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에서 서울 지역 12개 대학 청소·시설노동자들이 적정임금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가졌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대학가 청소·시설노동자 파업이 확산일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중앙대 사태’가 채 해결되기도 전에 서울 시내 주요 대학의 청소·시설노동자들이 일제히 파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일,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는 새 학기 개강을 맞아 신입생 등 많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이날 캠퍼스에선 중년의 어른들이 더 눈에 띄었다. 이들은 고려대를 비롯해 연세대, 경희대, 서강대, 광운대, 덕성여대 등 이름만대면 알만한 서울시내 12개 대학의 청소·경비노동자들이었다.

이날 오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소속 1,000여명은 ‘1일 총파업’에 참여해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결의대회를 가졌다.

대학 청소·경비노동자들의 적정임금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라는 것이 이들의 요구였다. 더불어 이들은 용역업체 뒤에서 책임 회피에만 몰두하고 있는 대학 측의 행태도 강하게 규탄했다.

고려대 청소·경비노동자 300여명은 이날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경희대 역시 지난 5일부터 파업을 실시했다가 임금협상을 마무리 짓고 11일 복귀했다. 연세대와 동덕여대, 덕성여대는 오는 12일부터 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대학 청소·시설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 저임금, 고용불안, 열악한 근무환경 ‘3중고’에 절규하는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대학 청소·시설노동자들의 절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가깝게는 지난해 말 불거진 ‘중앙대 사태’가 있다. 지난 2010년 홍익대에서는 무려 49일 동안이나 파업이 이어져 사회적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하지만 2014년 3월 현재, 청소·시설노동자들은 여전히 같은 요구를 내세우고 있다. 바꿔 말하면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파업에 나서면 일각에선 “학생들이 학업에 매진하는 교육의 현장을 볼모삼아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지적이 꼭 나온다.

그러나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을 보장해달라는 것과 고용불안을 해소해달라는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요구사항이다.

 ▲청소·시설노동자가 파업 중인 고려대학교의 11일 모습.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돈을 받고 일한다. 그마저도 용역업체의 여러 ‘꼼수’ 때문에 깎이기 일쑤다. 고용불안도 심각하다. 용역업체 계약이 끝날 때마다 한마디로 ‘파리 목숨’이다. 그렇다고 이런 부당함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 활동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더 큰 부당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악한 것은 임금과 고용환경만이 아니다. 휴게 공간은 언감생심이고, 학교와 용역업체의 눈치 보기에만 바쁘다. 올해 초 공개된 중앙대와 용역업체의 계약서는 청소·시설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계약서엔 ▲작업 도중 잡담이나 콧노래, 고성을 삼가야한다 ▲사무실 의자 및 쇼파 등에 앉아 쉬지 않도록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청소·시설노동자들은 묵묵히 궂은일을 하고 있다. 축제기간이나 시험기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학교를 청소하고 정돈하는 것은 이들의 몫이다. 만약 이들이 없다면 대학은 며칠 못가 오물이 넘쳐나고 냄새가 진동하는 쓰레기장이 될 것이다. 이들 역시 대학의 중요한 구성원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대학들의 생각은 다르다. 수천억원의 적립금을 쌓아놓고도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청소·경비노동자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작 대학은 용역업체 뒤에 숨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하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대학생들이 열심히 공부 중인 대학의 현주소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붙인 파업 지지 대자보.
◇ 용역업체 뒤에 숨은 대학들이 해결 나서야

결국 반복되는 대학 청소·경비노동자 문제의 해결 열쇠는 대학이 쥐고 있다. 청소·경비노동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직접고용이다.

당장 직접고용이 어렵다면 최소한 용역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결국 청소·경비노동자 노동착취의 먹이사슬 맨 위에는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용역업체가 대학과 계약을 맺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비용’일 것이다. 때문에 용역업체는 대학에 가능한 낮은 비용을 제시할 수밖에 없고, 그 비용에 맞추기 위해 희생되는 것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이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붙인 파업 지지 대자보.
하지만 정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학은 용역업체가 계약의 당사자라는 입장만 되풀이한다.

그 계약을 맺도록 방조한 것이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사업체라며 ‘나 몰라라’ 하기 일쑤다.

정부 역시 조치가 필요하긴 마찬가지다. 교육의 현장에서 반복되는 이러한 갈등의 또 다른 피해자는 바로 학생이다. 더욱이 이러한 갈등은 거의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애초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합당한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설렘과 활기로 가득차야 할 3월 새 학기, 서울의 대학들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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