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이 10번째 장편 영화 ‘거미집’으로 관객을 찾았다. / 바른손이앤에이
김지운 감독이 10번째 장편 영화 ‘거미집’으로 관객을 찾았다. / 바른손이앤에이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은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만 다시 찍으면 걸작이 될 거라 믿는 김감독(송강호 분)이 검열과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밀어붙이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조용한 가족’(1998)을 시작으로, 코미디 ‘반칙왕’(2000), 호러 ‘장화, 홍련’(2003), 누아르 ‘달콤한 인생’(2004), 웨스턴 ‘놈놈놈’(2008) 복수극 ‘악마를 보았다’(2010), 스파이영화 ‘밀정’(2016)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작품 세계를 펼쳐온 김지운 감독의 10번째 장편 영화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을 통해 또 한 번 독창적인 세계를 펼쳐 보인다. 배우 송강호를 필두로, 임수정‧오정세‧전여빈‧정수정 등 탄탄한 캐스팅 라인업을 앞세워, 1970년대 한국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영화’를 둘러싼 인간 군상의 다이내믹한 앙상블을 경쾌하게 그려낸다.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리듬감 있는 전개, 매력 만점 캐릭터와 넘치는 볼거리, 쉴 새 없이 터지는 유머까지 모두 담아내 관객을 매료한다. ‘영화’를 통해 인생의 한 대목을 돌아보게 하는 공감과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김지운 감독은 “희미해졌던 영화에 대한 꿈, 사랑을 다시 회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거미집’을 만들었다”고 작품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영화적 자존심을 지켰다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자평”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 대한 고민, 애정이 담긴 ‘거미집’. / 바른손이앤에이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 대한 고민, 애정이 담긴 ‘거미집’. / 바른손이앤에이

-연출 계기는. 

“팬데믹 이후 정말 영화가 이렇게 사라지는 건가, 현대성을 규정하는 것에 있어 가장 강력한 매체가 영화인데,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묘사하는 매체인데 덧없이 사라지는 것인가, 정말 끝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 거다. 내가 처음으로 영화를 사랑했을 때, 꿈을 갖기 시작했을 때 어떤 질문을 했는지 기억을 다시 소환하던 시기에 ‘거미집’을 만났고 딱 맞아떨어졌다. 내가 좋아서, 사랑해서 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자기 합리화가 올 때도 있고 환멸도 느끼잖나. 그런 과정을 거치며 꿈과 사랑을 잃지 않았나 하는 질문을 갖고 만든 영화다. ‘거미집’을 통해 약간은 식었던, 희미해졌던 영화에 대한 꿈, 사랑을 다시 회복하길 바랐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다.”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는. 

“영화적 자존심을 지켰다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자평인 것 같다.”

-어떤 의미인가. 

“영화가 힘들어지면서 실험이나 시도,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더 보수적이 됐다. OTT는 그런 것에 대한 문이 훨씬 열려있다. OTT가 거부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대안이 되는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시네마라는 것을 포기한다면 더 좋은 상황이 아닌가 여러 생각을 했다. ‘거미집’도 처음 기획했을 때 펀딩이 잘 안 됐다. 영화계에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 거다. 이제는 이런 영화도 기획이 안 되는 세상이 됐구나 싶었고 유혹이 많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잖나. 영화적 자존심을 지켰다는 게 그런 의미기도 하다. 다른 쪽으로 가지 않고 영화 안에서 해냈다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했다는 것.”

-영화 속 김열 감독에 실제 김지운 감독의 모습과 생각이 투영됐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박찬욱 감독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루는 자기가 너무 천재 같고 또 하루는 쓰레기 같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한다고. 나 역시 그렇다. 일상에서는 감정을 크게 안 보이는 사람이고, 어떠한 최악의 상황이 와도 시크하자, 쿨하자, 유머를 잃지 말자는 게 나의 신조인데 왜 영화 현장에만 가면 항상 이렇게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모르겠다.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스태프와 배우들이 혼연일체 돼 일사분란하게 탁탁 움직이면 ‘이게 다 나의 역량이야’ 하며 기뻐하기도 하고.(웃음) 이런 감정이 너무 심한 거다. 대체 영화가 뭐길래. 영화 밖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 영화에서는 비판과 자학 또는 환희와 희열. 그런 모습이 김열에게 꽤 많이 들어가 있고, 이것은 개인적인 심상이라기보다 감독의 공동 심상일 거다. 김열이 하는 대사들은 내가 항상 현장에서 느낀 크고 작은 여러 감정에 대한 이야기고 실제로 한 말이기도 하다.” 

