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V-KSTAR’ 연구 현장 취재
​​​​​​​슈퍼컴퓨터 활용, 실제와 똑같은 ‘가상현실 핵융합로’ 구현

핵융합로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구축·관리 시 발생하는 비용도 막대하다. 이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이다. 핵융합연에서는 2020년부터 ‘가상현실(VR) 핵융합 실증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박설민 기자
핵융합로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 구축·관리 시 발생하는 비용도 막대하다. 이에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이다. 핵융합연에서는 2020년부터 ‘가상현실(VR) 핵융합 실증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사진=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대전=박설민 기자  ‘핵융합’이란 가벼운 원자핵들이 무거운 원자핵으로 융합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질량 결손이 에너지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선 수억도에 달하는 높은 열과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된다. 태양이 거의 무한한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는 것도 바로 핵융합 때문이다.

이에 전 세계 과학자들은 지상에서 안전한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는 인공태양인 ‘핵융합로’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핵융합로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 구축·관리 시 발생하는 비용도 막대하다.

이 같은 대책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디지털 트윈 핵융합로’다. 실제 핵융합로 구동 전, 디지털 트윈 공간 안에 가상의 핵융합로를 만들어 실험하는 것이다. 현재 이 기술 개발 연구를 주도하는 곳은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핵융합연)’이다. 핵융합연에서는 2020년부터 ‘가상현실(VR) 핵융합 실증로’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미래 핵융합로 연구의 주축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가상현실 인공태양 만들기’ 프로젝트의 현재 연구 현황은 어떻게 될까. 이를 확인하고자 <시사위크>에서는 대전 핵융합연에 방문, 현재 개발 중인 가상현실 핵융합 실증로의 실제 운용 현장과 연구 현황을 살펴봤다.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를 구성하는 초전도 자석 코일 장치의 모습./ 박설민 기자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를 구성하는 초전도 자석 코일 장치의 모습./ 박설민 기자

◇ 핵융합 발전의 핵심 ‘플라즈마 길들이기’, 가상공간서 먼저 실험

지난해 12월 28일 찾아간 대전 핵융합연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 연구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KSTAR에 사용되는 거대한 부품이었다. 약3~5m 높이로 보이는 두꺼운 구리 코일과 초전도 자석을 칭칭 감아 만들어져 있었다. 이는 KSTAR 내부의 자기장을 유지하는 장치였다. 이 장치들은 원형으로 연결돼  핵융합 연구로인 KSTAR에 3.5 테슬라(T) 강도의 자기장을 발생시킨다.

KSTAR가 이처럼 거대한 구리 코일 장치로 둘러싸인 이유는 핵융합 시 발생하는 ‘플라즈마(Plasma)’를 가두기 위함이다. 이론상 핵융합 발전을 위해선 약 1억도에 달하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충분한 시간 동안 잡아둘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억도를 버티는 물질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 고온의 플라즈마를 가두는 것이다. 이 장치를 ‘토카막’이라고 부른다.

대전 핵융합연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의 실제 모습./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대전 핵융합연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Korea Superconducting Tokamak Advanced Research)’의 실제 모습./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그러나 토카막 장치를 이용해도 초고온 플라즈마를 잡아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섭씨 1억도가 넘는 초고온뿐만 아니라 토카막 내부 안쪽과 바깥쪽 부분에 생기는 압력차이, 자기장에서 발생하는 전류, 내부 입자들의 충돌 등 예상치 못한 변수가 굉장히 많다. 때문에 아무리 텅스텐으로 견고하게 만든 KSTAR라 할지라도 장시간 운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핵융합연이 목표로 하는 KSTAR의 플라즈마 유지 시간은 단 300초. 5분 정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핵융합연이 현재 연구 중인 기술이 바로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다. V-KSTAR은 이름처럼 가상현실 공간에 디지털 트윈 기술을 활용, 3차원의 KSTAR 시설을 구현해낸 기술이다. 지난 2020년부터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 연구부 부장팀이 ‘시뮬레이션 기반 가상 핵융합로 개발’ 과제의 일환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핵융합 연구에 적용한 것은 V-KSTAR가 처음이다. 핵융합연은 고성능 그래픽 기술로 구현된 KSTAR 장치에 3차원 형상 정보에 운전, 실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통합해서 표현할 수 있는 기술 확보를 목표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권재민 부장은 “핵융합로를 운용하는 과정은 굉장히 어려운데 설계가 맞는지, 플라즈마가 우리가 예상한대로 생성·유지가 될 것인지, 장치 스펙이 견딜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 가야한다”며 “V-KSTAR는 이를 디지털 트윈 가상공간에서 시뮬레이션해보고 설계·운용을 더 정교화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권재민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 연구부 부장./ 박설민 기자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권재민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 연구부 부장./ 박설민 기자

