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은 가장 난해한 과학 학문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때문에 현실 기술에 적용된다는 것을 상상하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바이오 등 첨단 과학·IT산업이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나침반을 따라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양자역학은 가장 난해한 과학 학문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때문에 현실 기술에 적용된다는 것을 상상하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바이오 등 첨단 과학·IT산업이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나침반을 따라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저명한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확률론 기반 ‘양자역학’을 반대하면 이 같이 말했다. 결정론적인 세계관을 선호한 아인슈타인에게 ‘뭐, 될 수도 있고’라는 불확실한 개념이 지배하는 양자역학은 상극이었다. 실제로 ‘슈뢰딩거의 고양이’ 등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이론을 살펴보면 헛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난해한 과학 학문 분야 중 하나로 꼽히는 양자역학이 현실 기술로 등장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시대,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산업계의 요구도 커지면서다. 이제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바이오 등 첨단 과학·IT산업은 양자 기술이라는 새로운 나침반을 따라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 “입자도 짝이 있다”… 미래 통신의 키워드 ‘양자 얽힘’

양자 기술은 특히 광학 분야에서의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양자광학기술 시장은 지난해 기준 4억달러(약 5,344억원) 규모로 추정되며 2030년에는 33억달러(약 4조4,088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연평균 시장 성장률은 무려 32.2%에 달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양자광학기술이 실제 적용 가능한 산업 분야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대표 분야는 ‘양자정보통신’이다. 양자정보통신이란 양자역학적 특성을 정보통신분야에 적용한 차세대 통신 기술이다. 특히 보안 측면에서 기촌 통신보다 훨씬 우수하다. ‘난수(亂數, 무작위로 만들어진 수열)’로 정보를 암호화한 후 양자에 실어보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중간에서 도청해도 정보를 가로챌 수 없다.

양자정보통신을 구현하기 위해 주목해야할 핵심 원리는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이는 원자보다 작은 두 개 이상의 입자가 거리와 무관하게 통일된 ‘양자상태’로 연결되는 현상을 뜻한다. 양자상태로 연결됐을 땐 한 입자에서 발생한 작용이 다른 입자에게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만든 빵 2개가 미국과 일본에 각각 수출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미국에서 빵을 구매한 고객이 한입 먹는다면 일본에 수출된 빵에선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무 변화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양자의 세계에선 미국에서 빵을 한입 베어 물면 일본에 있는 빵에도 똑같이 베어 문 자국이 생겨야 한다. 이것이 양자 얽힘이다.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을 이용한 양자정보통신은 미래 초고속 통신망 구축의 핵심 기술이 될 전망이다. 난수화한 정보를 양자 상태로 상대방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하면 해킹 걱정이 없는 강력한 보안의 ‘양자 네트워크 인터넷’ 기술도 상용화가 가능하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현상을 이용한 양자정보통신은 미래 초고속 통신망 구축의 핵심 기술이 될 전망이다. 난수화한 정보를 양자 상태로 상대방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하면 해킹 걱정이 없는 강력한 보안의 ‘양자 네트워크 인터넷’ 기술도 상용화가 가능하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양자 얽힘 현상이 양자정보통신에서 중요한 이유는 난수화한 정보를 양자 상태로 상대방에게 전송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만약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암호화된 정보를 ‘순간이동’시키는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해킹 걱정이 없는 강력한 보안의 ‘양자 네트워크 인터넷’ 기술도 상용화가 가능하다.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는 “기술 성숙 단계의 양자 네트워크는 양자 얽힘을 이용해 양자 채널을 구성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양자 얽힘을 이용, 양자 정보를 순간이동시킬 수 있고 양자 중계기 기반 양자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놀라운 점은 이 말도 안 되는 현상을 실제 과학계에서 증명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지난 2022년 노벨물리학상은 양자 얽힘의 존재 여부를 증명한 공로를 인정받은 물리학자 3명이 수상했다. 수상자는 존 클라우저 미국 존 클라우저(JFC) 협회 창립자 겸 연구교수, 알랭 아스페 프랑스 사클레 대학 교수, 안톤 차일링거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수다.

