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록삼 시사위크 논설위원
박록삼 시사위크 논설위원

추석 연휴에 드라마를 몰아쳐봤다. 디즈니플러스 <무빙>을 거쳐 넷플릭스 <도적, 칼의 소리>까지 섭렵했다. 짧지 않은 휴일이었기에 차례 모시고 어른들 인사드린 뒤에도 시간은 빠듯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드라마 서사의 내용과 완성도, 주제 의식 등 여러 측면에서 몰입감을 갖게 만들었고, 하룻밤씩 몰아치며 보기에 충분했다. 넷플릭스 <마스크걸>이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또다시 여러 한국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더욱 뜨겁게 끌어갔다.

이미 <지금 우리 학교는>, <D.P>, <재벌집 막내아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태원 클라쓰> 등 셀 수 없이 많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들이 국내 시장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았다.

공통점은 온라인 만화, 즉 웹툰에 기반했다는 점이다. 2010년 영화 <이끼>를 시작으로 <미생>, <신과 함께> 등의 드라마와 영화는 본격적으로 웹툰을 영상화한 작품들이었다.

물론 웹툰 이전에 소설 등 문학작품은 국내외를 떠나 대중문화 영상 컨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할 수 있는 화수분과 같은 보물창고 역할을 해왔다. 일찍이 고전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대부>, <노인과 바다>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삼포 가는 길>, <태백산맥>, <서편제> 등 셀 수 없이 많은 소설 작품들이 영화로 이어지곤 했다. 시와 소설이 대중문화에 영감을 주고 서사의 원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순수문학이 갖고 있는 여러 존재 의의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문화산업 측면에서 웹툰의 영향력과 시장 규모는 소설 등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커져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2년 12월 발표한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웹툰 산업 규모는 1조 5660억원으로 전년보다 48% 성장했다. 정부 역시 지난달 경기도 부천에 웹툰융합센터 설립을 위한 준공식을 가졌고, 웹툰 등 컨텐츠 산업에 정책금융자금 8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지원하고 있다. 2030년 560억 달러(약 7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세계 웹툰 시장을 겨냥한 일련의 정책들이다. 무엇보다 K-드라마, K-영화 입장에서는 365일 마르지 않는 샘물을 곁에 두고 있는 셈이다.

뭐니뭐니 해도 기실 피식민과 저항, 전쟁 등 굴곡지게 살아온 흔적인 우리네 역사야말로 K 컨텐츠의 보고임이 분명하다. 추석 연휴 <도적, 칼의 소리>에 대한 감회가 조금 더 남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친일파와 독립군, 혹은 유랑민이 될 수밖에 없는 민족적이고 계급적인 배경의 다름 속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이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입장을 꽤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1920년 일본군의 야만적인 간도 참변과 같은 역사적 사실까지 이어졌으니 시즌2까지 기대할 법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간도 참변의 전후 과정에는 청산리, 봉오동 전투의 빛나는 승리를 일궈낸 항일무장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홍 장군의 흉상 철거 논란 사태도 드라마가 단순한 역사물에 그치지 않게 만든 요인이 됐다.

G10 국가 반열에 오르며 경제 산업 문화 여러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주도하는 국력과 더불어 문화 컨텐츠 산업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K-드라마의 한류 붐이 일시적이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또한 소설 등 문학작품 외 웹툰 형식을 통해 넘쳐나는 국민들의 대중적 창의성, 간난신고의 근현대사 과정을 이겨낸 숱한 민중과 영웅들의 서사, 그리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겪고 있는 인류사적 과제를 담은 지역적 특성 등은 환타지와 멜로, 시대역사물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류 열풍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K-드라마, K-영화가 언제까지 승승장구하리란 법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창작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양심의 자유가 위축된다면 K-컨텐츠 한류는 봄눈 녹듯 스러질 수 있다. 헌법적 가치가 훼손될 때 맞서 싸워야 하고, 다양성의 가치가 정립될 수 있도록 제도와 질서를 정비하는 데 온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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