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해선 기술 개발이 우선일까, 환경 개선이 우선일까. 사진은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로봇 휠체어. /한국기계연구원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해선 기술 개발이 우선일까, 환경 개선이 우선일까. 사진은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로봇 휠체어. /한국기계연구원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이 질문에 매 순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입장을 표명한다. 장애인 이동권 증진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떠올릴 때가 있다. 기술 개발이 우선인가 환경 개선이 우선인가.

◇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 첫 번째, 기술의 진보

최근 한국기계연구원에서 국내 최초로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고 스탠딩 기능이 탑재된 로봇 휠체어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동안 휠체어 좌석이 펼쳐져 직립 형태의 스탠딩 모듈을 탑재하거나 계단을 오르 내릴 수 있는 바퀴 모듈이 탑재된 휠체어가 각각 개발돼 오기는 하였지만 이 두 가지 기능이 합쳐진 모듈은 국내에서 처음 개발됐다.

그동안은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계단이 있는 공간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러한 로봇 휠체어가 개발된다면 높은 공간에 있는 물건을 내린다거나 몇 개의 계단은 쉽게 오르내릴 수 있어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로봇 휠체어는 하지 장애인들에게는 일상생활에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기술로 궁극적으로는 큰 기대를 품게 한다.

한국기계연구원은 하지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도록 계단을 오르내리는 ‘계단 등반 모듈’, 일어서서 이동하고 탑승한 상태에서는 눕고 기울이는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스탠딩 모듈’을 구현하고 두 모듈을 통합한 로봇 휠체어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한국기계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은 하지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도록 계단을 오르내리는 ‘계단 등반 모듈’, 일어서서 이동하고 탑승한 상태에서는 눕고 기울이는 등 다양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스탠딩 모듈’을 구현하고 두 모듈을 통합한 로봇 휠체어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 한국기계연구원

그러나 희소식과 더불어 장애인들의 우려도 크다. 고도의 과학기술 집합체가 상용화 된다고 하더라도 그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컴퓨터라는 신기술이 일상에 보급 될 때와 현재 스마트폰 한 대의 가격과 비교만 해보아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어쩌면 로봇 휠체어를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지불 능력이 있는 한정 인원 뿐일 것이며 그렇다면 지불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는 계단을 오를 수도 잠깐 직립 형태로 서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기술 개발을 통해 우리 사회에 살고있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일상 격차나 불편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고무적이지만, 한편으로 장애인 집단 내에서 기회의 불평등이 발생한다면 로봇 휠체어와 같은 기술 개발은 어떻게 장애인의 삶에 적용해야만 할까.

◇ 평등을 실현하는 방법 두 번째, 인식의 변화

최근 협동조합 무의(Muui)에서 ‘모두의 1층’이라는 프로젝트를 성동구에서 진행했다. 성수동 일대의 1층 점포를 찾아다니며 단차와 계단 대신 경사로를 설치하여 장애인은 물론 영유아 유아차나 어르신들의 편리한 방문을 도모하기 위한 대중 캠페인이다.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인간이 마주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만능주의로 자칫 불평등 문제를 내일로 미뤄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협동조합 무의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인간이 마주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만능주의로 자칫 불평등 문제를 내일로 미뤄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협동조합 무의

물론 모든 점포가 이 프로젝트를 환영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계단을 없애거나 경사로를 설치하는데 건물주와의 협의가 관건이고, 인도나 도로를 점용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있어 까다롭고 번거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는 장애인을 위한 인식 개선 캠페인임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을 ‘모두’에 포함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장애인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고 소비자로서 1층 점포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알린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되려 로봇 휠체어보다 더 크다고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최소한 건물 1층에 접근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아 민간 단체와 자원활동가들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리나라의 이동권과 접근권의 미비한 실태를 마주하는 것 같다.

또한 이 프로젝트에 뜨겁게 반응하는 점주들도 있지만 사유 공간을 침범한다고 인식하거나, 장애인 등을 궁극적으로 방문하는 고객으로 수용하지 않거나, 세입자로서 건물주와 협의해야한다는 부담감 등이 여전히 풀어야 하는 난제이다.

◇ 기술 진보가 먼저냐, 환경 개선이 먼저냐

이미 우리의 삶은 디지털과 기술이 만연한 사회로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계산대에 있던 노동자들은 키오스크로 모두 교체되었고, 치킨도 커피도 이제는 사람이 아닌 로봇 바리스타가 만드는 시대가 오고 있다. 자율주행 차량이 운전자를 대신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장애인에게도 적절한 기술 적용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분명 기술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인간이 마주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 만능주의로 자칫 불평등 문제를 내일로 미뤄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기술도 바로 지금 인간이, 특히 장애인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를 당장은 해결해 주지 못한다.

영국의 마이클 올리버(Micheal Oliver) 교수가 처음 환경의장벽을 지적하며 장애의 사회적 모델을 주장한지 약 6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무수한 장벽은 그대로이고 그 사이 기술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의 진보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장애인이 마주한 불평등 문제를 내일로 미루는 것 아닌지 곱씹어 생각해보게 된다.

내일의 불평등은 기술 개발을 통해 해결하더라도 당장 우리가 직면한 장애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공평한 취급(equitable treatment)’가 아니라 ‘평등(equality)’이고 그런 점에서 ‘모두의 1층’ 프로젝트에 관심의 무게 추가 조금 더 쏠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장애인의 원하는 일상은 단순하다. 트랜스포머처럼 화려하고 최첨단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계단을 오르내리고 마치 장애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대체 수단을 모두 활용하여 비장애인의 삶과 동일하게 사는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물론 개인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장애인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도 사회의 일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제반의 조건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때로 문턱이 없는 상점에 들어가거나, 경사로가 설치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을 대신 내려줄 약간의 존중과 선반이 자동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적당한 기술을 말하는 것이다.

휠체어가 계단을 오를 수 있는 것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어떤 신체적 조건이라도 원하는 장소에 도달할 수 있는 자유가 곧 평등이다. 로봇 휠체어의 개발은 어떤 개인에게 공평한 조건을 만들어주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구조적인 평등이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프로필 

 

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현) 장애인문화예술원 비상임이사 

전) 한국방송공사 앵커 

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이사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서울관광재단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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