이들은 수십 년에 걸쳐 양자 얽힘 증명의 핵심인 ‘벨 부등식’을 풀어내는데 성공했다. 벨 부등식이란 영국의 물리학자 존 스튜어트 벨이 1964년 고안한 이 이론이다. 그간 학계에선 벨 부등식이 맞으면 양자 얽힘 현상은 없는 것이고 벨 부등식이 틀리면 양자 얽힘 현상은 사실인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때 존 클라우저 교수를 비롯한 3명의 학자들은 동떨어진 칼슘 원자에 빛을 쬐어 광자 얽힘 상태가 존재해 벨 부등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같은 양자암호통신을 실제 통신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국내서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이동통신 3사가 관련 산업을 이끌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구독형 양자암호통신 서비스 ‘카스(QaaS)’를 선보였다. 별도 장비 없이 양자암호키분배기에서 기존 일반 통신장비에 양자암호키를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적용했다. KT는 2022년 7월 기업 내부망에서 사용 가능한 양자암호통신 전용회선을 서비스 중이다. LG유플러스는 양자암호통신 전용 회선과 유심을 출시하기도 했다.

양자 기술은 통신뿐만 아니라 산업용 ‘비파괴 검사(NDT)’ 활용에서도 기대된다. 바로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한 적외선 광학 검사 방법이다.  국내서 관련 핵심 기술을 보유한 곳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다. 사진은 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 연구진이 새롭게 개발한 양자 광학 센서로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 기술은 통신뿐만 아니라 산업용 ‘비파괴 검사(NDT)’ 활용에서도 기대된다. 바로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한 적외선 광학 검사 방법이다.  국내서 관련 핵심 기술을 보유한 곳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다. 사진은 연구진이 새롭게 개발한 양자 광학 센서로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표준과학연구원

◇ 비파괴 검사 등 차세대 ‘광학 기술’도 적용… ‘표준연’이 선도

양자 기술은 통신뿐만 아니라 산업용 ‘비파괴 검사(NDT)’ 활용에서도 기대된다. 현재 공항, 항구, 산업현장 및 범죄 수사 등에 사용되는 비파괴 검사용 광학 기술은 보통 ‘가시광선’을 이용한다. 

일반적인 비파괴 광학 검사에는 ‘광검출기(photodetector)’가 사용된다. 이는 빛을 전기 신호로 변환해 출력하는 장치다. 검사기에서 쏘아올린 빛 입자를 물체에 반사·투과시켜 3D이미징 스캔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확도가 높고 쉽게 검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시광 기반 광검출기는 빛의 상태를 정밀하게 측정하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활용 범위가 일반 빛인 가시광 영역에 국한돼 특정 물질의 경우 반사나 투과가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좀 더 측정 범위가 넓은 적외선 영역 기반 광검출기가 개발 중이지만 약한 파장 등 요인 때문에 아직 성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되고 있는 기술이 바로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한 적외선 광학 검사 방법이다. 대표 기술로는 ‘비검출광자(undetected photon) 양자센서’가 있다. 양자 얽힘 현상을 만드는 두 개의 광원을 이용하는 원격 측정 센서다. 국내서 관련 핵심 기술을 보유한 곳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양자기술연구소다. 표준연은 박희수 양자기술연구소 양자광학그룹장 연구팀을 중심으로 양자 얽힘 기반의 양자 광학 센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비검출 광자 양자센서를 위한 복합 간섭계 실험장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비검출 광자 양자센서를 위한 복합 간섭계 실험장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실제로 25일 박희수 표준연 양자광학그룹장팀은 양자 얽힘 현상을 이용해 적외선 영역의 변화를 가시광에서 측정할 수 있는 신개념 양자센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이 개발한 비검출광자 양자센서는 가시광 검출기를 이용해 적외선 대역에서 빛의 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 또 측정대상에 따라 빛의 경로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는 ‘복합 간섭계’ 기술도 적용됐다. 이를 통해 측정대상의 크기나 모양에 맞춰 센서를 변형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팀은 새로 개발한 양자센서의 성능 테스트도 진행했다. 적외선 대역의 빛을 3차원 구조의 측정 샘플에 반사시킨 후 양자 얽힘으로 연결된 가시광 대역의 광자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실험 결과, 3차원 적외선 이미지를 가시광 측정으로 재구성하는데 성공했다. 구현된 이미지는 매우 우수한 정확도의 샘플 깊이 및 너비를 포함해 출력됐다.

