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후 30년, 글로벌 IT산업 중심으로 ‘우뚝’
4차 산업시대 대비한 신사업 발굴, 젊은 세대 마음잡기는 새로운 과제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4차 산업시대의 본격화된 만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경영 체제도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뉴시스, 편집=박설민 기자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4차 산업시대의 본격화된 만큼,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경영 체제도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뉴시스, 편집=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일류 기업이 되려면 ‘양(量)’보다 ‘질(質)’의 경영으로 변해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 한국 기업 역사를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 회장의 말이다. 

이건희 회장의 이 말은 1993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 호텔에서 200여명의 삼성 그룹 수뇌부 간담회에서 나왔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이건희 회장의 발언은 기존 삼성 그룹의 운영 방식을 모두 갈아엎는, 이른 바 ‘삼성 신(新)경영’의 시발점이 됐다.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스마트폰 시장 판매량 1위를 달성하며 세계 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건희 회장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부정적으로 갈리지만, 삼성전자를 글로벌 IT산업의 중심지로 만들었다는 평에 대해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삼성은 다시 한 번 변화의 기로에 마주했다. 4차 산업시대의 본격화로 인공지능(AI), 로봇, 에너지 등 첨단과학기술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신화를 이끌었던 반도체 산업 부문에도 대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삼성 신경영 3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 삼성 그룹이 걸어온 신경영의 길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중점 과제들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 ‘가족’빼고 다 바꾼 결단에 반도체·스마트폰 일류기업으로 발돋움

삼성그룹 신경영이 남긴 가장 큰 발자국은 단연 ‘반도체’. 현재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확고부동한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글로벌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에 따르면 2분기 세계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매출 점유율은 38.2%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 반도체 신화가 시작된 것은 1974년. 이병철 창업회장에게 이건희 회장이 사업 건의를 하면서다. 당시 동양방송 이사였던 이건희 회장의 추진 하에 삼성은 그해 12월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했다. 인수 금액은 50만달러. 현재 물가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약 100억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파격적인 한국반도체 인수 이후, 이건희 회장은 끊임없이 임직원들에게 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기업 IBM을 분석하고 본받을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 같은 노력을 뒷받침으로 삼성전자는 1983년 12월 64K D램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1992년에는 64M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994년 256MB D램 △1996년 1GB D램 △2001년 4GB D램 △2010년 30나노(nm) 2GB DDR3 D램 △2019년 10나노 8GB DDR4 D램 등도 모두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 세계 최고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 확보에 성공했다.

1987년 삼성회장 취임식 당시의 이건희 회장 모습./ 삼성전자
1987년 삼성회장 취임식 당시의 이건희 회장 모습./ 삼성전자

반도체와 더불어 삼성전자 신경영의 상징으론 ‘휴대폰’도 빼놓을 수 없다. 1987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공식 취임할 당시, 이건희 회장은 ‘신수종 사업’을 발굴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러면서 “반드시 1명 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휴대폰 사업의 중요성을 예견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은 휴대폰의 ‘품질’을 강조했다.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있었던 것도 애니콜 휴대폰 품질 저하에서 비롯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제품 품질 향상을 위해 ‘라인스톱제도’도 새롭게 도입했다. 작업자가 생산공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는 즉시, 모든 공정을 중단하고 불량 요인을 제거한 뒤 설비를 재가동하는 제도다.

이는 휴대폰뿐만 아니라 반도체, 가전 등 삼성전자의 모든 생산 공정에 적용됐다. 이 같은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 된 후, 1995년 8월, 삼성전자 휴대폰 모델인 애니콜은 51.5%를 기록하며 국내 정상을 차지하게 됐다.

이후 삼성전자는 2007년 아이폰을 시작으로 개막한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2010년 ‘갤럭시S1’을 공개했다. 운영체제 역시 기존 마이크로소프트 기반에서 구글 안드로이드로 바꾸며 소비자 니즈를 반영했다. 그 결과, 현재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는 애플 아이폰과 함께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기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0%로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신경영 성과는 전문가들이 기업인으로써 이건희 회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기도 하다. 김재구 한국경영학회장은 18일 개최된 이건희 회장의 3주기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미래 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으로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평가했다. 

