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아침마다 운동장에서 속보로 30여분 걸은 후에 마지막 10분은 뒤로 걷기를 하네. 어디에선가 뒤로 걸으면 앞으로 걷는 능력을 증진시키고, 뇌의 노화를 늦춘다는 글을 읽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1년 이상 뒤로 걷기를 하다 보니 새로운 게 보이기 시작하더군. 뒤로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점점 더 넓어지는 거야. 저 멀리 아주 작게 과거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지난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 어떤 때는 나에게도 조금 낯선 나를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

뒤로 걸으면 두뇌유연성을 증진시키는 신경 화학 물질이 나와 학습 능력과 기억력 향상에 매우 좋다고 하네. 하지만 하체 힘이 약한 사람, 특히 노약자는 피해야 하는 걷기 방식이야. 잠깐 딴생각을 하거나 한눈팔면 넘어져 다치기 쉽거든. 지난 봄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동네 중학교 운동장에서 아침 운동을 마치고 상쾌한 공기에 취해서 언덕길을 어깨춤을 추며 뒤로 걸어 내려오다가 미끄러져 두세 바퀴 돌고 말았네. 겉보기보다는 강한 몸이라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1주일 동안 엉덩이와 허리에 파스 붙이고 끙끙거려야 했네. 비에 젖어 축축한 시멘트 바닥 언덕에서 뒤로 떼굴떼굴 구르고 있는 백발노인 모습,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는가. 그러니 따라하지 말게.

『장자』 잡편 「우언(寓言)」에는 공자(孔子)가 나이 육십에 육십 번 달라졌다는 장자의 말이 있네. 공자는 이전에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갇히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야. 계속해서 비우고, 다시 채우고, 또 다시 비웠다가 채우는 삶, 그게 바로 노년의 내가 따라하고 싶은 삶의 방식일세. 그래서 자주 거울 보면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다짐하고,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네. 그러니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밖에.

지난 몇 년 동안 나에게 일어난 변화들 중 가장 바람직한 건 말수가 적어진 거야. 이순(耳順)의 나이를 지나면서 말을 하기 보다는 그냥 들으려고 노력한 결과이지. 이유가 뭐냐고? 일단 피곤해서야.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두세 시간 쉬지 않고 떠들어도 지치지 않았는데 노인이 되니 말을 많이 하는 것도 피곤하더군.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옆에서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더 힘들고.

게다가 술을 끊으니 말도 함께 줄어들었어.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술이 들어가면 말도 많아지지. 술의 힘을 빌려 허풍을 치기도 하고,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하고, 곧 들어날 게 뻔한 거짓말도 별 부끄럼 없이 하기도 해. 그래서 술자리는 대개 시끄럽지. 웃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마시지. 하지만 술을 끊으니 그런 자리도 함께 사라지더군. 그래서 밤새 폭음을 하고 제정신이 돌아온 다음날 아침, 노자의『도덕경』 제71장의 가르침을 상기하면서 내 자신에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더 이상 없어서 좋아.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 하는 게 병이다(不知知病). 병을 병으로 알 때에만 병이 되지 않는다(夫唯病病 是以不病). 성인은 병이 없다(聖人不病).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에 병이 없다(以其病病 是以不病).”

술자리에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사람들의 말은 술안주 삼아 그냥 들어줄 수 있네. 하지만 막강한 정치와 행정 권력을 가진 사람이 술자리에서 주어들은 지식으로 두루 아는 척 하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될까?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 걸 보면서 권력자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확인하게 되었네. 그런데도 대통령과 그 주위 사람들은 그게 병인 줄도 모르고 있으니 이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야. 노자 말대로 병을 병으로 알아야 병이 되지 않거든.

권력자가 말이 많으면 나라가 망가진다는 걸 잘 보여준 사람이 미국의 전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일세. 재임 시절 무식한 떠버리라는 조롱도 받았지. 그의 막말과 거짓말로 인해 미국의 국제적 위신이 크게 추락했지. 그런데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게 미국의 비극이네. 미국의 민주주의가 큰 병을 앓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앞에서 말한 『장자』 「우언」에는 노자와 양자거의 이야기도 나오네. 어느 날 노자가 양자거를 나무라지. “처음에는 너를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제 보니 안 되겠다.” 스승의 말에 깜짝 놀란 양자거가 왜 그러시냐고 묻네. “너는 눈을 부릅뜨고 오만한 모습을 하고 있구나. 그러니 누가 함께 하려고 하겠느냐? 정말 깨끗한 사람은 오히려 때 묻은 듯 보이고, 정말 본래 모습을 지닌 사람은 뭔가 부족한 듯 보인다.” 양자거는 물론 노자의 지적을 받아들여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지. 우리 대통령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그의 단단한 버팀목인 노인들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