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입춘이 지나고 봄기운이 살짝살짝 묻어난다. 여전히 겨울추위가 만만치 않고 이른 봄까지 꽃샘추위 몽니가 몇 차례 이어지겠지만, 그래도 햇살이 제법인 한낮에는 새로운 계절에 대한 기대가 꿈틀거린다. 사시사철 어김없는 순환을 체득한 우리에게는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이 오는 건 어김없는 기약이다.

그런데, 올봄 한반도의 정세는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될 듯하다. 연말연초 평양발 도발 위협과 심상치 않은 핵과 미사일 동향이 남북관계의 긴장 수위를 한껏 끌어 올렸고, 6.25전쟁 직전의 군사적 위기 상황과 현재의 국면을 빗대는 해외 전문가 그룹의 분석과 외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말 그대로 일촉즉발이란 얘기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이전에 우리는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 통일에 대한 기대로 들떠있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남·대미 정책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꾀하는 행보를 보이고 남북대화와 북미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한반도가 격정의 분위기에 휩싸인 것이다. 지난 2018년 남북 정상이 백두산에서 손을 맞잡고, 북한 최고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이 인공기와 성조기 앞에서 악수하고 서명하는 장면은 그 절정이었다.

청년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개혁·개방 행보가 어디까지 치달을 것인가를 놓고 당시 서울과 워싱턴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주목했다. 평양에 맨해튼을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평해튼’이란 말까지 나왔고, 대동강변에는 여의도의 것을 본뜬 대동강 주식거래소가 등장할 것이란 희망 섞인 기대가 나왔다.

자본주의의 정점이라 할 주식 증권거래소의 북한 상륙은 김정은 체제가 자본주의로 이행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핵과 미사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비핵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등장하고 한국과 미국, 일본 등이 나서 북한의 시장경제화를 적극 지원한다는 로드맵이다. 한때 이런 구도는 파산위기에 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탈출구이자 희망봉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이런 기대를 한동안 유보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예감을 갖게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남북관계를 ‘적대(敵對)’로 규정하고 동족이 아닌 ’국가 대 국가‘로 가져가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바닥을 알 수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핵과 미사일 위협을 노골화 하면서 기회가 닿으면 남한 지역을 평정하겠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은 그가 남북 정상회담에 화해와 협력을 이야기 하던 그 사람이 맞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런 호전적인 행보에 ‘한반도 4월 위기설’이 다시 솔솔 피어오르고,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아진다. 물론 일각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 백 만발로 추정되는 막대한 분량의 포탄을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선 러시아에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전쟁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무기와 군수물자를 해외에 보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기 힘들 것이란 점에서다.

하지만 여전히 전면전이 아니라하더라도 국지적 도발이나 예측 불가한 형태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상존한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과 군부 간부들에게 2024년 초에 특대형 도발을 준비하라는 주문을 했다는 첩보를 공개하면서 4월 총선을 겨냥한 북한의 도발과 테러 시도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건 이런 도발 움직임 속에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방공업 발전을 주축으로 한 경제회생 전략을 공개하고 나선 점이다. 그는 지난 1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 14기 10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와 관련해 “현대적인 지방공업 공장 건설을 매해 20개 군씩 어김없이 정책적 과업으로 당에서 직접 틀어쥐고 김화군과 같은 수준으로 모가 나게 집행해 10년 안에 전국의 모든 시군들, 다시 말해 전국 인민들의 초보적인 물질문화 생활수준을 한 계단 비약시키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도 김화군은 지방발전 시범 지역으로 선정돼 식료품공장과 종이공장, 일용품 공장 등이 최근 집중 건설됐는데 이런 모범을 북한의 각 지역이 따라 배우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월 7일 김화군의 공장을 직접 돌아본 건 자신의 이런 방안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독려 움직임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런 정책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집권 13년차 동안 핵과 미사일에 올인하면서 대북제재를 자초하고,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상황에서 최고지도자의 지시만으로 민생과 지역경제가 활기를 찾기는 어렵다. 별다른 대책은 없이 각 지역이 알아서 이른바 ‘자력갱생’하라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서고, 경제적 발전을 이룬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개인이나 개별 가구, 기업 수준이 아니라 한 국가 체제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교조적인 자립경제를 내세우면서 폐쇄적이고 낙후된 시스템을 고집하면서 경제적 발전이나 해법을 찾는다는 건 연목구어에 가깝다.

북한이 경제발전의 모델로 삼고 단기간에 높은 도약을 이루기 위한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이웃은 아주 가까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체제라는 어려움 속에 적지 않은 희생과 아픔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결국 전쟁 이후 가난과 헐벗음에서 탈피해 근대화를 이루고 세계 속의 반도체와 핸드폰, 자동차 생산국으로 우뚝 선 모범이다.

대한민국 발전의 출발선 가운데 하나는 새마을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가내수공업으로 불리는 지방 경공업이나 수출품으로 자본을 축적하고 정신적인 혁신까지 병행함으로써 오늘날의 경제적·사회적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침 북한의 지난해 대중 수출품 가운데 가발과 속눈썹 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중국 해관총서(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가발과 인조 속눈썹 등 미용용품의 중국에 대한 수출 규모는 1억6,673만달러(약 2,220억원)로 2022년 대비 13.4배 늘었다. 지난해 북한 총 수출 2억9,189만달러(약 3,920억원)의 57.1%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대한민국이 1960~70년대 수출 초기 변변한 생산품이 없자 여성들의 머리를 잘라 가발로 만들어 팔아야 했던 짠했던 기억이 북한의 오늘과 오버랩된다는 말이 나온다. 어쩌면 북한은 이미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성공사례를 진지하게 스터디했는지도 모른다. 과거 남북회담이나 북한 경제시찰단의 남한 방문 때 북측이 간절히 원했던 것 중 하나가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우리 경제의 성공 사례였던 것으로 대북정보 관계자들은 귀띔한다.

한강의 기적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만드는 관건은 결국 최고지도자의 결단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과 미사일을 고집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면 그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세습과 수령독재로는 얻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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