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첨단과학연구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양자컴퓨터’다. 압도적인 컴퓨팅 능력을 가지고 있어 4차 산업 시대를 넘어 다음 혁신 세대의 선도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 역시 양자컴퓨터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 그래픽=박설민 기자,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최근 첨단과학연구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양자컴퓨터’다. 압도적인 컴퓨팅 능력을 가지고 있어 4차 산업 시대를 넘어 다음 혁신 세대의 선도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 역시 양자컴퓨터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 그래픽=박설민 기자, 사진=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완전히 밀폐된 방 안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잠을 자고 있다. 이 방안에 방사성물질이 들어 있는 가이거 계수기, 계수기와 연결된 망치, 유독한 청산가리 가스가 들어 있는 유리병을 넣는다. 계수기는 방사성물질 원소가 붕괴될 경우 움직여 병 위로 망치를 떨어뜨리게 된다. 만약 병이 깨지면 독가스가 나와 고양이는 죽게 된다. 이때 방사성물질 원소 한 개가 1시간 내에 붕괴될 확률은 50%. 그렇다면 1시간 뒤에 고양이는 어떻게 됐을까.

물리학 전공이 아닌 사람이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고양이가 죽었을 확률은 50%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르다. 방문을 열어 확인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상태다. 헛소리 같지만 ‘양자의 세계’에선 가능하다. 이를 우리는 ‘양자중첩(quantum superposition)’이라고 부른다.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이 최근 첨단과학연구의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바로 ‘양자컴퓨터’다. 압도적인 컴퓨팅 능력을 가지고 있어 4차 산업 시대를 넘어 다음 혁신 세대의 선도 기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각국 역시 양자컴퓨터 기술 확보를 위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 압도적 연산 능력의 양자컴퓨터의 비결은 ‘양자중첩’

양자컴퓨터가 4차 산업시대 핵심 기술로 떠오르는 이유는 고전 컴퓨터와의 구동 원리 차이에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는 ‘비트’ 단위를 사용한다. 숫자 0과 1을 한 번씩 입력하는 연산 방식이다. 가장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도 비트 연산 방식을 사용한다. 비트 연산 방식의 경우 고차원 연산을 위해선 수백만 개에 이르는 프로세서를 병렬 연결해 구동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전력과 컴퓨팅 자원이 소모된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비트 방식이 아닌 ‘큐비트’ 단위로 연산을 실행한다. 큐비트는 0과 1을 동시에 공존시켜 계산하는 연산 단위다. 앞서 설명한 양자중첩의 원리를 사용한다. 쉽게 말해 일반 컴퓨터가 0과 1만을 연산 단위로 사용한다면 큐비트 기반 양자컴퓨터는 0과 1뿐만 아니라 0이면서 동시에 1인 양자중첩이 발생한 단위도 계산에 사용할 수 있다.

양자중첩현상 덕분에 큐비트가 늘어나면 양자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예를 들어 0과 1, 2개의 큐비트는 00, 01, 10, 11의 4가지 상태로 중첩된다. 따라서 n개의 큐비트는 2의 n제곱만큼 중첩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20개의 큐비트로 이뤄진 양자컴퓨터는 104만8,576개의 계산을 1초 만에 해낼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강력한 연산 능력은 실제로 증명되기도 했다. 2019년 구글이 공개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Sycamore)’는 기존 슈퍼컴퓨터가 푸는데 1만 년 이상 걸릴 난제를 단 2분 30초 만에 풀어내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강력한 연산 능력과 컴퓨팅 자원 절감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기존 컴퓨터 대비 전력 소모량도 현저히 적다. 세계 1위 선응의 슈퍼컴퓨터 ‘프론티어’가 온전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선 21.MW 정도의 전력이 소모된다. 이는 작은 마을이 한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반면 캐나다 컴퓨터 개발회사 ‘D-Wave’에서 개발한 양자컴퓨터의 전력 소모량이 0.025MW 수준이다. 슈퍼컴퓨터 프론티어의 850분의 1에 불과하다.

첨단의료분야에서도 양자컴퓨터의 응용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난치암 치료용 신약 개발, 최적 복용량 산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 고속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첨단의료분야에서도 양자컴퓨터의 응용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난치암 치료용 신약 개발, 최적 복용량 산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 고속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 활용분야 무궁무진… AI·첨단의료 등 응용 기대

강력한 연산과 컴퓨팅 자원 능력을 갖춘 양자컴퓨터는 응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양자컴퓨터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새로운 두뇌가 될 것으로 기대 받는다. 대규모 연산 및 전력 소모량 감소를 통한 AI성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최재혁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기술연구소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양자컴퓨터가 갖는 강점은 양자중첩 상태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며 “이를 통해 굉장히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AI기술 고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학습시키는 것”이라며 “양자 AI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면 훨씬 더 강력한 AI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첨단의료분야에서도 양자컴퓨터의 응용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난치암 치료용 신약 개발, 최적 복용량 산출,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 고속화 연구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스페인 CUNEF 대학교의 호세 루이스 살메론 데이터과학연구소장 연구팀은 발렌시아 사군토병원 갑상선 수술팀과 양자컴퓨터를 사용해 수술 후 합병증 예방 예측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사군토 병원 의료진과 CUNEF 연구팀은 갑상선 수술 환자의 저칼슘혈증 예측에 양자컴퓨터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테스트했다. 그 결과 일반 컴퓨터를 사용하는 기존 예측 방식보다 92% 높은 정확도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저칼슘혈증이란 체내 칼슘수치가 정상보다 낮은 상태다. 주로 갑상선 수술 환자에게서 발생하며 근육통과 복통, 손발 경련 등을 일으킨다.

