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7월초의 일일 평균기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네. 지난 4일과 7일 세계 평균기온이 각각 17.23도, 17.24도였는데, 지금까지 사상 최고였던 2016년 8월 16일의 16.94도보다 0.3도 정도 높은 수치야. 지난 6월의 월 평균기온도 1991~2020년 평균보다 0.53도 높았는데, 이는 2019년 6월 사상 최고치보다 0.16도 높은 거네. 이런 이상 고온으로 남극해의 빙하가 17% 정도 줄어들어 역사상 가장 적은 수준에 도달했지. 기온이 올라가면 뭐가 문제냐고? 기온이 올라갈수록 공기 중 습기가 많아 집중호우 가능성이 높아지지. 지난 주말(14~16일) 우리나라 곳곳에 쏟아진 ‘극한호우’보았지? 그게 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나타나는 기상이변의 결과야.

그런데도 아직 기후위기를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네. 그러니 코로나19 팬데믹 때 잠시 줄어들었던 해외여행객이 벌써 이전 수준을 회복할 수밖에. 2020년 한국인들의 1인당 탄소배출량은 11.66톤으로 호주(15.37t), 미국(14.24t), 캐나다(14.20t)에 이어 4번째로 높네. 세계 평균이 4.47톤이니 약 2.6배 높아. 한국인들이 그만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는 뜻이야. 참고로 중국은 7.41톤이고 북한은 1.14톤이야. 문제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급격한 증가로 2030년에 세계에서 가장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국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야. 그래도 부끄럽지 않다고?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알게 된 스웨덴어가 하나 있네. 2018년 스웨덴에서 비행기 타는 걸 자제하자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생긴 단어 ‘플뤼그스캄(flygskam)’인데, 영어로는 ‘flight shame’이라고 해. ‘비행 수치’, ‘수치스러운 비행’ 정도로 변역될 수 있는 말이지. 비행기를 타고 하는 여행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너무 많아서 부끄럽다는 뜻이야. 실제로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 가운데 기후에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항공여행일세. 그 다음이 쇠고기 많이 먹는 거고. 그래서 기후운동이 활발한 유럽에서는 항공여행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네. 독일인들의 약 44%가 비행기로 여행하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는 조사도 있는 걸 보면 유럽인들에게는 비행 수치가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된 것 같네. 그래서 프랑스는 비행기로 2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에는 공항 신설을 규제하는 법도 만들었지. 전국 방방곡곡에, 심지어 울릉도와 흑산도 같은 섬에까지 공항을 만들려고 하는 우리와는 너무 차이가 있지 않는가? 기후위기 시대에 정말 부끄러운 일일세.

“내가 뮌헨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날아갈 때 평균적인 아프리카인이 1년간 소비하고 생활하면서 내보는 것보다 2배나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독일에서는 매일 6만 5,000명의 승객이 비행기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고, 2019년에는 4,710만 명 이상이 국내 여행에서 항공편을 선택했다. 그 대다수는 쓰레기 분리수거에 열심이고 그레타 툰베리에게 호감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국내선 비행기를 단 한 차례 이용했을 뿐인데 – 베를린과 뮌헨 간 비행에서 약 122㎏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 다회용 컵 사용, 자전거 타기, 지역 제품 구매 및 LED 전구 사용 등으로 달성한 탄소 감소가 일시에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독일의 저널리스트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가 지은 『텀블로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이라는 책을 보다가 저 단락(93쪽)을 읽고 나도 영원히 비행기 타는 걸 포기하기로 했네. 물론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지. 제주 올레 걷기를 위해 1년에 1,000km 정도의 비행은 해도 괜찮지 않을까 혼자 고민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지구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는지를 잘 알고 있기에 내 탄소발자국부터 먼저 줄이기로 결심했네. 미국에 있을 때 뉴욕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에서 보았던 환경미술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말이 머리에 자꾸 떠올라 망설이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고.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보고 싶은 것 다 보고, 가고 싶은 곳 다 다니면서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지금 현재 없네.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내 사랑하는 다섯 손자손녀들의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할아버지가 저탄소 생활양식을 선택한 거지.

며칠 전 아시아나 항공이 국내 항공사 가운데 맨 처음으로 ‘기후악당 자책감을 느끼는 여객기 이용객’을 위해 탑승객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탄소 상쇄 프로그램을 올해 말부터 운영한다고 발표했더군. 세계 최대 탄소배출 항공사(KAL)를 가진 기후악당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비행기 타는 게 결코 마음 편한 여행이 아니라는 걸 의식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야. 하지만 그런 ‘오프셋(offset)이 무서워 비행기 여행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날까? 쇤부르크는 ‘탄소 상쇄’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의 돈으로 신흥 부자를 만드는 속임수일 뿐이라고 비판하네. “탄소 상쇄라는 도덕적으로 수상한 면죄부를 사는 꼴이다. 그 목적은 높은 구매력을 가진 인간의 양심을 달래는 데에 있다. 이제 사람들은 전처럼 끊임없이 세계 곳곳을 제트기로 돌아다닐 수 있다. 면죄부를 산 사람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서둘러 카리브해로 떠나는 다음 비행편을 예약한다.”

맞는 말 아닌가? 탄소 상쇄 프로그램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속임수일 뿐이야.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모두가 함께 각성하지 않는 한, 미국식 삶의 방식을 지양하지 않는 한,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지 않는 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비는 처음’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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