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관해 이야기했던 15번째 편지를 김훈의 『공무도하가』에 나오는 말로 마무리했던 것 기억하지?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요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세월호 특별법’놓고 벌이는 정치 게임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이 나라에는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들만 모여 사는 세상인 것만 같아서 한숨만 나오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야만적인 사회가 되어버렸을까?

돈이 없으면 하루도 제대로 살 수 없고 돈이라는 물신이 모든 관계를 지배하고 왜곡하는 황금만능주의, 함께 상생하는 지혜보다는 어떻게든 남에게 이겨야만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다윈주의적인 경쟁체제,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문제시하지 않았던 돌격적인 박정희식 근대화,  자연과 뭇 생명들을 인간의 행복 증진과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착취하는 반생태적인 성장우선주의, 국가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국민 모두를 경쟁 속으로 몰고 갔던 역대 정권들의 비인간적인 제반 정책들의 적폐가 이 나라를 야만적인 사회로 만들어버린 것 같네. 이런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여리고 착한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

금지옥엽처럼 키운 어린 자식들을 잃은 세월호 유족들에게 퍼붓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일부 보수인사들의 잔인한 막말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사람들만 모여 사는 곳은 분명 아닌 것 같네. 그래서 고은 시인은 세월호 참사 후에 발표한 <이름 짓지 못한 시>에서 우리는 정의도 사회도 신뢰도 사라져버린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한탄하네. “나라라니요/ 이런 나라에서/ 인간이라는 것 정의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무슨 무슨 세계 1위는/ 자살 1위의 겉이었습니다/ 무슨 무슨 세계 10위는/ 절망 10위의 앞장이었습니다/ 사회라니요/ 그 어디에도 함께 사는 골목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신뢰라니요/ 그 어느 비탈에도/ 서로 믿어 마지않는 오랜 우애가 자취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열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나 세월호 참사처럼 졸지에 사랑하는 어린 아들 딸들을 잃고 몸부림치는 부모들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세월호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여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자고, 그래서 다시는 어린 자식들을 가슴에 묻는 고통을 당하는 부모들이 없게 하자고 유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는 지금, 국정의 최고 책임자라는 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짧고 바쁜 방문 일정에도 여러 차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 주던 교황과는 달리, 그분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구먼. 그런데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들은 왜 ‘살린다’는 말만 자꾸 할까? 지난번 대통령은 죽지도 않는 강을 살린다고 설치면서 살아 있는 강들을 죽이는 무식한 짓을 하더니, 이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니 절대 죽을 일 없는 경제를 살린다고 나섰네. 그러다가 힘없는 서민들만 죽이지 않을지 걱정이 되는구먼. 백주대낮에 가라앉는 배 속에 있던 304명 중 한 사람도 살리지 못한 실력으로 죽지도 않은 경제를 살린다고 나서는 게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준비하는 건 아닌지 두렵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새누리당이 텔레비전에 내보냈던  '위기에 강한 글로벌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광고를 혹시 기억하는가? 요즘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보면 정말 ‘준비된 여성대통령’인지 궁금해서 예전 동영상들을 자주 보게 되네. 자주 보면 정든다고 이러다가 대통령의 ‘빠’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이라도 했는지 그 광고에는 공교롭게 풍랑 속을 헤쳐 나가는 배가 한 척 등장하네. 천둥번개가 치는 폭풍우와 파도 속을 배가 위태롭게 나아갈 때, 다음과 같은 글귀가 화면에 나타나면서 성우의 내레이션이 시작되지. “경험 없는 선장은 파도를 피해가지만/ 경험 많은 선장은 파도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만이 파도를 이기는 방법임을 알기에.../ 지금 대한민국엔 위기에 강한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동북아 평화를 이끌어갈 리더십/ 앞으로의 5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준비된 여성대통령 기호 1 박근혜”  허허허~  웃어야 되나 울어야 되나. 앞으로도 3년 이상이 남았는데… 제발 파도와 싸우지 말고 피해갔으면 좋겠네.

‘세월호 특별법’은 청와대가 나설 일이 아니고 국회에서 여야가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말들이 많아서 지난 5월 19일에 있었던 대통령의 담화문도 동영상으로 다시 보았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으신 고통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얼굴이 측은해 보이더군.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습니다.” 라고 눈물로 사죄할 때는 진정성이 약간 느껴지기도 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대다수 한국 사람들처럼 정에 약한 사람 아닌가? 그땐 다가오는 지방 선거 때문이었는지 대통령도 “그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라고 다짐했더군. 그런데 대한민국이 죽었나? 자기 자신이 ‘다시 태어나는’ 게 먼저 할 일 아닌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 집단 중 하나인 자신들은 바뀌지 않으면서 누구를 바꾼다는 소리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런 사람들이 한 나라를 개조한다고? 그 말을 다시 들으니 무서워지더군. 갑자기 국민들을 개조하겠다고 나섰던 박 대통령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거든.   

자신이 세월호 사고의 최종 책임자라고 국민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던 대통령이  지금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는 뭘까? 이 땅에 많고 많은 사회과학자들보다 한 시인이 그 까닭을 더 쉽게 설명해주는구먼. 최종천 시인은 <이 닭대가리들아!>에서 우리들 자신, 즉 백성이 국가며 나라인데 대통령을 나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시만 당한다고 말하고 있네. “이 닭대가리들아, 나라는 바로 너 자신, 백성이다./ 그러니 주체성을 회복하라,/ 그를 원망하지 말고 갈아치워라,/ 그가 눈물을 보일지라도 믿지 마라,”면서 나처럼 한국인들이 유별나게 정에 약한 것을 걱정하네. 이젠 슬퍼하지만 말고 분노하라는 거지. “그러므로 이 닭대가리들아 국가와 나라는 너 자신임을 알라./ 하다못해 어떤 물건도 디자인이 구식이고 유지비가 더 많이 들어가면/ 즉시 바꾸는데, 그가 대통령이든 누구든/ 갈아 치우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곧 나라요 국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노예가 되어버린 지금 최고의 가치는 돈과 권력/ 돈과 권력은 대한민국의 절대적 원칙이다./ 반공이 국시의 제일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제일의 국시다.”그는 세월호 참사도 돈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이 닭대가리들아! 나라나 국가는 바로 백성, 우리 자신이다./ 고장 나서 못 쓰게 된 기계나 떨어진 신발을 바꾸듯이/ 단호하게 그를 갈아 치워라!/ 그리하여 진정한 백성이 되라/ 지금 대한민국의 문제는 단 하나/ 노예들만 있지 백성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절규하네.  시인의 말이 옳지 않는가? 우리들이 주인의식이 없어서 계속 머슴들에게 속고 있는 것 아닌가? 대통령이 다시 민생을 챙기겠다면서 영화 '명량'을 관람하고 부산 자갈치 시장도 방문하는 등 다시 민생정치를 시작했네. 그러면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건 ‘민생의 문제’가 아니고 뭔가? 나이 들수록 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지 모르겠구먼. 내가 잘못 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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