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홍원식 동덕여대 교양교직학부 교수
[시사위크] 세월호 참사는 우리가 갖고 있던 많은 문제점을 한꺼번에 노출시켰지만, 그중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언론의 민낯일 것이다. 언론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한명의 언론학자로서 애써 부정하고 싶지만, 사실 세월호 보도과정에서 보여준 그 모습이 오래전부터 숨겨 왔던 우리 언론의 본모습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돈벌이에 눈먼 기업의 얘기가 새롭지 않은 사실이고 ‘관피아’ ‘해피아’가 해묵은 이야기 듯,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의 모습 또한 우리 언론의 본모습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곧바로 우리 언론을 통해 전달된 ‘전원구조’라는 속보는 세계 언론사에 길이 남을 오보였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오보는 어쩌다 실수로 나타난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정부의 발표를 곧 ‘팩트’로 인정해버리는 우리의 언론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이는 우리 언론이 이미 오래 전부터 포기해버린 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 그 공백이 만들어낸 결과다.

정부의 발표를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받아쓰고,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으면 오히려 ‘괴담’이고 ‘종북’이라 몰아붙이던 바로 그 모습이 우리 언론의 본모습인 것이다. 이미 우리 언론은 국민에 대해서만 감시견이었을 뿐, 사실 정부의 오랜 동업자이며 이익공동체였음을 우리만 애써 모른 척 했을 뿐이다. 이미 프리덤하우스는 우리가 세계 68위의 언론자유를 갖고 있는 나라이며, MB 정부 이후부터는 더 이상 ‘언론자유국’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수많은 언론사들이 이런 난장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그 책임의 상당한 몫은 KBS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수많은 오보와 보도국장의 빗나간 발언 등 이번 참사 과정에서 나타난 KBS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KBS와 관련된 이번 논란들은 몇몇의 순간적 착오와 실수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미 지난 수년 동안 KBS의 정치적 공정성에 대해서 수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KBS 내부에서도 ‘추적 60분’ ‘KBS 옴부즈맨’ ‘진품명품’ 등 수많은 프로그램의 제작 자율성이 침해되어 왔다는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사실 이러한 논란들은 KBS의 지배구조와 무관치 않다. KBS 사장이 사실상 대통령에 의해서 임명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 KBS에 정치적 공정성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지난 대선이후 댓글 논란과 새정부 출범의 북새통 속에서도 국회에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를 만들어 KBS 공정성 문제를 개선해보고자 시도 했을까. 그 속에서 KBS 사장임명에 있어서 '집중다수제'를 실시하는 등의 구체적 개선안까지 근접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아무런 성과도 없이 끝나고 말았다. 결국 현재의 KBS는 세계 68위 언론 후진국의 대표 얼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김시곤 보도국장의 보직사임 과정에서 길환영 사장의 책임을 거론하며 불거진 KBS의 본모습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적폐’가 있었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과연 이런 KBS를 국민의 방송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정권의 방송라고 불러야할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할 듯하다.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 ‘왜 KBS가 국민의 정서와 공감하지 못하는가’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사실 KBS의 자유롭지 않은 정치적 조건과 이로부터 쌓여온 지난 과거 모습들을 떠올려보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오보도 그리고 보도국장의 발언도 모두 새롭지 않은 이야기 일뿐이다.

이번 사건 속에서 수많은 국민들의 비난을 받아서인지, 그래도 KBS 기자협회를 비롯하여 일선의 제작진들은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진심어린 자기반성과 쇄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과연 KBS 내부의 노력만으로 쇄신이 가능할 것인가’하고 자문했을 때 비관적이긴 하지만, 그나마 KBS 내부에서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무능한 관료와 기업의 절제되지 않은 탐욕을 비롯한 수많은 ‘적폐“들이 이번 참사를 만들었다면, 그 적폐들 중에 커다란 한 덩어리가 바로 우리 언론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언론이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포기한 그 자리에서부터 바로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을 계기로 우리 언론이 공정하고 독립적인 자리를 찾아 돌아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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