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서윤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비상임이사 △전 KBS 장애인 앵커

선거철만 되면 정당을 막론하고 교통 개발 공약을 정치인의 비장의 카드인 것처럼 슬금슬금 꺼내 든다. 누가 더 빠르게 서울로 가게 할 것인가 경쟁을 하는 것처럼, 여야 할 것 없이 수도권 지역의 여러 후보가 땅을 파서 교통망을 확충하겠다고 부지런히 공약 선언을 한다.

제22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수도권의 후보들은 여아를 막론하고 연신 철도 지하화와 GTX 연장을 외치며 지역 민심을 잡아보려고 아우성이다. 대규모 교통 개발 하나면 지역이 들썩들썩할 정도로 활기를 되찾고 지역 주민들이 풍요를 누릴 것처럼 말하는 것이 마치 검증되지 않은 건강식품 하나를 먹으면 100살까지 장수한다는 과장 광고처럼 들리기도 한다.

정치인들의 대규모 교통사업 공약은 시민들을 위하는 대단히 중요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공수표가 절반인 공약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철도와 GTX 확대, 도시철도 도심 구간 지하화 예산은 약 80조원이며(2월 1일 더불어민주당 총선 공약), 지난 1월 국토부에서 열린 교통 분야 민생토론회에서 발표한 철도와 도로 지하화 사업비 규모는 약 65조원이다. 

2023년 대한민국 국가 전체 예산이 약 639조였고 그중 10%를 수도권 철도와 도로를 지하화하는 사업에 쓰겠다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자신들을 뽑아달라 부르짖는 주문이다.

GTX가 연장되고 철도와 도로가 지하화된다고 국민의 삶이 한순간에 윤택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책 없는 개발 사업에 국민의 혈세가 남용되면 그 부담을 온전히 국민이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대규모 개발 사업 뒤에 가려진 그림자를 말하지 않는다.

GTX 연장은 기존 노선에서 강원·충청까지 노선을 확대 추가하겠다는 공약이다. 강원도와 충청권의 여러 정치인이 여야 할 것 없이 대대적인 환영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하지만 이미 일부 지역에는 KTX와 새마을호처럼 기차가 운행하고 있고 GTX가 도입되면 중복 구간이 발생해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GTX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만약 지금의 철도 운임이 비싸서 GTX를 설치해 시민의 교통비 비용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 이유라면, 80조로 땅을 파는 개발 공사를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KTX나 철도 운임을 낮추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훨씬 타당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지방 소멸이다. GTX의 확대는 수도권 쏠림현상을 가속한다. 일은 서울에서 하고, 잠은 경기도·인천·강원·충청에서 자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인데, 이것이 과연 국민의 삶의 질을 고려한 교통·도시 정책인지 의문스럽다.

해외 선진국 도시는 도보 15분 이내에 학교, 병원, 직장 등 생활편의시설이 갖추도록 하는 도시 개발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정치는 서울에서 일하고 잠은 경기도나 인천, 춘천과 강원서 자라는 장거리 통근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네 정치인들은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라고 권장한다. 수행기사가 있는 정치인들이 출퇴근길 길 위에서 왕복 2시간 이상을 보내는 피곤함과 괴로움을 알기나 하겠는가.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저출생 문제 해결과 일·가정 양립을 생각하는 정치인들이었다면 이런 공약은 내놓을 수가 없다.

GTX 연장 확대는 결국 나라를 이분적으로 가르겠다는 소리에 불과하다. 마치 대한민국은 GTX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으로 경제·문화·소비·복지 등 모든 영역에서의 쏠림 현상이 가속되어 나라가 두 쪽이 날 수도 있다.

수도권 쏠림 현상의 강화는 지역 격차의 소용돌이를 더욱 거세게 만들 것이며, 현재 인구 15만 이하의 중소도시나 농어촌의 붕괴로만 여겨졌던 지방 소멸이 5대 광역시로 빠르게 이전되는 현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 대책 없는 공약에서도 가장 괘씸한 부분은 이것이다. 공약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교통망 개발로 예산이 수십조가 들어가는 대규모 사업임에도 제대로 된 재원 마련 방안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민자 유치로 해결하겠다는 허상에 가까운 이야기로 자신들의 도시 계획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있고, 이는 한편으로 자신들의 공약이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이 날리는 공수표는 마치 건설 계획이 ‘안 되면 그만이고’, ‘부작용이야 어떻든’, ‘뒷감당은 내가 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로 들린다. 수십조의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일에 책임을 느끼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대규모 교통 개발 공약은 결국 무책임한 선거용 포퓰리즘 정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삶을 담보 잡는 기만의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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