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천 SOC실증연구센터 현장 취재
폭우·폭설, 안개 등 악천후 재현… 韓자율주행기술 연구의 ‘메카’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도 진행… 센터 완공 연기는 아쉬움 남아

‘자율주행차’는 첨단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지만, 악천후에선 주행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국내 연구진이 밤낮으로 연구하는 곳은 바로 ‘연천 SOC실증연구센터’다./ 사진, 그래픽=박설민 기자
‘자율주행차’는 첨단 모빌리티 산업의 꽃이지만, 악천후에선 주행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한계를 극복하고자 국내 연구진이 밤낮으로 연구하는 곳은 바로 ‘연천 SOC실증연구센터’다./ 사진,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연천=박설민 기자  ‘자율주행차’는 첨단 모빌리티 산업 핵심 기술로 꼽힌다. 하지만 안전성 문제는 여전히 완전 상용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악천후’는 자율주행차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일본 나고야대학교 정보학과 연구팀에 따르면, 폭설·폭우·안개 등 악천후에서 자율주행차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70%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자동차 기업과 연구기관에서 악천후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그렇다면 국내 연구기관에선 자율주행차의 안정적 주행 능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연구가 진행 중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고자 <시사위크>에서는 우리나라 도로기술연구의 핵심 중추인 ‘연천 SOC실증연구센터’ 현장을 찾았다.

◇ 연천 SOC실증연구센터, 순식간에 ‘안갯속·물바다’로 변신

“이미지 인식 센서 이상 무(無), 출발 준비 완료됐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안개 분사 및 차량 출발 시작해주세요.”

지난 4일 오후 2시경,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평화로에 위치한 SOC실증연구센터가 연구원들의 분주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들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하 건설연) 도로교통연구본부’ 연구팀이다. 악천후가 자율주행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었다. 연천의 늦더위 날씨 속 분주하게 움직이는 연구원들의 얼굴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지난 4일 방문한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평화로에 위치한 SOC실증연구센터 내 ‘기상재현도로실증시설’의 모습. 약 200m 길이에 달한다. / 박설민 기자
지난 4일 방문한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평화로에 위치한 SOC실증연구센터 내 ‘기상재현도로실증시설’의 모습. 약 200m 길이에 달한다. / 박설민 기자
자율주행성능 실험용 차가 SOC실증연구센터의 실험용 도로를 달리는 모습./ 박설민 기자
자율주행성능 실험용 차가 SOC실증연구센터의 실험용 도로를 달리는 모습./ 박설민 기자

SOC실증연구센터는 지난 2018년 12월 정부의 ‘국토교통 R&D 분산공유인프라 사업’ 일환으로 구축된 실험 시설이다. 총 69만2,110㎡ 부지에 건설된 센터는 국가 차원에서 건설교통기술에 대한 실증실험서비스를 제공한다.

실험은 SOC실증연구센터 내 위치한 ‘KICT기상재현도로실증센터’에서 진행됐다. 눈, 비, 안개, 야간 등 도로의 다양한 기상 조건 재현이 가능해 악천후 대응 도로안전기술 연구가 이뤄진다. 최근에는 악천후 속에서의 자율주행차 센서 특성 실증 테스트 및 자율주행 연계 첨단도로인프라 기술 개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날 진행된 실험은 지난 2021년부터 시작된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과제의 일환이다. 총 65개 과제로 진행되는 이 사업에서 건설연은 ‘자율협력주행 대응 교통객체 인지고도화 악조건 해소기술 개발’ 과제를 주관하고 있다. 총 사업비는 77억9,500만원이 투입되며, 서울시립대 산학협력단, 서울기술연구원, 래도, 노바스코, 비비엠씨, 포럼에이트코리아 등 기업·연구기관이 참여 중이다.

