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1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서 ‘장애인 비행기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1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에서 ‘장애인 비행기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최근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지하철 이동권 시위를 확대해 ‘비행기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공항철도와 공항, 국내 항공사를 찾아갔다.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비행기 이동권 보장 요구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장애인 이동권 발전사에 또 다른 핵심 페이지가 될 것이다.

과거와 달리 대중관광이 활성화되면서 이제 전 세계인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비행기를 교통수단으로 활용해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며 세계를 오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편의성마저도 장애인에게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장애인에게 비행기는 여전히 만족스럽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 저렴한 비용을 핑계 삼은 장애인 차별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동 장애인이나 시청각 장애인이 항공기를 이용할 때 차별받지 않도록 직권 조사한 사례가 있다. 코로나19 이전 저비용 항공사(Low Cost Carrier:LCC)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부터 항공 운송 품질이 상당 수준 하락해 각종 민원이 넘쳐났던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저비용 항공사들은 저렴한 비용을 내세워 항공사가 의무적으로 제공해야하는 서비스마저도 불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은 물론 장애인 탑승을 거절하거나 차별하는 일이 빈번했다.

일례로 2014년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해 라오스로 여행을 가려던 이동 장애인이 항공사가 건강상태 악화 및 부가적 지출에 대한 책임을 탑승객에게 전가하고 이에 대한 서약서에 서명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비행기를 탑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장애인 탑승객에게 직접적 차별을 가한 행위였다. 

이러한 사건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휠체어 탑재 과정에서 파손이 생겨도 항공사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을 강요한다거나, 탑승교 연결이 안돼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과정에서 이동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고 알아서 좌석까지 이동하라는 식의 방관 행위로 모욕과 차별을 서슴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국가인권윈원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 및 공항, 7개 항공사에 정당한 편의 제공 의무를 비롯해 차별 실태 확인과 개선 방안을 요구했지만 상당히 오랜기간 줄다리기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1년이 넘는 시간 지연된 권고안은 2017년 수용됐으나 안건 자체를 수용하는 것과 실제 국토부, 공항공사와 항공사가 변화를 만드는 것은 별개의 문제처럼 진척이 더뎠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비행기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항공기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은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당시 인권위가 국토부에 요구한 권고 사항은 여객 탑승교 미시설 공항에 대한 휠체어 승강설비 설치 지도 및 감독이었고, 인천공항공사에는 여객 탑승교와 항공기 연결 부분 높낮이 차 제거를 권고했다. 그러나 인천공항을 이용하면서 항공기와 탑승교 사이의 높낮이 차가 제거되거나, 높낮이 차를 제거하기 위해 안전 발판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또 인권위는 한국공항공사에는 여객 탑승교 설치가 어려운 사천, 군산, 원주 공항에 휠체어 승강 설비 구비를 권고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해당 공항에 교통약자를 위한 설비가 구비됐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그런 설비를 이용해봤다는 장애인의 후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전혀 진척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인권위는 7개 항공사에 장애인 승객의 인적 서비스 제공 및 서비스 전담 직원에 대한 교육, 기내용 휠체어와 상반신 고정 안전 벨트 비치, 장애인의 항공기 이용 시 필요한 서비스 사전 요청 시스템 마련을 요구했다. 이에 기민하게 반응한 것은 메이저 항공사 2곳에 불과했고, 저비용 항공사는 여전히 비용 부담을 무기 삼아 제대로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2017년 인권위의 권고가 수용되고 벌써 6년이 지났다. 비행기 이용의 편의성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개인의 체감 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넘쳐난다. 특히 전동휠체어 배터리 탑재는 비행기 이동권 중 가장 뜨거운 이슈다. 국제항공운송협회(이하 IATA)에 휠체어 등 이동 보조기기에 부착된 배터리의 비행기 탑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승객으로서 국내 항공사들의 응대 방식을 보면 당혹스럽고 불쾌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하다. 6년전과 비교해 장애인에 대한 직접적 차별만 사라졌을 뿐, 항공사 직원들이 휠체어를 다루는 방식과 휠체어 배터리를 탑재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태도가 여전히 억압적이고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전동휠체어 배터리는 폭발물이 아니다. 삼성 갤럭시 휴대폰이 기내에서 폭발한 사건 이후 항공기 내 배터리 탑재 규정이 상당히 엄격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배터리가 폭발하는 것은 아니며, 충분히 안전하게 운송 가능하다는 것이 국제 기준에 명시된 내용이다. 항공사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부는 휠체어 배터리를 어떻게 탑재할 지 몰라 항공사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며 탑승객에게 불안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콜센터 직원에게 전달한 휠체어 배터리 정보가 체크인 카운터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체크인 카운터와 수화물 담당, 콜센터의 말이 달라 혼선을 빚는 경우가 있다.

