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유미가 영화 ‘잠’(감독 유재선)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정유미가 영화 ‘잠’(감독 유재선)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정유미가 영화 ‘잠’(감독 유재선)으로 관객 앞에 섰다. 영화는 ‘82년생 김지영’(2019) 이후 4년만. 광기 어린 얼굴로 강렬한 연기 변신을 선보인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목이 마르다”고 열정을 드러냈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 현수(이선균 분)와 수진(정유미 분)을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오는 10월 개최를 앞둔 제56회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메인 경쟁 섹션에 초청되는 등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은 ‘잠’은 지난 6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국내 관객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

‘잠’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 연출부 출신 신예 유재선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시나리오를 접하고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없다’며 유재선 감독에게 힘을 실어줬다는 봉준호 감독은 정유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 작품을 추천하기도 했다.

정유미가 작품을 택한 이유를 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유미가 작품을 택한 이유를 전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느 날 봉준호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캐스팅 제안인 줄 알고 ‘드디어 나에게도?’ 했는데 이런 친구가 있다고 소개해주시더라고요.(웃음) 시나리오를 한 번 읽어보라고 하셔서 소속사에 시나리오들 중 그것부터 찾아달라고 해서 읽었죠.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감독님이 추천한 작품이라 좋게 보일 수 있을까 봐 스스로 그런 생각을 빼려고 노력했어요. 이게 정말 나의 생각인지, 봉준호 감독님의 영향이 더해져서 드는 생각인지 잘 구분하려고 했죠.”

봉준호 감독에 대한 믿음으로 든 시나리오였지만, 결국 정유미에게 ‘확신’을 준 것은 유재선 감독이었다. 

“시나리오가 간결해서 좋았어요. 정말 재밌게 읽혀서 감독님이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났는데, 표현해 주는 부분들이 와닿는 게 많았고 설명을 완벽하게 해줬어요. 특히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러브스토리’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에 반했어요. 뭔가 꽁냥꽁냥한 것만이 러브스토리가 아니구나, 편견을 깨줬죠. 현장에서는 어떻게 작업을 해나갈지 궁금했어요.”

극 중 정유미는 잠들지 못하는 아내 수진을 연기했다. 수진은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으로 가장 신뢰하던 존재가 매일 밤 끔찍한 위협을 가하는 대상으로 변하게 된 공포스러운 상황에 처한 인물이다. 악몽 같은 사태를 극복하고자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는 수진의 강렬한 모습은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며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정유미는 남편을 되찾고 가족을 지키려는 적극적 의지로 변해가는 수진을 섬세하고 입체적으로 빚어내 호평을 얻고 있다. 사랑스러운 아내부터 강인한 엄마, 불안하고 광기 어린 모습까지, 다양하고 새로운 얼굴을 꺼내어 보인다. 정유미는 “유재선 감독에게 의지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이번 작품은 제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어요. 저의 느낌을 표현하면 이 깔끔한 시나리오에 군더더기가 생길 것 같더라고요. 유재선 감독님의 머릿속에 있는 걸 표현해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고, 그걸 해내고 마쳤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그렇게 작업을 했던 작품이에요. 감독님이 직접 글을 쓰기도 했고, 저보다 훨씬 더 시나리오에 대해 연구하니까 많이 의지했죠. 감독님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주셨어요. 임신했을 때 허리에 손을 짚는다든가, 문고리를 돌릴 때 오른손으로 돌릴지 왼손으로 돌릴지 등이요. 모든 게 그렇진 않았지만 그런 디테일한 작업 과정이 있었어요.”

새롭고 강렬한 얼굴을 보여준 정유미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새롭고 강렬한 얼굴을 보여준 정유미 스틸. / 롯데엔터테인먼트

다만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그 정도는 광기가 아니”라며 웃었다. 

“‘광기’라는 반응을 보면서 놀랐어요. 저는 광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가족을 지키기 위한 사투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는 광기가 아니에요.(웃음) 더 미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아요. 제가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쉬워요. 그래서. 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목이 말라요.(웃음)”

영화 ‘사랑니’(2005)로 데뷔한 뒤, 어느덧 데뷔 18년차를 맞은 정유미는 배우로 걸어온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나를 찾아주는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 덕에 버티고 나아가고 있다”며 “그래서 더 잘하고 싶다”고 더 다채롭게 채워갈 앞날을 예고했다. 

“힘들 때도 진짜 많아요. 그만둘까 생각도 잠깐 했는데,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더라고요. 시작한 게 이거고 해낼 수 있는 것도 이거고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작품을 하면 좋은 게 70~80% 이상이고, 힘든 게 20~30%인데 힘든 것들이 더 크게 오기도 하잖아요. 균형을 조절하는 것도 저의 의지라고 생각해요. 그게 안 될 때는 무너져 내릴 때도 있지만 다시 또 가야 하는 거죠. 스트레스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이 정도는, 이만큼은 견딜 수 있겠다 싶은 마음이에요. 어쨌든 이 직업을 선택했고 저를 찾아주는 분들이 아직 있잖아요. 그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제일 커요. 그 덕에 버티고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절 움직이게 하는 힘이죠. 그래서 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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