‘기상재현도로실증시설’ 내부에 인공 안개가 들어차는 모습./ 박설민 기자
‘기상재현도로실증시설’ 내부에 인공 안개가 들어차는 모습./ 박설민 기자

실험은 연구책임자인 이석기 건설연 도로교통연구본부 연구위원의 철저한 통제 하에 진행됐다. 각이 잡힌 연구원들의 모습은 마치 군대를 연상시켰다. 극한 환경에서의 자동차 주행 실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방심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의 지시 후, 약 200m 길이의 거대한 하얀색 터널인 ‘기상재현도로실증시설’ 내부가 순식간에 희뿌연 안개로 가득 찼다. 마치 영화 ‘미스트’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었다. 이 인공안개는 글리세린계 오일을 기화시켜 만든 것이다. 쾌쾌한 냄새는 나지만 인체 및 환경에 무해하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 기계는 ‘포그 머신(Fog Machine)’이라 불리며 무대, 영화 및 방송 촬영 등에 자주 사용된다.

한 치 앞도 분간이 안 되는 안개를 뚫고 터널 밖으로 나오자 연구원들은 서둘러 다음 실험을 준비했다. 바로 ‘폭우 실험’이다. 

연구진의 지시가 떨어지자 ‘쏴아’하는 굉음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졌다. 강력한 물줄기에 도로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터널 및 도로 주변에 설치된 대형 스프링클러 장치 덕분이다. 이 장치는 시간당 50mm의 빗줄기를 내뿜을 수 있다. 연구원들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운전하며 폭우에 ‘자동운전시스템(ADAS)’의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인공 폭우 시설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해당 시설은  시간당 50mm의 빗줄기를 내뿜을 수 있다. 이는 실제 자연 환경에서 쏟아지는 폭우와 맞먹는 양이다./ 박설민 기자
인공 폭우 시설에서 물이 쏟아지는 장면.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해당 시설은  시간당 50mm의 빗줄기를 내뿜을 수 있다. 이는 실제 자연 환경에서 쏟아지는 폭우와 맞먹는 양이다./ 박설민 기자

◇ 성능 저하 주원인은 ‘라이다’와 ‘카메라’… 악천후면 ‘빛 신호’ 오류 발생

모든 실험을 마친 뒤, 연구원들은 이날 수집한 데이터 분석에 매진했다. 실험 데이터 분석과정을 함께 살펴본 결과, 실제로 자율주행차의 도로 주행 능력이 안개 및 폭우에선 크게 저하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자율주행차의 핵심 이미지 센서인 ‘카메라 비전 센서’ 때문이다. 카메라 비전 센서는 인간의 눈과 유사하게 가시광선 반사를 이용한다. 자율주행차 센서 중 유일하게 ‘색’을 인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테슬라’에서는 자율주행차에 카메라 비전 센서와 고성능 AI기술을 결합해 운용 중이다. 하지만 가시광선을 기반으로 한만큼, 인간과 마찬가지로 폭우나 안갯속에선 시야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카메라 비전 센서와 함께 자율주행차 물체인식장치에 자주 사용되는 이미지 센서 ‘라이다(LiDar)’ 역시 악천후에 약하다. 특히 폭우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라이다는 일반적으로 라이다는 파장이 짧은 근적외선을 사용한다. 파장이 짧은 빛은 우수한 반사성과 직진성을 가지고 있어, 정밀한 물체 인식에 효과적이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짙을 경우, 라이다의 성능은 급격히 저하된다. 라이다에서 나오는 빛은 빗줄기 수분 입자와 충돌, 산란이 발생해 정확한 반사가 이뤄지지 않아서다.

인공 폭우를 뚫고 실험용 차량이 달리는 모습./ 박설민 기자
인공 폭우를 뚫고 실험용 차량이 달리는 모습./ 박설민 기자

이 연구위원은 “센터에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잠깐 비와 안개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차용 라이다 센서의 인식 거리는 15m밖에 되지 않았다”며 “일반적으로 고속도로서 시속 100㎞ 달리던 자동차의 제동 거리가 50m 이상임을 감안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센터에선 겨울철 ‘폭설’ 실험도 이뤄진다. 눈의 결빙 정도를 달리한 후, 겨울철 도로에서의 차량 미끄럼, 블랙아이스 방지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연구진들에 따르면 해당 실험에는 건설연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아우디 등 국내외 대형 자동차 제조기업들도 참여한다고 한다.