항공사마다 배터리 탑재 기준이 다른 것은 물론이고 리튬배터리에 대한 집착도 심하다. 이미 국제 기준에는 휠체어 배터리를 5개로 구분하고 있음에도 대개 우리나라 항공사의 경우 리튬이냐 아니냐를 우선 따지곤 한다. 휠체어 배터리가 리튬이 아니라고 하면 더더욱 혼란스러워하는 항공사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국제 기준마저도 제대로 숙지되어 있지 않는 국내 항공사의 면모를 보며 씁쓸한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모든 과정에서 발생되는 불이익과 피해는 온전히 장애인 탑승객의 몫이 된다는 점에서 과도한 배터리 규제 및 일관되지 않는 배터리 탑재 규정은 장애인을 억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만약 전동휠체어 배터리 등 이동보조기기 운송에 대한 국제 기준이 없었다면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발행돼 이를 준수하기만 하면 되는 사안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장애인들의 탑승을 어렵게 하는 것은 결국 항공사들이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한 인식이 부재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 전진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비행기 이동권

또 하나, 휠체어를 수화물로 탑재하는 과정에서 파손 문제가 빈번하고, 자리를 여러 번 옮겨앉는 것이 힘든 장애인들이 꾸준히 기내에 휠체어를 적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이에 IATA에서는 기내에 휠체어 적재 보관시설이 있는 경우 승객이 기내에 휠체어는 물론 지팡이, 보행기, 목발 등의 이동 보조기구 보관을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기내에 수동휠체어 보관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항공운송법((ACAA)에 승객 좌석이 100석 이상인 비행기에 수동휠체어를 위한 우선 적재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최소 13인치x36인치x42인치 규격의 공간을 확보해 기내에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공항에서 이동중인 델타항공 항공기 모습. / 인천국제공항공사 
미국은 항공운송법((ACAA)에 승객 좌석이 100석 이상인 비행기에 수동휠체어를 위한 우선 적재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최소 13인치x36인치x42인치 규격의 공간을 확보해 기내에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진은 인천공항에서 이동중인 델타항공 항공기 모습. / 인천국제공항공사 

미국은 항공운송법(ACAA)에 승객 좌석이 100석 이상인 비행기에 수동휠체어를 위한 우선 적재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최소 13인치x36인치x42인치 규격의 공간을 확보해 기내에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도록 한다고 했다. 또한, 승무원은 휠체어 보관을 다른 수화물보다 우선시 해야 한다는 내용과 이에 대한 책임이 승무원에게 있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이러한 변화 때문인지 미국의 유나이티드 항공사에도 접이식 수동 휠체어의 경우, 장애인 탑승객이 자신의 휠체어를 기내에 탑재 할 수 있도록 웹사이트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항공사 대부분은 웹사이트에 기내에 휠체어 적재 가능 여부조차 안내하지 않고 있다. 과연 국내 항공사들이 이러한 세계적 변화를 인지하고 있는지 조차도 의문이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매번 미국을 부러워 할 수 없지만, 이동권 문제만큼은 진일보하는 미국을 부러워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미국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실험을 시도해 부러움을 자아냈다.

2023년 항공기 인테리어 엑스포에서 델타항공프로덕트(DFP)가 기내 휠체어 전용 좌석 디자인을 선보였다. 기존 좌석을 개조하지 않고도 휠체어를 고정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으로, 바닥에 고정장치가 있어 휠체어를 고정하는 방식이다. 별도의 추가공간이나 개보수가 필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실제로 델타항공프로덕트와 미국 연방항공청이 휠체어 좌석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그저 부럽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비행기 이동권 보장을 위해 항공사와 정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다소 낯설다. 매번 거리로 나가고 지하철을 가로막고 공항 체크인 카운터 앞에서 절규를 해야만 조금 나아지는 현실이다. 언제쯤이면 장애인이 시위를 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할 지 지쳐가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시위를 통해 어제보다 한 바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비행기 이동권 보장 요구는 이제 막 시작됐다. 여행을 즐기는 많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 친구들에게도 비행기 이동권 보장이 뜨겁게 공감되기를 바란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프로필 
 

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현) 장애인문화예술원 비상임이사 

전) 한국방송공사 앵커 

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이사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서울관광재단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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