◇ 실제 핵융합로와 똑같은 ‘가상현실 KSTAR’… 슈퍼컴퓨터로 성능 ‘UP’

현재 V-KSTAR는 실제 현장에선 어떻게 운용되고 있을까. 권재민 부장의 안내를 따라 연구동 내부로 들어갔다. 연구동 내부는 마치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의 연구실을 현실에 재현한 듯했다. 수십 대의 컴퓨터와 함께 연구실 맨 앞엔 벽 전체 크기의 모니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현재 KSTAR 내부의 온도, 플라즈마 상태, 전류, 시설 내구도 등 수많은 정보가 실시간 표시되고 있었다.

연구실 한 편으로 이동하자 여러 대의 컴퓨터 모니터에 3차원 그래픽으로 구현된 KSTAR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로 V-KSTAR의 실제 모습이었다. 권재민 부장의 설명만 들었을 때는 일반 컴퓨터 게임 수준의 그래픽일 것이라 상상했다. 하지만 실제 V-KSTAR는 거의 실제 KSTAR의 모습과 똑같았다.

V-KSTAR는 실제 KSTAR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을 일이키는 토마칵, 주장치, 부대설비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컴퓨터 마우스로 클릭만하면 내부에서 실제 플라즈마가 흐르는 유체 현상, 전류, 각 부품별, 냉각수 온도 및 내부 입자 운동모습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이 가능했다. 핵융합 기술에 문외한인 기자조차도 어떤 부분이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의 실제 구동 모습./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의 실제 구동 모습./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는 핵융합로 내부 플라즈마 입자의 운동 모습까지 가상으로 구현 가능하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는 핵융합로 내부 플라즈마 입자의 운동 모습까지 가상으로 구현 가능하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권재민 부장은 “핵융합이나 물리 이론 연구만 하는 사람은 사실 실제 장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에 핵융합을 연구하는 사람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연구 효율을 높이고자 한 것이 바로 V-KSTAR”라고 말했다.

V-KSTAR는 현재 KSTAR 내부 정보 분석뿐만 아니라 실험 결과 예측도 초고속으로 가능했다. 실제로 권재민 부장이 플라즈마 관련 데이터를 입력하자 1분 만에 입자 운동 궤도와 핵융합로 내부 영향에 대한 시뮬레이션이 구동됐다. 이는 핵융합연 내부에 위치한 슈퍼컴퓨터 ‘카이로스(KAIROS)’ 덕분이다. 지난 2020년 도입된 카이로스는 약 1PF(페타플롭스)의 연산 능력을 가진 슈퍼컴퓨터다. 이는 1초에 1,000조번의 연산이 가능한 수준이다. 

권재민 부장은 “엔비디아의 GPU(그래픽 처리 장치)인 A100 등의 우수한 부품으로 구성된 카이로스는 일반 가정용 컴퓨터 자원 약 4,000대 규모 이상”이라며 “복잡한 플라즈마 현상 및 내부 입자 운동 분석 및 시뮬레이션화를 담당해 V-KSTAR의 뇌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의 뇌 역할을 하는 슈퍼컴퓨터 ‘카이로스(KAIROS)’./ 박설민 기자
가상현실 핵융합로 ‘V-KSTAR’의 뇌 역할을 하는 슈퍼컴퓨터 ‘카이로스(KAIROS)’./ 박설민 기자

◇ 윤곽 드러나는 ‘버추얼 데모’… 연구비 삭감은 ‘걱정’

핵융합연은 V-KSTAR 다음 연구도 현재 진행 중이다. 바로 ‘버추얼 데모(Virtual DEMO)’의 개발이다. 연구 목표는 한국형 핵융합 발전 실증로 ‘K-DEMO(데모)’를 가상현실 공간에 구현하는 것. 실제 실증로 구축 전 구축 설계 최적화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앞서 소개한 V-KSTAR 역시 버추얼 데모 연구의 1단계에 속하며 개발 마무리 예상 시점은 2026~2027년 정도다.

