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팜에서 자란 표고버섯·대마로 의약품원료 개발 연구
토양 오염 주범 폐양액으로 작물 재배 촉진하는 ‘클로렐라’도 생산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물(天然物)’은 이제 의약·화학 산업 분야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에 에서는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를 방문해 미래 농업 및 의약산업에 이용될 천연물 자원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진=박설민 기자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물(天然物)’은 이제 의약·화학 산업 분야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에 에서는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를 방문해 미래 농업 및 의약산업에 이용될 천연물 자원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봤다./ 사진=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인류 최초의 산업이었던 ‘농업’이 변화하고 있다. 원초적 목적인 ‘식량’ 공급을 넘어 자원 발굴까지 역할이 넓어지면서다. 특히 식물에서 추출한 ‘천연물(天然物)’은 이제 의약·화학 산업 분야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천연물은 식물 등 자연에서 산출되는 자연물이다. 관련 시장 규모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글로벌시장조사업체 ‘프레지던트 리서치’에 따르면 농업 기반 천연추출물 산업은 2030년 226억3,000만달러(한화 30조6,342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기술·산업 트렌드에 맞춰, 국내 연구기관 및 기업들 역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중 대표 기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 연구소’다. 연구소 내 위치한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에 개발한 첨단 농업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천연물 자원 연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를 방문해 미래 농업 및 의약산업에 이용될 천연물 자원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봤다.

KIST와 자동화기계설비 전문기업 ‘피앤피코리아’가 제작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박설민 기자
KIST와 자동화기계설비 전문기업 ‘피앤피코리아’가 제작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 박설민 기자

◇ KIST 컨테이너팜에선 ‘암 잡는 표고버섯’ 자란다

18일 KIST 강릉분원 천연물 연구소의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의 내부로 들어서자 하늘색빛의 컨테이너박스 하나가 눈에 띄었다. 웅웅거리는 기계음이 울리는 이 컨테이너박스의 이름은 ‘그린셀’. 지난해 3월 KIST와 자동화기계설비 전문기업 ‘피앤피코리아’가 제작한 컨테이너형 스마트팜이다.

그린셀 내부로 들어가자 쌉싸름한 나무향을 연상케 하는 표고버섯향이 가득했다. 각각의 선반과 레일로 구성된 그린셀 내부에는 참나무 톱밥배지들이 늘어져 있었고, 각각의 배지들에선 표고버섯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연구원들에 따르면 재배되고 있는 버섯들은 약 일주일정도 지난 어린 것들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갈라진 그물무늬가 있는 버섯이 되려면 최소 10일은 지나야 한다.

컨테이너팜 그린셀 내부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KIST 연구진들./ 박설민 기자
컨테이너팜 그린셀 내부에서 표고버섯을 재배하고 있는 KIST 연구진들./ 박설민 기자

컨테이너팜이 표고버섯 재배에 유리한 이유는 생장 환경 조절이 유리하다는 점에 있다. 일반적으로 버섯 재배는 서늘한 온도와 깨끗한 위생환경에서 이뤄진다. 특히 버섯이 자라나는 생육 단계에서 10~25℃의 온도와 일정 습도가 유지되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죽는다. 이때 사물인터넷(IoT) 기반 자동화설비 및 ICT복합환경제어기술이 적용된 그린셀은 버섯이 자라는 최적의 생장 환경을 지속 유지해줄 수 있다.

박정민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산에서 버섯을 기르면 온·습도 조절과 해충 방제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며 “반면 컨테이너팜에서 기르면 벤틸레이터, 이산화탄소조절시스템, 그리고 밀폐된 공간의 안정성 등등이 있어 이 같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린셀에서 자란 표고버섯들은 김호연 KIST 책임연구원팀이 진행하는 ‘표고버섯 항산화능 증진기술’ 연구에 사용된다. 이는 환경제어 및 엘리시터(Elicitors, 식물면역활성제)를 통해 표고버섯에 함유된 기능성분 ‘렌티난(Lentinan)’ 등을 증대시키는 기술 연구다. 특히, 렌티난은 암세포의 발생과 증식을 억제하여 대표적인 항암 성분 중 하나로 꼽힌다. KIST 연구팀은 컨테이너팜 기반 다양한 버섯의 기능성 천연물 증진연구와 버섯균사체를 활용한 각종 연구를 ㈜피앤피코리아와 지속해나갈 예정이다.

그린셀에서 자란 표고버섯들. 연구원들에 따르면 재배되고 있는 버섯들은 약 일주일정도 지난 어린 것들이라고 했다.  다 자란 버섯들은 ‘표고버섯 항산화능 증진기술’ 연구에 사용된다. / 박설민 기자
그린셀에서 자란 표고버섯들. 연구원들에 따르면 재배되고 있는 버섯들은 약 일주일정도 지난 어린 것들이라고 했다.  다 자란 버섯들은 ‘표고버섯 항산화능 증진기술’ 연구에 사용된다. / 박설민 기자

◇ 난치병 효과 탁월한 ‘의료용 대마’ 연구도 진행

버섯 컨테이너팜을 나와 야외 농장 지역으로 이동하자, 두 번째 컨테이너팜이 보였다. 청록색을 띄고 있는 컨테이너팜은 판넬로 둘러싸여, 마치 작은 주택처럼 보였다. 팜 내부에 들어서자 퀴퀴한 풀냄새가 코를 찔렀다. 예전 방문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히피거리에서 맡은 것과 비슷한 향기였다.

