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상버스 도입 예산이 전년 대비 11.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충북 충주시 목행동 수소버스충전소에서 2022년 9월 준공식에서 한 장애인이 수소저상버스에 시승하고 있는 모습. / 충주시·뉴시스

지난해 12월 21일 정부는 2024년도 예산을 헌법에 명시된 기한인 12월 2일보다 19일 지연된 날에 지각 처리했다. 국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한 해 예산 처리가 지연된 만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많은 현안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연된 예산이라도 적절히 편성이 됐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로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비롯한 복지 예산 편성에 주목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무엇이 제 발 저리기라도 한 것인지, 2024년 정부 예산이 처리되자마자 장애인 관련 예산이 늘었다며 여론몰이를 해왔지만 대부분은 보건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에 집중돼 있고, 정작 궁금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증진하는 예산이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2023년과 2024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안을 뜯어 보았다. 2024년도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석상대(下石上臺) :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 괴기를 하고 표면적으로는 예산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게하는 숫자 눈속임에 실질적인 장애인 이동권 증진이 지연되는 것 같아 우려가 크다.

​2023 및 2024년 국토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비교. / 도표=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2023년 및 2024년 국토부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비교. / 도표=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2024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은 2023년도 대비 3.5% 증가했다. 주로 ‘특별교통수단 도입 보조’와 ‘교통약자 장거리 이동지원’, ‘교통약자 통합관리시스템 구축’의 예산 편성이 눈에 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장애인 콜택시 광역 이동과 이에 따른 부작용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한 예산을 편성해 제도를 공고히 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저상버스 도입 예산은 작년 대비 올해 무려 11.6%나 삭감됐다. 금액 또한 상당히 큰 액수이다. 정부는 2022년 제4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통해 202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62%를 저상버스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음에도 2024년 저상버스 도입 예산을 무려 220억이나 삭감했다. 

정부의 주장은 이렇다. 저상버스 제작사인 에디슨 모터스가 2023년 초 회생절차에 돌입하고, 시내버스 제작사였던 대우버스 역시 폐업과 국내법인 청산에 들어가게 되면서 저상버스 물량 생산에 차질이 있다는 것이 예산 삭감의 이유다.

과연 저상버스 제작사가 이 둘 뿐이겠는가. 저상버스 예산과 특별교통수단 예산은 모두 중요하다. 그럼에도 저상버스 예산을 줄여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예산을 늘리는 것은 자칫 장애 정책의 패러다임이 시혜적 방향으로 퇴행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보편적 복지 시행과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모든 시민을 위한 정책은 또 후 순위로 밀리고 지연되는 것만 같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또 다른 우려스러운 점은 적정한 인건비와 운영비를 측정하지 않는 문제다. 물리적 시설·수단 도입에 큰 금액을 지출하지만 정작 이러한 교통수단을 운영할 업체나 사람이 없다면 결국 주차장에 서 있는 차량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가 개최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제언 토론회’에서 특별교통수단의 대기시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운전원 수가 필요하고 이에 대한 과감한 예산 편성과 보조비율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정부는 2024년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예산이 이를 적절히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남은 것은 ‘불편함’이다. 올 한 해도 장애인들은 24시간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광역이동을 할 때 긴 대기시간을 감내할 수밖에 없고, 부족한 저상버스를 타기 위해 긴 시간을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이 이어질 것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에 괴어 둔 예산으로는 장애인 이동권을 증진할 수 없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교통약자를 위해서라도 이동권 증진에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국민의 자유로운 이동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프로필 

 

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비상임이사

현) 장애인문화예술원 비상임이사 

전) 한국방송공사 앵커 

전)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이사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서울관광재단 비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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