이번에 개발된 양자광학센서가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라는 게 표준연 연구팀의 설명이다. 다만 향후 기술이 완성단계에 이르면 공업용 가스 조성 성분 분석, 건물 비파괴 검사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바이러스, 세균 등 미생물의 구조도 정확히 분석 가능해 미래 바이오·의료·제약 산업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희수 양자광학그룹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개발한 양자광학센서는 기존 광학센서가 가진 측정 한계를 해결하고 저비용·고성능 비파괴 검사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아직 좀 더 연구해야하겠지만 향후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오 샘플 측정, 가스 조성 분석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응용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양자점 기술이 처음 개발된 것은 1980년대초다. 개발자는 러시아 출신의 알렉세이 예키모프 나노크리스털스 테크놀로지 박사와 루이스 브루스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양자점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993년 문지 바웬디 미국 MIT 교수가 양자점 제조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3명의 화학자들은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노벨위원회
양자점 기술이 처음 개발된 것은 1980년대초다. 개발자는 러시아 출신의 알렉세이 예키모프 나노크리스털스 테크놀로지 박사와 루이스 브루스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양자점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993년 문지 바웬디 미국 MIT 교수가 양자점 제조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3명의 화학자들은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노벨위원회

◇ ‘노벨상’도 주목하는 ‘양자점’, 차세대 디스플레이 혁신 이끈다

양자 얽힘뿐만 아니라 ‘양자점(Quantum dot, QD)’도 실제 산업 분야 적용 및 연구가 한창이다. 양자점은 지름이 2~10나노미터(nm) 이하로 작은 초미세 반도체 나노입자다. 빛을 잘 흡수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는 특성이 있다. 이때 양자점을 여러 개로 쌓아 디스플레이를 만들면 단계별 명암 표현 및 세밀하고 정확한 색 구현이 가능하다.

양자점 기술이 처음 개발된 것은 1980년대초다. 개발자는 러시아 출신의 알렉세이 예키모프 나노크리스털스 테크놀로지 박사와 루이스 브루스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다. 이들은 독립적으로 양자점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1993년 문지 바웬디 미국 MIT 교수가 양자점 제조 기술을 극한으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이 3명의 화학자들은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양자점 기술을 대표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곳은 국내 대표 IT·가전기업인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삼성디스플레이’의 퀀텀닷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용, 지난 2017년부터 퀀텀닷 디스플레이 기술을 이용한 ‘QLED TV’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한 핵심 퀀텀닷 디스플레이 기술은 ‘QD-OLED’을 꼽을 수 있다. QD-OLED는 발광원층을 조정하는 전자회로인 TFT층, 빛을 내는 발광원, 발광원의 빛을 활용해 색을 표현해내는 QD 발광층으로 구성된 자발광 디스플레이다. 발광원으로는 빛 에너지가 가장 강력한 청색빛을 사용한다.

스스로 빛을 내는 양자점은 명암 단계별로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정확한 색 구현이 가능하며, 효율적인 빛의 활용과 간단한 구조로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다. 사진은 양자점의 구조 및 원리를 나타내는 모식도./ 삼성디스플레이
스스로 빛을 내는 양자점은 명암 단계별로 광범위하고 세밀하게 정확한 색 구현이 가능하며, 효율적인 빛의 활용과 간단한 구조로 차세대 대형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다. 사진은 양자점의 구조 및 원리를 나타내는 모식도./ 삼성디스플레이

QD-OLED의 장점은 일반 OLED보다 색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데 있다.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화이트 픽셀 방식의 OLED는 색을 표현하기 위해 컬러필터를 사용한다. 이 경우 많은 양의 빛이 컬러필터에 막혀 화면 밖으로 투과되지 못한다. 때문에 여러 가지 자연색상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다. 반면 QD-OLED는 양자점 하나하나를 이용해 빛을 직접 표현한다. 때문에 컬러필터에서의 빛 투과율이 훨씬 더 높아 더 밝고 다양한 색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이 QD-OLED를 실제 PC용 모니터 제품으로 상용화할 채비를 마쳤다. 지난해 12월부터 UHD 해상도 31.5형 QD-OLED 양산을 12월부터 본격 시작했다. 이번 재품은 QD발광층에 ‘초정밀 잉크젯프린팅 기술’이 적용됐다. 이는 잉크젯 노즐과 분사량을 최적화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픽셀 밀도를 140PPI(1인치당 픽셀 수)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140 PPI는 현재 출시되고 있는 65형 8K TV와 동등한 화소 밀도다.

전문가들은 삼성디스플레이 뿐만 아니라 경쟁사들도 QD-OLED 등 퀀텀닷 디스플레이 산업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버추얼마켓리서치’는 오는 2030년 퀀텀닷 디스플레이 산업 규모가 101억8,000만달러(약 13조6,0004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연평균 성장률은 12.4%에 이른다.

버추얼마켓리서치는 “QLED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퀀텀닷 디스플레이 기술은 고화질 이미지 재생과 우수한 색표현, 높은 에너지 효율성, 긴 수명 덕분에 의료 및 가전 분야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며 “새로운 양자점 기술의 개발과 보급 가속화에 따라 향후 퀀텀닷 디스플레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