정제형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 연구팀에서 운영하는 이 컨테이너팜에선 ‘의료용 대마’가 재배되고 있었다. 퀴퀴한 풀냄새는 바로 이 대마에서 난 것이었다. 수확기가 가까워진 대마는 습기가 줄어 약간 마른 느낌이었고, 향이 강했다. 컨테이너팜 내부는 실시간 온습도조절장치 및 LED장치, 양액공급장치가 장착돼, 대마가 최적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의료용 대마 연구를 위한 작물이 자라고 있는 컨테이너팜 내부 모습. 대마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박설민 기자
의료용 대마 연구를 위한 작물이 자라고 있는 컨테이너팜 내부 모습. 대마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박설민 기자

대마는 ‘마약류’로 분류되지만, KIST에서는 학술연구용으로 허가를 받고 의료용 대마를 재배하고 있었다. 대마에서 추출하는 의료용 성분은 ‘칸나비디올(cannabidiol, CBD)’로 뇌전증, 다발성경화증 등 희귀, 난치병에 매우 효과적이다. 의약품 시장에서 의료용 대마가 떠오르는 신사업 분야로 손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시장조사기관 프레지던트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CBD 시장 규모는 158억8,000만달러(21조4,745억원)였으며, 2032년에는 약 624억1,000만달러(84조 4,657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정제형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대마에서 의약품 원료인 CBD 함량은 높고 환각 성분인 THC는 없는 대마 품종을 수집·선발하고, 어떤 재배 환경 조건에서 생산 경제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연구팀과의 협업을 통해 컴퓨터 비전을 활용한 CBD 함량 예측 및 최적 수확시기 결정 연구, 그리고 분자생물학적인 측면에서대마 유래 의약품 원료 성분에 대한 생합성 경로 규명 연구도 진행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칸나비디올(cannabidiol, CBD)’ 성분이 많이 함유된 대마의 암꽃./ 박설민 기자
‘칸나비디올(cannabidiol, CBD)’ 성분이 많이 함유된 대마의 암꽃./ 박설민 기자

◇ 농가 골칫거리 ‘폐양액’, 작물 생장 돕는 ‘클로렐라’로 변신

두 개의 컨테이너팜을 살펴본 후, 비닐하우스 형태의 거대 야외 농장으로 이동했다. 토마토와 오이를 비롯한 연구용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스마트팜 옆, 연구실에 들어서자 녹색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커다란 8개의 유리관이 보였다. 마치 ‘프랑켄슈타인’ 등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할 것처럼 보이는 장치였다.

스마트 농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 장치의 이름은 ‘클로렐라 미니 배양기’다. 이름처럼 유리관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클로렐라’다. 클로렐라는 담수 녹조식물의 일종으로, 비타민·미네랄·단백질·엽록소 등이 풍부해 건강식품 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식품뿐만 아니라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이 진행한 실험에 따르면 클로렐라를 뿌린 상추와 배추의 생육은 약 32% 촉진된 것으로 나타났다. 딸기의 경우엔 무처리 작물보다 열매 수량이 57%나 늘었다.

박윤지 KIST 박사후 연구원은 스마트팜 폐양액을 재활용해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기술을 새롭게 고안했다./ 박설민 기자
박윤지 KIST 박사후 연구원은 스마트팜 폐양액을 재활용해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기술을 새롭게 고안했다./ 박설민 기자

이때 KIST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의 클로렐라 생산 장치가 갖는 특별함은 ‘폐양액’ 재활용에 있다. 스마트팜은 물이나 배지에 작물을 심고 생육에 필요한 양분을 녹인 양액을 공급해 재배한다. 이때 공급된 배양액 중 20~30%는 작물에 흡수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이를 폐양액이라 부른다. 단순 영양분이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될 수 있으나 토양의 과영양화, 하천 및 지하수 오염 등을 유발한다. 하지만 현재 적절한 법적 규제가 없고, 재처리 장치 설치엔 비용이 비싸 보급률이 현저히 낮은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박윤지 KIST 박사후 연구원은 스마트팜 폐양액 재활용 미세조류 배양기술을 새롭게 고안했다. 폐양액을 양분으로 클로렐라를 재배하는 것이다. 8개의 유리관으로 이뤄진 이 기기는 각 관마다 배양 조건을 다르게 설정 가능해, 폐양액 분해 효율과 클로렐라 생산량 최적 조건을 찾을 수 있다. 또 실시간 자동으로 이산화탄소 등 기체가 순환돼, 클로렐라 생장을 돕는다.

박윤지 KIST 박사후 연구원이 개발한 클로렐라 미니 배양기의 모습.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박설민 기자
박윤지 KIST 박사후 연구원이 개발한 클로렐라 미니 배양기의 모습.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박설민 기자

박윤지 연구원은 “클로렐라를 배양하기 위해선 기본 영양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반적으로 영양 수액 등이 사용되는데, 이 경우 적잖은 비용이 발생한다”며 “대신 폐양액을 사용하면 영양 수액 비용이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토양 오염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KIST는 클로렐라 최적 배양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배양 장치 및 전처리 프로세스를 자동화 시스템 설계에 대한 연구도 수행 중”이라며 “클로렐라 배양액에서 바이오매스를 제거하고 남은 폐양액을 식물성 비료나 식물생장조절제로 활용해 작물 생장 조절이 가능한 메커니즘도 개발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