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1974년 10월, 동아일보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데모 소식을 전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 등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됐다.

그러자 동아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언론통제에 맞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독재정권의 공고화를 위해 언론통제가 반드시 필요했던 박정희 정권에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결국 중앙정보부는 기업들을 압박해 동아일보에 광고를 싣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국민들은 ‘격려 광고’로 동아일보를 돕기 시작했고, 이는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1975년 1월에만 동아일보에는 2,200건이 넘는 ‘국민 격려 광고’가 실렸다.

동아일보는 국민의 힘으로 버텼지만, 거듭된 적자를 피할 수 없었다. 정권의 압력도 계속됐다. 그러던 1975년 3월, ‘폭도’들이 동아일보에 난입해 단식 농성 중이던 기자 23명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160여명을 내쫓았다. 그리고 이 중 끝까지 신념을 지킨 113명은 동아일보에서 해직 또는 무기정직 처분을 받았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렇게 촉발된 동아일보 해직사태는 여전히 끝맺음을 짓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해 투쟁을 이어나갔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동아일보 해직사태는 정부의 압력으로 이뤄졌다”며 정부와 동아일보의 사과를 권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와 동아일보는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동아투위는 지난 2009년 정부를 상대로 100억대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법원은 “시효가 지났다”며 패소 판결을 내렸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역시 같은 결과를 낳았다. 정부와 동아일보에 잘못은 있지만, 청구 시효가 지났다는 것이었다.

법정다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동아일보가 과거사위의 권고에 반발해 이의를 신청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과거사위의 상급지관인 안전행정부를 상대로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이승택)는 동아일보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08년 과거사위의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는 판결이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시대적 상황만으로 정부가 동아일보사에 언론인 해직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정하기는 무리가 있다”며 “해직 사건과 정권의 요구 사이에 관련성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과거사위의 결정은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이에 동아특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동아특위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언론탄압은 이미 낱낱이 드러난 역사적 사실이고, 과거사위는 물론 기존의 재판에서도 이를 인정했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조만간 대응방안을 수립할 방침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동아일보 해직사태는 여전히 1970년대에 머물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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