K-데모는 핵융합연에서 구축을 추진 중인 한국형 핵융합 발전 실증로다. 실제 핵융합로에서 생산한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하는 실험 시설이다. KSTAR와는 별개의 시설로 완공 시점은 아직 미정이다. 핵융합연 측에 따르면 완공 시점은 약 2050년쯤 될 전망이다. 이때 연구진들은 버추얼 데모에서 미리 K-데모의 설계 및 구동을 진행한 후 실제 구축에 나서게 된다.

핵융합연은 1단계 V-KSTAR 연구가 마무리 되면 ‘V-ITER’와 ‘V-BBS’ 구축을 진행할 계획이다. 2단계 V-ITER는 ‘국제 핵융합 실험로(ITER)’의 실제 구조를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핵융합연 및 국내 관련 연구자들은 ITER의 데이터를 디지털 트윈 기술로 이용 가능하다. 완성 예상 시점은 2031년이다. 3단계 ‘V-BBS’는 핵융합에너지를 전기로 전환시켜주는 ‘블랑켓’과 ‘BOP(주변기계장치)시스템’을 가상공간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기술 완성 예상 시점은 오는 2035년이다. 1~3단계가 모두 완료되면 이를 통합해 버추얼 데모를 2040년까지 최종 완성하게 된다. 

여기에 핵융합연은 ‘인공지능(AI)’ 기술도 도입할 예정이다. 버추얼 데모 내에 AI가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능은 △토카막 시뮬레이션 기술 △블랑켓-보조계통 시뮬레이션 △고속 핵융합 시뮬레이션 △버추얼 데모 기반 기술 △핵융합 빅데이터 처리 및 분석 등 5가지다.

이 5가지 기능 대규모 데이터에 대한 신속·정확한 분석이 필수다. 하지만 현재 핵융합연이 가지고 있는 슈퍼컴퓨터 카이로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핵융합로 내부에 만들어진 플라즈마 입자의 개수는 단위 부피당 1천경 개에 달할 정도로 데이터 규모가 크다. 이때 방대한 양의 데이터 분석에 최적화된 AI는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권재민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 연구부 부장은 1단계 V-KSTAR 연구가 마무리 되면 ‘V-ITER’와 ‘V-BBS’ 구축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설민 기자
권재민 권재민 핵융합연 통합시뮬레이션 연구부 부장은 1단계 V-KSTAR 연구가 마무리 되면 ‘V-ITER’와 ‘V-BBS’ 구축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설민 기자

권재민 부장은 “기존 슈퍼컴퓨터만 가지고 V-KSTAR 시뮬레이션을 돌릴 경우엔 데이터가 너무 많아 길게는 6시간 기다려야할 때도 있다”며 “이때 AI기술을 활용하면 시뮬레이션 구동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핵융합연은 1단계 연구가 거의 마무리된 만큼 올해 버추얼 데모 연구 진척도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걱정거리도 있다. 정부가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안을 대폭 삭감하면서다. 국회예산정책처가 10월 발표한 ‘2024년도 예산안 총괄 분석’ 자료에 따르면 핵융합연의 올해 주요사업비 예산은 전년 대비 14.9% 삭감됐다. KSTAR의 경우 가동을 멈출 수 없다. 때문에 다른 사업들의 예산은 이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핵융합연 관계자는 “연구원 주요사업비 예산이 줄어들면서 연구자들이 힘들어지는 상황인데 특히 소프트웨어 쪽 예산이 대폭 줄었다”며 “버추얼 데모 연구실 역시 예산이 크게 삭감돼 연구 속도가 늦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버추얼 데모와 V-KSTAR는 핵융합연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 대학 등 여러 산·학·연 전문가들이 협업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라며 “예산이 삭감되면서 과제를 1~2년 미뤘다 다시 시작하게 되면 그 사이 떠나는 기관, 전문가들이 발생해 사실상 연구 초기 단계로 돌아가는 것과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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