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서초사옥.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76일만에 출근경영을 재개하면서 삼성의 사업구조 개편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삼성그룹의 비금융 계열사들이 삼성생명 지분을 일제히 매각하고 나서면서 삼성의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전기·삼성정밀화학·제일기획·삼성SDS가 지난 22일, 보유 중인 삼성생명 주식 328만4,940주(1.64%)를 블록딜 형식으로 국내외 투자자에게 매각했다. 이로써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는 에버랜드만 남게 됐다.

또 삼성생명은 이날 삼성카드로부터 삼성화재 주식 29만8,377주를 사들였다.

이번 그룹 제조계열사의 삼성생명 지분 매각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제조계열사→삼성생명’으로 이어진 순환출자 구조는 끊어졌다. 삼성그룹 내 비금융계열사는 삼성전자에, 금융 계열사는 삼성생명으로 양분화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단 ‘지주회사 전환’ 시나리오가 나온다. 삼성그룹의 중간금융지주 형성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비금융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으로 양분될 것이란 예상이다.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그룹 전체를 지주체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태경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지분 매각을 통해 ‘삼성생명→삼성전자→제조계열사→삼성생명’으로 이어지는 ‘작은 순환출자 구조’가 해소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삼성그룹이 전체적으로 금융과 비금융의 양대 지주로 헤쳐 모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교롭게도 삼성은 지난해부터 빠르게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데다, 하필 이 회장이 귀국한 후 서초사옥을 첫 출근하는 날 이런 조처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증권가에선 삼성그룹의 이 같은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언급하는 분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삼성생명은 지난해 12월 삼성전기, 삼성중공업,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카드 지분 5.81%를 2641억원에 취득해 지분율을 34.41%로 늘렸다. 이는 삼성카드의 최대주주인 삼성전자(37.45%)의 지분에 육박한 수준으로, 업계에서는 삼성생명의 금융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또한 삼성생명은 이날 삼성카드가 보유한 삼성화재 보통주 29만8377주(0.63%)를 711억6,300만원에 취득해 지분율을 11%로 끌어올렸다. 상장회사 지분이 30%를 초과하면 금융지주회사법상 자회사로 편입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 삼성전자․삼성물산에 이어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축 중 하나인 삼성생명으로 금융계열사의 지분이 모이는 것은 지배구조를 단순화해 지주회사 체제로 가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지나친 확대해석은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금융계열사 지분이 늘긴 했지만, 변동폭(10.36%→약 11%)이 소소하다는 점에서 이번 움직임을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작업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지 ‘지배구조 단순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삼성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와 금융․산업 자본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삼성 역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75개 계열사 지분들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과정일 뿐이라며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한승희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매각은 그룹 내에서 단순화할 수 있는 지분을 정리하는 소소한 변화로 보인다”며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회사 전환이나 본격적인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긴박한 변화로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는 결국 경영투명성과 경쟁력을 높이려는 시도와도 맥을 같이 한다. 실제 유력 일간지는 24일자 보도를 통해 삼성그룹이 1조원을 들여 계열사 간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마스터플랜(master plan·기본계획)’을 짜놓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당 매체는 삼성 고위 관계자이 말을 인용해 “현재 50건이 넘는 삼성 계열사 간 순환출자 건수를 2016년까지 ‘0’으로 만들어 경영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면서 “이를 위해 1조원 정도 비용을 쓸 것이다. 지금 시점이 지배구조를 선진적으로 바꾸는 적기라는 판단이며, 이건희 회장에게도 최근 보고해 재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한편 이 회장이 귀국으로 삼성의 마하경영 추진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마하경영’은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는 물론 엔진·소재·부품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처럼 삼성이 글로벌 선진기업 중에도 초일류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 회장의 경영 지론이다.

삼성그룹은 그동안 임원 세미나와 온라인 사보 등을 통해 전 임직원에게 마하경영을 전파하고 실행계획을 마련해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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