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화학무기 ‘노비초크’ 독성 화학식 분석 AI시스템 개발
연구비 등 인프라 확보는 과제… “혼자서라도 꼭 연구 완성시킬 것”

유독한 화학물질을 살포해 치명적 피해를 유발하는 화학무기는 인명 살상에 있어선 핵무기를 능가할 만큼 강력하다. 떄문에 해독제 개발 및 제독을 위한 독성 분석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국내 생화학무기 분야 최고 전문가인 정근홍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는 가장 위험한 화학무기 '노비초크'의 독성 성분 분석이 가능한 AI모델을 개발했다./ 사진, 편집=박설민 기자
유독한 화학물질을 살포해 치명적 피해를 유발하는 화학무기는 인명 살상에 있어선 핵무기를 능가할 만큼 강력하다. 떄문에 해독제 개발 및 제독을 위한 독성 분석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국내 생화학무기 분야 최고 전문가인 정근홍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는 가장 위험한 화학무기 '노비초크'의 독성 성분 분석이 가능한 AI모델을 개발했다./ 사진, 편집=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화학무기(化學武器)’란 유독한 화학물질을 살포해 치명적 피해를 유발하는 무기다. 일반적인 폭발물 무기와 달리, 물리적 살상력은 없으나 인명 살상에 있어선 핵무기를 능가할 만큼 강력하다. 강력한 위력에 비해 제조비용도 매우 저렴하다. 1㎢ 면적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화학무기의 제작비용은 단돈 ‘5달러’. 화학무기가 ‘가난한 자들의 핵무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우려스러운 점은 우리나라 역시 화학무기의 위협에 노출된 국가 중 한 곳이라는 것이다. 한국과 인접한 북한의 경우, 대표적 화학무기 위협 국가로 꼽힌다. 실제로 지난 2017년 2월 발생한 ‘김정남 화학테러 암살 사건’에 사용된 것도 화학무기 ‘VX’다. 올해 미 국방부가 발간한 ‘생물학방어 태세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생물무기 금지협약(BWC)를 위반한 생화학무기를 다수 운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전문가들은 ‘인공지능(AI)’이 생화학무기의 새로운 대응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가 가진 강력한 연산능력이 신형화학무기 독성 분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국내 생화학무기 분야 최고 전문가인 정근홍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교수를 만나, 화학무기의 위험성과 이에 대항하는 AI기술 연구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최근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테러단체들의 화학무기 사용 우려도 나온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극단적 이슬람 무장 세력들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팔레스타인 진형에서 화학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확증은 없다. 다만 극단적 이슬람 무장 세력들의 경우, 급조폭발물로 테러를 자행한 사례가 빈번하다. 실제로 ‘플라스틱 폭탄’이라 불리는 급조폭발물의 경우, 아세톤이나 과산화수소 등 공업이나 일상 생활에서도 사용되는 물질을 결합해 쉽게 만들 수 있다. 화학무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구하기 쉬운 화학물질을 이용해 제작 가능하다. 어마어마한 살상력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군과 민간에 엄청난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는 것도 테러단체가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때문에 만약 극단적 이슬람 무장 세력들이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전면전 발생시 사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화학무기의 위협이 있는가.

“물론이다. 북한은 대표적 화학무기 위협 국가 중 하나로, ‘화학무기금지기구(OPCW)’ 가입국이 아니다. OPCW는 1997년 발족한 국제 기구로, 기존 보유 화학무기를 완전히 폐기하고, 평화적 연구 목적을 제외한 화학무기의 사용, 개발, 생산, 보유 및 이전 활동 금지에 대한 강제 사찰 권한을 갖는다. 때문에 OPCW에 가입하지 않은 북한의 화학무기 운용을 국제적으로 제재할 방법은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만에 하나 우리나라와 북한 사이에 전쟁 혹은 테러가 발생할 경우, 우리가 화학무기를 방어할 수단을 철저히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정근홍 교수는  복잡한 화학무기의 독성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관련 연구의 성과 달성을 위해선 AI의 강력한 연산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설민 기자
정근홍 교수는  복잡한 화학무기의 독성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과정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관련 연구의 성과 달성을 위해선 AI의 강력한 연산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설민 기자

-화학무기는 ‘독성’물질이다. 해독제만 있으면 안전할 것도 같은데.

“화학무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독제’와 ‘제독’이다. 해독은 말 그대로 인체에 독극물이 들어왔을 때, 독소를 빼거나 제거하는 것이다. 제독은 군사·산업용 화학무기나 물질에 노출된 독성을 제거함을 뜻한다. 이론상으로 이 두 가지 방안만 완벽히 구비됐다면 화학무기의 위험은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그러나 성분 미상의 신형화학무기의 해독제를 제조하고 제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엄청나게 많고 복잡한 화학무기의 독성 구조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러시아의 최신 화학무기인 ‘노비초크’만해도 작용 방식은 비슷하지만 그 독성 물질 구조가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수만 개에 이를 만큼 복잡하다.”