김열 감독을 연기한 송강호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김열 감독을 연기한 송강호 스틸. / 바른손이앤에이

-평론가를 향한 대사도 인상적이었다.  

“‘평론은 예술가가 되지 못한 자의 예술에 대한 복수’라는 대사였다. 감독은 평론이나 리뷰에 기분이 상승했다가 떨어졌다가 한다. 정확한 비평이라면 쓰리지만 받아들여야 하는데, 오해라고 생각하는 것, 너무 잘 못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나. 그럴 때 발끈하게 되는 거다. 자기들이 뭘 안다고 하면서.(웃음) 그런데 지금은 안 그런다. 비평의 힘, 리뷰의 힘이 다시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 힘을 나는 다시 원한다. 악평이든 호평이든 힘을 발휘하길 원한다. 작품을 더 좋게 만드는 뭔가가 있고 같이 부딪힐 때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글의 힘, 평론의 힘, 리뷰의 힘이 다시 돌아와야 하는, 회복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팬데믹 이후 모든 영화 산업이 침체되고 네거티브해졌다. 그런 상황에서 만드는 사람에게 너를 지켜볼 것이고 응원할 것이고 지적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같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같이 크는 거다. 그것이 산업 전체를 키우는 거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탄탄한 캐스팅 라인업도 돋보였다. 

“‘거미집’은 내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편하게 찍은 작품이다. 심리적으로. 물리적인 에너지는 쏟아질 수밖에 없지만 심적으로는 편안하게 찍었다. 이 작품을 통해 캐스팅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단역부터 주연배우까지 캐스팅이 잘 돼있으니 내가 그렇게 많이 할 게 없더라. 세계관과 작품의 방향성만 공유되면 알아서 잘 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송강호와는 무려 5번째 협업이다. 

“25년간 5편을 했는데, 5년마다 한 편씩 만난 거다. 점점 좋은, 훌륭한 배우가 되고 있고 그것은 곧 점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 오르고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 단련, 인내, 겸손함과 끊임없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긴장을 놓지 않고 텐션을 유지하면서 겸손도 잃지 않는. 송강호가 현장에 있으면 제작자가 한 명 더 있다는 느낌도 든다. 그만큼 전체를 관장한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송강호는 자신의 것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영화 전체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다. 훌륭한 조력자이자 지원군, 파트너, 연기자다. 현장에서도 송강호가 주는 영향력이 있다. 그가 연기하면 배우들이 다 나와서 지켜본다. 하나라도 얻어가고 배우려고 한다. 그 기운이 엄청나다.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이 된다. 송강호가 배우로서 압도적인 순간은 친숙하고 서민적인 느낌을 주다가 느닷없이 서늘한 기운을 줄 때다. 천연덕스럽게, 릴렉스하게 빠진다. 말 그대로 쥐락펴락이 대단하다는 거다. 그 파괴력은 송강호가 가진 독보적인 천재성이라고 생각한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지운 감독. / 바른손이앤에이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지운 감독. / 바른손이앤에이

-‘관객은 새로운 걸 원한다, 강렬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는 김열의 대사에서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지운 감독의 연출 철학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용한 가족’ ‘반칙왕’을 통해 김지운 감독의 코미디는 이렇다고 한 상태였다. 그런데 바로 선택한 것은 ‘장화, 홍련’ 공포영화였다. 서태지도 이야기했고, 데이비드 보위도 한 말 같은데 순수 아티스트든 대중 아티스트든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곧 아티스트로서 사형선고와 같다. 그 말처럼 머무른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안주하는 거잖나. 편한 공간에서.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미국에 간 것도 있다. 아무도 나한테 싫은 소리 안할 것 같고 편한 상태로 누리고 있는데, 그런 나를 한 번 바꿔보자, 리프레시해 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장르를 실험한 것처럼 나의 영화 인생을 또 실험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새로운 것을 할 때마다 영화적 에너지와 생기가 생긴다. 그래서 김열 감독에게도 그런 주문을 하고 질문을 하게 했던 거였다. 내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도태되지 않고 늙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것을 하지 않을 때 그게 늙는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 자연인 김지운이 늙는 것은 상관없는데 영화는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강박일 수도 있겠지. 또 한국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고. 김열이 하는 말은 ‘거미집’을 만들고 있는 내게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거미집’이 어떤 영화로 남길 바라나.

“영화를 만들고 관객에게 선보이면서 내가 혹시 나도 모르게 살짝 식었던 영화에 대한 사랑을, 의기소침했던 힘에 빠진 어떤 부분을 북돋아 주려고 힘을 잃지 말라는 나에 대한 격려로 만든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의 바람이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영화를 통해 살짝 식어진 마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영화에 대한 최고의 결과물, 내가 얻어낸 산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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