최재혁 양자기술연구소장은 “양자컴퓨터는 고전 컴퓨터로 할 수 없는 막대한 연산에도 특화돼 있다”며 “때문에 제약이나 의료쪽에서 각 개인의 DNA 특성에 맞는 신형 약물을 제조하거나 개인 맞춤형 방사선 치료 데이터 확보 등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 CSC-IT센터는 양자컴퓨터 ‘헬미(Helmi)’를 슈퍼컴퓨터 ‘루미(Lumi)’에 적용해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CSC-IT Center
핀란드 CSC-IT센터는 양자컴퓨터 ‘헬미(Helmi)’를 슈퍼컴퓨터 ‘루미(Lumi)’에 적용해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CSC-IT Center

◇ 양자컴퓨터 도입 활발한 유럽… 한국도 ‘표준硏’ 중심 기술개발 속도

양자컴퓨터 기술 확보를 위해 전 세계 과학계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가 최근 발표한 ‘KISTI 이슈 브리프 제 55호’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슈퍼컴퓨팅센터에서는 경쟁적으로 양자컴퓨터 도입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은 독일 ‘율리히 슈퍼컴퓨팅센터(Juelich Supercomputing Centre, JSC)’다. 이곳에서는 지난 2022년 1월 이미 캐나다 D-Wave가 개발한 5,000큐비트 규모의 양자 어닐러를 설치해 서비스 중이다. 이는 유럽에 설치된 첫 번째 양자컴퓨터다. 율리히 슈퍼컴퓨팅센터는 현재 프랑스의 국립고성능컴퓨팅기관(GENCI)과 중성원자 방식인 ‘파스칼(Pasqal)’ 양자컴퓨터도 도입해 내부적으로 사용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핀란드 슈퍼컴퓨터센터인 ‘CSC-IT센터’도 지난해 2월 양자컴퓨터 ‘헬미(HELMI)’를 도입했다. CSC-IT과학센터는 헬미를 슈퍼컴퓨터 ‘루미(Lumi)’에 적용해 하이브리드 형식으로 운영한다.  일반적인 목적의 슈퍼컴퓨터와 최적화 분야에서 강점을 갖은 양자컴퓨터의 장점을 결합시켜 사용 중이다.

이 같은 세계적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 과학계에서도 양자컴퓨터 기술력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이다. 대표적인 연구기관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 표준연)’이다. 표준연에서는 ‘2030년 양자기술 4대 강국’을 목표로 현재 50큐비트급 초전도 양자컴퓨터 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오는 2030년에는 500큐비트 이상 달성을 목표로 한다. 과기정통부는 이를 위해 오는 2026년까지 490억원의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다.

관련 연구는 현재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준연은 지난 10일 20큐비트 규모의 양자컴퓨터를 실제 시연하기도 했다. 양자과학기술 분야 산학연관 교류 플랫폼 ‘K-퀀텀 스퀘어 미팅’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시연에서 표준연은 총 7개의 양자 게이트에서 126개의 양자중첩 상태를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23일에는 미래 국방 양자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국방 양자 컴퓨팅 & 센싱 기술 특화연구센터’도 문을 열었다. 센터는 산하 총 4개 연구실로 구성된다. 각 연구실에서는 국방 양자컴퓨팅 기술, 원격관측 한계돌파 양자 수신기, 초정밀 양자 PNT 기술, 유도·탐지용 소형 복합 양자센서 개발에 매진한다. 국방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은 경희대가, 나머지 세 분야는 KRISS가 주관을 맡는다. 관련 사업에는 2029년까지 총 244억원이 투입된다.

센터장을 겸임하게 된 최재혁 양자기술연구소장은 “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해독 컴퓨터와 레이더 센서의 개발이 연합군에게 승리를 가져왔다”며 “양자컴퓨팅·센싱 분야에서 고전적 국방 기술을 앞지를 ‘국방 양자 우위성’을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가 개발한 초전도 양자컴퓨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가 개발한 초전도 양자컴퓨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 슈퍼컴퓨터 완전 대체는 불가능… ‘상호보완적 관계’ 기대

그렇다면 미래에 양자컴퓨터가 완전히 고전 컴퓨터를 대체하게 될까. 전문가들은 아직까진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어려운 도입 조건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극저온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 상태를 만들거나 진공(眞空) 상태, 극저온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특히 양자컴퓨터와 고전 방식의 슈퍼컴퓨터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양자컴퓨터는 암호화, 양자시스템 시뮬레이션 등 최적화된 일부 연산 분야에선 매우 우수한 성능을 보여준다. 반면 반면 기상 예측, 우주산업 등 분야 등 거의 모든 연구 시스템에선 슈퍼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다. 대부분의 연구 시스템이 슈퍼컴퓨터에 최적화된 컴퓨팅 환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복잡한 계산엔 양자컴퓨터가, 데이터 처리 및 소프트웨어 운용엔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킴모 코스키 CSC-IT과학센터장도 양자컴퓨터 헬미 도입 당시 “슈퍼컴퓨터와 양자컴퓨터 기술은 시너지 효과를 통해 서로를 강화한다”며 “슈퍼컴퓨터의 고성능 컴퓨팅 기술에 양자컴퓨터의 혁신적 연산 방법을 결합하면 차세대 융합 슈퍼컴퓨터 솔루션이 탄생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양자컴퓨터는 슈퍼컴퓨터를 대체하는 자원이 아닌 상호 보완적 존재가 될 것”이라며 “양자컴퓨터의 경우 슈퍼컴퓨터와 달리 연구 현장에서 직접 이용하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기존의 컴퓨터로 풀 수 없었던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당분간 슈퍼컴퓨터가 계속 사용될 것”이라며 “수치 연산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선 슈퍼컴퓨터를, AI 머신러닝과 데이터 조합 최적화 등에선 양자컴퓨터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역할분담을 하게 될 것이라 본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