-‘노비초크(Novichock)’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노비초크는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러시아는 ‘북대서양 조약기구(나토, NATO)’가 가진 화생방 무기 방어 체계를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는 새로운 신종 화학무기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노비초크다. 노비초크란 단어도 러시아어로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몰래 만들었던 신종 신경 작용제 화학무기를 통칭하는 말이다. 즉, 한 개의 화학무기가 아닌, 비슷한 화학 구조와 작용 방식을 가진 신경 작용제 그룹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 말 러시아의 연구개발자 미르자야노프가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노비초크가 사용된 대표적 사건은 2018년 발생한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미수 사건’이다. 당시 암살자들은 영국 솔즈베리에 거주하는 전 러시아 간첩 세르게이 스크리팔을 암살하기 위해 집 문고리에 노비초크를 발랐다. 매우 극소량이었으나 세르게이와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이 중독돼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현장을 조사하던 경찰, 버려진 병을 주운 시민 등 100여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이 독극물에 중독되기도 했다.”

-개발하신 AI모델도 노비초크 독성 분석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물쇠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만들기 위해선 자물쇠가 어떤 방식으로 잠겼는지를 알아야 한다. 화학무기의 해독제 개발을 위해선 정확한 독성 파악이 매우 중요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문제는 노비초크는 간단한 구조 변형만으로도 새로운 종류의 무기를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OPCW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노비초크로 파악되는 화학물질만 해도 수만 가지에 달한다. 때문에 일반적인 화학무기 탐지 기법으론 노비초크 공격 여부나 작용 여부를 알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에 AI의 강력한 연산 능력을 빌리고자 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노비초크 구조를 AI모델에 학습시킨 다음, 어느 구조가 좀 더 독성이 강한지, 어느 구조가 조금 더 잘 날아가고 오랫동안 머무는지 등을 이제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지난 9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서 AI기반 화학무기 독성 분석 연구 내용 발표를 진행 중인 정근홍 교수의 모습./ 정근홍 교수
지난 9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서 AI기반 화학무기 독성 분석 연구 내용 발표를 진행 중인 정근홍 교수의 모습./ 정근홍 교수

-관련 AI기술의 원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신다면.

“화학무기 성분 분석을 위한 AI개발에는 ‘머신러닝’과 ‘랜덤포레스트’, ‘하이퍼 파리미터 튜닝’, ‘다중 선형 회귀법’ 등 여러 가지 필요했다. 또 양자화학계산법도 사용됐다. 하지만 연구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도화시킨 기술은 ‘그래프 신경망(GNN)’ 기술이었다. 그래프 신경망은 어떤 그래프 이미지 모양 자체를 보고 데이터를 분석하는 AI학습모델이다. GNN을 분자 구조에 적용시키면 이를 ‘그래프 취급’하고 화학 반응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이 신경망을 기반으로 기존 화학무기 등의 데이터 기반의 화학무기성분 분석 AI모델을 개발한 다음, 여러 가지의 노비초크 분자 구조 데이터를 테스트했다. 그 결과, 노비초크 구조 중에 특정 구조가 어떤 특성이 있는지, 이 구조가 독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약 80% 정확도로 분석하는데 성공했다. 노비초크의 독성 성분 구조를 AI로 분석한 것은 세계적으로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달 OPCW에서 관련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기술을 활용해 마약, 공업물질 등 독성도 찾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약의 경우, 화학무기와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의 마약 검침 시스템, 마약탐지견 등으로도 찾지 못하는 합성마약 종류가 늘어나고 있다. 이때 합성마약의 경우 분자 구조는 기존 마약과 비슷하게 유지된다. 따라서 노비초크의 비슷한 분자 구조를 분석하고, 독성을 미리 예측 가능한 현재 AI시스템에 마약 관련 데이터를 학습시킨다면 마약 검침도 가능하다 본다. 때문에 지금도 우리 연구팀은 노비초크나 화학무기 뿐만 아니라 새로운 화학물질의 구조와 특성, 독성 등을 AI로 알아내는 연구를 계속해서 수행하고 있다.”

-국내 혹은 해외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진행 중인 연구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린다.

“현재 경찰청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에 AI기반 화학무기 성분 분석 연구와 관련한 지원 및 공동 연구 진행 관련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공식 협력에 나선 기관은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연구 시스템 상 연구 기획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연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원과 연구 자금 등의 인프라 때문이다. 개인 혹은 학교 연구실에서 좋은 연구가 이뤄져도, 정부 기관에서의 상용화 추진을 위해선 예산 확보가 필요한데, 이를 설득시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군인이라는 특성 상, 기밀을 많이 다루고 있다 보니 협력 연구가 쉽지 않다. 실제로 저희 연구를 악용하면 오히려 더욱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2025년을 목표로 다양한 기관과의 협력 연구를 진행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전문가분들이 많다. 때문에 정부 기관의 연구비 지원이 없더라도 개인 혹은 지인 연구자들의 협력을 통해서라도 지속적 연구를 수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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