로저 마틴 토론토대학교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도 “이건희 선대회장이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유한 전략 이론가였다”며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통합적 사상가였다”고 말했다.

4차 산업시대에 맞춘 AI, 로봇 등 신사업 먹거리 발굴, HBM 등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강화, 젊은 세대 니즈를 맞춘 신제품 출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사진은 19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은 이재용 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4차 산업시대에 맞춘 AI, 로봇 등 신사업 먹거리 발굴, HBM 등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 강화, 젊은 세대 니즈를 맞춘 신제품 출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로 꼽힌다. 사진은 19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를 찾은 이재용 회장이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변화하는 4차 산업시대, 두 번째 ‘신경영’ 준비해야

삼성전자 신경영 성공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미래 먹거리 사업을 준비해 얻은 결실이다. 다만 이건희 회장을 이어 삼성 그룹 총수 자리를 맡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회장이 넘어야할 장애물은 앞으로 더욱 많아질 전망이다. 바로 변화하는 글로벌 IT산업 트렌드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 프리미엄 가전제품군을 바탕으로 강력한 ‘하드웨어’ 산업을 이끌었다면, 이재용 회장은 이제 4차 산업시대에 맞춰, AI, 로봇, 소프트웨어, 초고속 통신 등 새로운 신산업 영역에서 영향력을 키워야할 시점이다.

특히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자랑하던 반도체 산업 영역에서의 트렌드도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중요성이 급격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RAM) 반도체를 수직으로 쌓아 만드는 반도체다. AI연산 성능을 극대화 시켜줄 수 있어, 엔비디아, 구글 등 글로벌 AI전문기업들의 주문이 쏟아지는 제품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모르도르인텔리전스(Mordor Intelligence)에 따르면 HBM 시장 규모는 올해 20억4,000만달러(2조7,277억원) 규모로 추산되며, 오는 2028년엔 63억2,000만달러(8조4,505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HBM시장에서 삼성전자는 현재 ‘2인자’로 밀려난 상태다. 과거 2세대 모델인 ‘HBM2’ 양산을 선점하며 시장 주도권을 가져갔으나, 지난해 4세대인 HBM3 양산 선두를 SK하이닉스에게 내줬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랜드포스(Trendforce)’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HBM 상위 3개 공급업체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으로 각각 시장 점유율은 50%, 40%, 10%를 차지했다.

여기서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HBM 중 가장 상위 모델인 ‘HBM3’ 제품 생산이 가능한 곳은 SK하이닉스 뿐이기 때문이다. 트렌드포스는 “현재 HBM3 제품을 양산하는 업체는 SK하이닉스가 유일하다”며 “HBM3 채택 고객이 늘어날수록 시장점유율은 53%까지 높아질 것이며, 반면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각각 38%와 9%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마트폰 사업의 중추인 갤럭시 시리즈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골치 아픈 과제로 꼽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따르면 ‘2023 스마트폰 사용률 & 브랜드, 스마트워치, 무선이어폰에 대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대 스마트폰 이용자의 65%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갤럭시 이용자는 32%에 불과했다. 30대 이상부터는 갤럭시 점유율이 더 높게 나타났지만, 젊은 세대에서의 사용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야할 스마트폰 시장에서 결코 좋은 신호가 아니다. 지난해 대비 20대 점유율도 아이폰은 13%p 증가한 반면, 갤럭시는 12%p 하락했다.

지난 30년 이건희 회장을 필두로 한 신경영은 삼성전자를 세계 굴지의 IT기업으로 세우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하고 있다. 1993년 시작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 수 있다. 이제 그 뒤를 잇는 이재용 회장이 ‘두번째 신경영’으로 삼성전자에 또 한 번의 기적을 가져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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