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북한학 박사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학 박사

기업이나 시민을 대상으로 북한·통일 관련 특강을 하다보면, 대북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적지 않다. 남북관계가 꽉 막혔는데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위기 속에 기회’를 준비하는 혜안에 관심이 끌린다.

필자가 준비한 답은 늘 정해져 있다. “다이소 평양점을 내세요”라고 말을 꺼내면 청중들은 의아해하면서 귀를 쫑긋 세운다. ‘그 다이소 말인가요’하는 표정이다. 이어 그 이유를 조곤조곤 말씀드리면 무릎을 탁 치면서 방도를 ‘은밀히’ 물어보곤 한다. 평양에 사는 사람들이 처한 사정이나 김정은 체제 들어 변화한 북한의 모습에 비춰보면, 이만한 대박 아이템이 없겠다하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에서 경제, 특히 민생과 직접 관련이 있는 식량이나 식료품·생필품 등을 공급하는 기능을 해온 건 장마당이다. 1990년대 중후반 대홍수와 기근 사태로 노동당의 배급망이 완전히 붕괴되다시피 하면서 주민들은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장마당에서 쌀이나 옥수수를 사야했고, 간장·된장과 비누·치약은 물론 아이들의 학습장까지 조달하는 북한 경제의 산소호흡기 역할을 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노동당보다 장마당이 좋다. 우리를 먹여 살리기 때문”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이소’는 주민들의 소비생활에 신기원을 열어줄 수 있다. 비교적 부담이 되지 않는 가격에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아이템들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중국산 물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상품 사용 등을 북한 당국이 금지하는 민감한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부담 없이 구매를 할 수 있다. 

물론 ‘다이소 평양점’이 현실화 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지거나 진전이 있어야 하겠지만 ‘한국산은 안돼요’라는 진출 초기 거부감을 최소화 할 수 있다. 적어도 사업상의 리스크를 상당 부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매력적이란 얘기다.

아직은 가상의 상황일 수 있지만 ‘다이소 평양점’을 거론할 수 있는 건 김정은 집권 13년간 평양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경제·사회 변동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구매력이 있는 소비층이 생겨났다.

28살의 나이에 집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자신의 리더십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성과를 원했다. 핵 개발이나 미사일 도발은 북한 체제의 존재감이나 근육질을 드러낼 수 있는 기능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유난히 건축과 건설에 집중한 건 이런 사정에서다. ‘뉴타운’ 격인 여명거리에는 82층짜리 아파트를 지어 북한 체제에 기여한 과학자·교수 등에게 입사증(주거권리증)을 줬다. 평양 보통강변에는 테라스형 고급 빌라를 지어 ‘1호 아나운서’로 불리는 김정은 위원장 뉴스 전담 이춘희 아나운서 등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1년부터 평양 외곽에 매년 아파트 1만 세대씩을 짓겠다고 밝혔고, 지난달 23일에는 4년차 사업 기공식에 참석해 직접 발파 단추를 눌렀다. 뉴타운과 신축 아파트가 늘고 평양 거주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소비에 변화가 생겼고, 이 추세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거리 장마당 등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평양의 소비는 최근 들어 광복거리상업중심(옛 광복백화점) 등 우리의 대형 슈퍼마켓과 유사한 곳으로 옮겨졌다. 북한에서는 특권에 가까운 평양 거주 주민의 경우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공업이나 소비품 생산 수준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자체로 만들었다는 비누와 샴푸 등은 제대로 거품이 나지 않고 향이나 품질도 한참 떨어진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관심을 갖고 지시한 화장품이나 학용품 등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낙후성을 면치 못한다.

지난 2월 7일 김정은 위원장이 방문한 강원도 김화군의 한 생필품 공장 모습은 북한 경제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범적인 설비라며 최고지도자가 방문했지만 생산라인에는 조잡한 모양새의 비누 몇 개와 학습장이 전부였다.

이런 실정 속에서 다양한 생필품과 소비재·기호품으로 가득 채워진 마트가 등장한다면 중산층 이상 주민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 입주한 아파트 욕실에 해바라기 꽃무늬가 새겨진 비누곽도 하나 장만하고 곰돌이푸 디자인의 매트도 문 앞에 깔아두고 싶은 생각에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 사업 아이템 중 하나가 중고차 매매였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자유를 얻게 된 동독 주민들이 서독 마을을 내차로 여행하고 싶다거나 아우토반이란 속도제한 없는 고속도로가 있는데 나도 한번 맘껏 달려보고 싶다며 너도나도 차량 구입에 나섰기 때문이다. 빠듯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신차 보다는 중고차에 수요가 쏠리면서 딜러들이 돈방석에 앉았다는 후문이다.

연초부터 이어진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남북관계는 냉기류가 흐른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고 금강산 관광마저 중단된 상활에서 언제 남북경협이 이뤄지고 우리 기업의 대북진출이 가능해질지 암담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행운의 여신 티케(Tyche)에게는 뒷머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가는 언제 스쳐지나갈지 모르는 행운을 놓치게 되고 뒤늦게 잡아채려 해도 허사란 얘기다.

남북통일과 통합을 바라보는 인사이트를 갖고 준비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비즈니스의 기회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2,500만명 인구의 새로운 시장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여는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자리할 것이다

‘국민가게’를 표방하는 다이소가 ‘인민가게’로 변신할 날은 어쩌면 우리 예상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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