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도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전공 겸임교수
 한문도 연세대학교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전공 겸임교수

지난 7월 4일, 정부가 역전세난 심화를 막기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을 위한 대출 규제를 7월말부터 1년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빚내서 집사라”에서 “빚내서 집 팔지마라”는, 자유시장경제 기본원칙에 반하며 동시에 진행되는 이러한 정책이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금융기관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이건 임대인과 임차인을 가리지 않고 빚을 늘리는 정책 아닌가?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왜곡된 시장을 만들고, 미시적으로 보면 금융기관의 수익을 증대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정책이 정부의 의도대로 임대차 시장, 나아가 한국주택시장에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시장의 경착륙과 금융으로의 위기 전이 등을 막기 위한 국가의 불가피한 정책이라는 대명제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국가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그 정책의 결과가 일부계층에 수익을 제공한다면, 이는 국가와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만행위가 아닌지 되새겨 보아야 한다. 역전세 위험에 대비한 정부의 대출규제완화 정책은 그만큼 시장에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최근 주택시장은 하락하던 가격이 바닥을 찍고 상승 반전했다는 언론 보도가 늘며 시장참여자들에게 혼돈을 주고 있다. 주택가격이 하락을 멈추고 회복 혹은 상승했다는 보도가 계속되면 통상적으로 매매매물은 감소하거나 급감하는 게 전형적인 시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매매 매물이 계속 증가하고 전세가격은 하락하며 통상적인 시장과 다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장참여자들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향후 부동산 시장에 대해 상승 기대보다 하락 우려의 심리가 더 강한 것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역전세난 속에 하반기 입주물량이 쏟아지면서 추가적인 하락 조정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 소유주들의 심리가 7개월째 매물 증가 현상을 낳고 있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시장상황 속에서 역전세난을 대비한 정부의 시장대책이 나오게 된 데에는 최근 발표된 ‘전세위험가구 103만호’라는 한국은행 경제전망보고서의 경고가 컸다고 본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깡통전세와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이 각각 1.3%와 48.3%였고, 비수도권은 각각 14.6%와 50.9%였다. 

정부의 대책은 전세보증금 보호조치를 전제로 7월말부터 1년 한시적으로 보증금 차액 반환목적 대출에 한해 대출규제 완화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경우 DSR 40% 대신 DTI 60% 적용(특례보금자리론 준용) LTV 최대 70%한도로, 임대사업자는 RTI(임대소득/이자비용) 하향(1.25~1.5배→1.00배) 조정으로 대출을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할 아파트 전세보증금 규모가 약 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돼 세입자보호를 위해 규제를 풀었다는 정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일부 세뇌되는 이들도 있겠지만, 역전세난과 보증금 미반환 우려로 사전 대응에 나선 것이란 말이 “갭투기를 양성하고 보호해야 한다”라는 환청처럼 들리는 것은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런 의지로 전세사기 문제와 피해자들을 대했더라면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을지 모른다. 정부정책의 그 속내와 진정성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의지대로 주택시장과 전세시장이 안정될 것인지 살펴봐도 또 다른 문제의 발생 소지가 보인다.

예를 들어보자. 매매가 10억원, 전세가 7억원인 주택이 급등기에 매매가는 15억원으로, 전세가는 11억원으로 올랐다가 다시 하락기를 맞아 원래 가격으로 돌아왔다고 가정해본다. 이때 임대인은 전세보증금 4억원을 반환해줘야 한다. 10억원짜리 주택의 전세반환보증금 4억원을 대출로 충당하면 이 대출은 선순위로 근저당설정이 된다. 그런데 다음 세입자가 전세가 7억원에 들어올 경우 선순위 대출 4억원과 보증금 7억원 합산 시 주택가격인 10억원을 초과한다. 주택대출이자에 연체가 발생해 경매로 진행될 경우 보증금을 온전히 받기 어렵기 때문에 다음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은 6억원 혹은 6억원 이하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임대인은 1억원을 추가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결국 현금 흐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전세가격의 비율이 더 높은 주택은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임대인의 임대사업자 RTI(임대소득/이자비용) 하향 조정은 만일 임대사업자가 임대소득으로 생활하는 경우라면 생활비가 없게 돼 시간이 지나면서 부채가 증가할 수 있고, 연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차라리 임대사업자의 매각예외조항을 신설해 자유로운 매각을 유도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 그리고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한편, 이와 함께 정부는 ‘주거비 부담 완화, 무주택자와 청년 주거지원 확대 방안’을 통해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지난해 수준인 60%로 유지하기로 했다. 상반기 세수부족이 37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공시가격이 18% 하락한 것만 반영해도 이미 세액 감소효과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부가 ‘주거비 부담완화’라는 명분하에 60%의 공정하지 못한 시장가액비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노골적인 부자감세정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IMF와 OECD가 부자를 위한 재정정책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경고했음에도 정부는 반대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잡고 있다. 게다가 투기를 유발하는 실거주의무 폐지마저 진행하겠다고 한다. 집값을 잡으라고 국민이 선출해준 정부가 집값 잡을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 국민을 기만하고 배신하는 정책을 어찌 이리 떳떳하게 할 수 있는지 심히 당혹스럽다.

그러나 실거주의무 폐지가 정부 뜻대로 될지는 알 수 없다. 자칫 갭투자를 빙자한 투기 붐이 일어날 수 있다며 야당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택청약제도는 무주택자의 내집마련을 위한 국가의 기본적 주거정책 방향이다. 국가의 존립목적은 투기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다. 정부가 경제 경착륙을 볼모로 민주주의 근간을 해칠 정도의  부동산정책을 지속한다면 국민의 따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헌법의 정신을 구현하는 정부정책이 필요한 시기임을 정부는 되돌아보아야 한다. 헌법 제23조 2항은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헌법 35조 3항은 “국가는 주택개발정책등을 통하여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최소 소수의 최소 피해’라는 정책적 방향을 가지고 공공복리에 부합하는 정책을 펼쳐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희망이 있는 나라로 만들어 가기 위한 정부의 진정성이 정책으로 구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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