SOC실증연구센터 내 자율주행기술 연구책임자인 이석기 건설연 도로교통연구본부 연구위원./ 박설민 기자
SOC실증연구센터 내 자율주행기술 연구책임자인 이석기 건설연 도로교통연구본부 연구위원./ 박설민 기자

◇ 다양한 연구 성과 쏟아져… 늦어지는 센터 완공은 아쉬워

연구진이 얻은 실험 데이터는 자율주행기술 성능 보완 및 자율주행차용 도로 도색, 표지판 개발 등에 사용된다. 이는 실제 기술 개발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 성과는 ‘자성물질 인식 레이더 기반 차선 인식 시스템’이다. 이는 현재 자율주행차에 주로 사용되는 카메라 기반 비전 센서에 전자파 기반의 레이더(RADAR)를 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자성물질로 시공된 도로 차선과 연동될 시, 매우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자성물질 차선을 센터 실험장에 시공했다. 그 다음, 자체 개발한 레이더 결합 알고리즘이 탑재된 카메라 센서로 실차 주행 테스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악천후에서도 약 95%의 차선 인식률을 보였다. 자율주행차의 차선 유지 성능도 95%에 달했다. 악천후에서 일반 자율주행차의 차선 인식률이 50~60% 수준임을 감안하면 매우 우수한 성능이다.

이 연구위원은 또 다른 주요 성과로 ‘기상정보 연동형 리어콤비네이션 램프(RCL·rear combination lamp)’를 꼽았다. 안개 상황에서 차량 후미등의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 자율주행차 후미추돌 사고를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리어램프기술을 차량에 적용할 경우, 뒤따라오는 자율주행차가 앞 차를 인식하는 거리는 약 45% 가량 향상된다. 현재 이 기술은 우수성을 인정받아 ‘3극특허’가 진행 중이다. 3극특허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특허를 주도하는 3개국 특허청에 모두 등록된 특허다.

실험용 차량 내부에서 안갯속 표지판을 촬영한 모습. ‘적외선 표출 안전정보 전광판’이 적용돼, 자율주행차의 센서가 정확히 인식하는데 성공했다./ 박설민 기자
실험용 차량 내부에서 안갯속 표지판을 촬영한 모습. ‘적외선 표출 안전정보 전광판’이 적용돼, 자율주행차의 센서가 정확히 인식하는데 성공했다./ 박설민 기자

안갯속에서 효과적인 ‘적외선 표출 안전정보 전광판’도 SOC실증연구센터 현장 실험을 통해 얻은 성과다. 이 전광판에는 2종 렌즈 기술이 적용됐다. 이를 통해 평상시에는 가시광선 반사가 일어나도록 하지만, 안개 발생 시엔 렌즈가 교체되며 적외선이 반사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자율주행차의 카메라 비전 센서와 라이다, 레이더 센서가 모두 작동할 수 있어, 짙은 안갯속에서도 전광판이 잘 보이게 된다.

이 연구위원은 “모든 차가 자율주행차로 바뀌기 전까지, 사람과 기계 운전자가 공존하는 시대는 굉장히 오래갈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대비해 악천후 등 자율주행차가 힘들어하는 조건에서의 실험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자연과 최대한 유사한 조건의 악천후 재현은 곧 자율주행차 성능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그런 의미에서 건설연의 SOC실증연구센터는 국내 자율주행차 실험의 중추”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국내 자율주행차 생태계 발전에 대들보 역할을 하는 SOC실증연구센터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아직 센터가 미완성이라는 점이다. 현재 포장 및 비탈면 성능시험시설은 설계 단계에 있다. 한 연천군 주민은 “당초 건설연에서 400여명의 직원이 이 센터로 파견온다고 해, 지역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늦어지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SOC실증연구센터 구축 사업의 2단계인 ‘사업 설계 및 사업예산 확보’를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할 수 있도록 목표하고 있다”며 “건설연은 연천 센터를 국가 미래 도로 환경 혁신 기술의 개발·검증 시설로 확대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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