적 사고”, “창의력이 부족하다”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1, 2위 수상작 내정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공모전 주최·주관 측이 제출 내용 부분에서 “우승자는 본인이 출품한 네이밍이 아닌 별도의 네이밍 혹은 예시로 기입한 K-Liquor, K-Suul로 디자인 재작업 요청을 받을 수 있으며, 참가 시 해당 내용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하며 거부 시 수상이 취소 될 수 있다”는 부분을 굵은 글씨로 강조한 대목 때문이다.

국세청이 지난 4월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주류산업협회 등은 대한민국 술을 ‘K-Liquor’ 브랜드로 네이밍해 해외 시장에서 인지도를 제고할 계획이다. / 국세청
국세청이 지난 4월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주류산업협회 등은 대한민국 술을 ‘K-Liquor’ 브랜드로 네이밍해 해외시장에서 인지도를 제고할 계획이다. / 국세청

또한 지난 4월 11일 국세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술을 ‘K-Liquor’로 네이밍해 해외 인지도를 제고할 것”이라며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협업해 K-Liquor 마크 상표 등록을 추진, K-Liquor 포털 구축 등을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국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더라도 ‘K-Liquor’ 또는 ‘K-Suul’ 문구를 1등으로 선정하거나 최종 브랜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수상작 내정 논란은 과거에 진행된 명칭 공모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용산 대통령실’과 ‘용산공원’, ‘부산롯데타워’, ‘논산 탑정호 출렁다리’,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 등이 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4월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긴 대통령 집무실 명칭 공모를 실시했지만, 결국 새로운 이름을 정하지 못하고 임시 명칭이었던 ‘용산 대통령실’을 그대로 쓰게 됐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8월 진행한 부산롯데타워(가칭)에 대한 네이밍 공모전 결과도 1등 수상작에 ‘부산롯데타워’가 선정됐다.

앞서 2021년 1월에는 116년간 미군이 주둔했던 용산 미군기지 터에 조성하는 가칭 ‘용산공원’의 새 이름 공모전을 약 두 달 가까이 진행한 결과 역시 ‘용산공원’으로 결정돼 황당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번 우리나라 술 브랜드 공모전에서도 K-Liquor 또는 K-Suul 중에서 당선작이 나온다면 전시행정이란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세청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 술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없어서 올해부터 우리가 전통주 수출 등을 지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공모전을 준비했다”며 “해외에서 한류 열풍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수출하는 주류에 대해 한국산이라는 것을 표시하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K에 대해 선입견을 갖지 않기 위해 K를 빼고 자유형식 공모도 가능하도록 했으며, 내부적으로도 K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라며 “자체적으로 아이디어 낸 것 중에 K-Liquor나 K-Suul이 있어서 예시로 명시한 것일 뿐, 수상작도 정해둔 것이 아니고 더 좋은 의견이 나오면 그것을 채택하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도 “우리는 특정 술 이름을 만드는 게 아닌 우리 술이 해외에 수출될 때 ‘이 술이 한국에서 만든 술’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대표할 수 있는 CI를 만들고 싶은 것”이라며 “심사는 두 단계에 걸쳐서 공정하게 진행될 것이며, 당선작 문구를 정해두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한편,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 3월 관훈클럽 포럼에서 ‘K-POP 위기론’에 대해 “K라는 단어가 희석돼야 미래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국내에서 우후죽순 생겨나고 한류를 강조하는 접두사로 사용되는 ‘K’를 줄일 필요성에 대해 지적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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