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팬택이 결국 공개 매각절차에 돌입한다. 독자생존을 추진했지만, 상반기 경영사정이 더 악화되면서 ‘새 주인 찾기’에 나서는 것으로 방향을 정한 것. 이처럼 팬택이 씁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팬택의 창업주인 박병엽 전 부회장은 ‘재기의 날갯짓’을 활짝 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1991년 팬택을 설립해 한 때 국내 휴대전화 2위 사업자로 키워냈던 박병업 전 부회장은 ‘벤처 신화’의 상징과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팬택이 ‘경영 위기’에 빠지면서 그는 지난해 8월 경영권을 내려놓고 팬택을 떠났고, ‘실패한 경영자’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스포츠토토로 재기 노린다

하지만 현재 박 전 부회장은 ‘스포츠토토’ 사업권 인수를 통해 화려한 부활을 노리고 있다. 그의 개인회사인 팬택씨앤아이가 속한 컨소시엄이 스포츠토토 사업권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1부는 최근 조달청 등이 제기한 가처분신청 이의를 기각하고 팬택씨앤아이 등이 참가한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이 스포츠토토의 우선협상대상자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컨소시엄에는 팬택씨앤아이, 씨큐로, 코리아리즘 등 9개 업체가 참여했다. 이 중 팬택씨앤아이는 박 전 부회장이 지분 100%를 갖고 정보화 구축 업체다. 박 전 부회장은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현재 재직 중이다. 

 
이에 따라 스포츠토토 사업권은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게 됐다. 당초 지난 5월 스포츠토토 수탁 사업자 우선협상대상자에는 케이토토 컨소시엄이 선정됐지만, 사업운영비 원가산정 근거 등의 논란이 일자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은 법원에 입찰절차중지 가처분신청을 제출했다.

지난 7월 법원은 “위 입찰에 관해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의 지위에 있음을 임시로 정한다”며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조달청과 케이토토 컨소시엄은 가처분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즉각 이의를 제기했지만, 최근 법원은 이를 기각하고 재차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의 우선협상자 지위를 인정해줬다. “기술제안서와 가격제안서의 금액이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으나 케이토토 측은 불일치의 정도가 매우 크고 반대로 해피스포츠는 그 정도가 매우 근소하다”는 것이 법원의 판결 사유였다. 

이에 대해 케이토토컨소시엄 측은 항고의 뜻을 밝혔지만, 법원이 두 차례나 해피스포츠 컨소시엄의 손을 들어 준 상황이라 판결을 뒤집기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팬택씨앤아이가 속한 컨소시엄이 최종적으로 사업권을 획득한다면, 박 전 부회장은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토토는 연 매출이 3조원에 달하고 영업이익률이 20%를 웃돌아 속칭 ‘황금알을 낳는 사업’으로 불린다. 

게다가 박 전 부회장은 최근 흩어져 있던 개인회사들을 여의도로 집결시키면서 재기의 날갯짓을 본격화하고 있다.

◇ 여의도로 개인회사들 집결시켜

박 전 부회장은 팬택씨앤아이를 중심으로 ▲ 휴대폰 부품업체 ‘라츠 ▲화물운송 업체인 ‘피앤에스네트웍스’ ▲인력 용역업체인 ‘토스’ ▲단말기 제조 및 판매업체인 ‘티이에스글로벌’ 등의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팬택씨앤아이는 라츠의 지분 100%, 티이에스글로벌 지분 50%, 피앤에스네트웍스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피앤에스네트웍스 나머지 지분 60%는 박 전 부회장의 두 아들이 갖고 있다. 또한 팬택씨앤아이는 토스 지분도 100% 보유했으나, 지난해 2월 피앤에스네트웍스에 지분을 넘겼다. 

▲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이 중 팬택씨앤아이와 피앤에스네트웍스, 토스는 최근 서울 여의도 일대에 있는 hp빌딩에 새 둥지를 틀었다. 당초 팬택씨앤아이는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배제정동빌딩에, 피앤에스네트웍스는 인근 정안빌딩에 상주했었다.

팬택씨앤아이의 경우 지난달 19일 입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용하는 건물 연면적은 9586㎡(2,904평)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 회사는 현재 이 빌딩의 5개 층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직원수만 450여명에 달하는 라츠가 입주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규모를 임차한 셈이다.

재계에선 박 전 부회장 소유 회사의 여의도 집결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은 흩어져 있던 계열사들을 한 데 모아 전열을 정비해 업무적인 시너지 효과를 노리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또한 스포츠 수탁사업자 선정을 염두에 두고, 여의도를 거점으로 사세 확장을 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박 전 부회장의 재기 움직임이 이렇게 본격화됐다. 다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경영 전면에는 나서진 않고 있다. 세간의 시선을 고려해 언론의 접촉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이었다. 팬택씨앤아이 측도 박 전 부회장에 대한 어떤 언급도 삼가는 분위기였다.

팬택씨앤아이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박병엽 전 부회장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아무 것도 없다”며 “기자들의 문의가 하도 많아 한번 윗선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 전 부회장의 출근 여부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임차한 사무실의 활용 여부에 대해선 “직원이 많은 라츠가 안 들어와서 사무실 사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 팬택 지원으로 성장한 개인회사로 재기 발판   

그런데 박 전 부회장의 부활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팬택은 우울한 운명을 맞이하고 있다. 팬택은 최근 매각 공고를 냈지만 주인을 찾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현재 인수에 외국계 기업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적극적인 투자 의사를 보이고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생력도 불확실해 매각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도 저도 안 될 경우, 청산절차를 밟는 최악의 상황으로 갈수도 있다.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씁쓸하다. 박 전 부회장이 팬택의 ‘물심양면’ 지원으로 덩치를 키운 개인회사를 기반으로 비상을 하고 있지만, 정작 팬택은 몰락의 운명을 맞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박 전 부회장이 팬택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팬택씨앤아이는 팬택의 계열사로 불렸다. 실제 팬택씨앤아이 자회사 중 매출액이 가장 큰 라츠는 설립된 해에 2,478억 원의 매출을 올려 팬택이 밀어주고 지원하는 자회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이 2011년 12월 사의를 표명하고 인사를 하고 있다.

실제로 박 전 회장들의 지배 아래에 있는 5개 회사는 과거 총 매출 5,000억원 가운데 2,000억 원 이상을 팬택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팬택씨앤아이는 2012년 매출 976억 원 가운데 639억원(65%)을 팬택에서 채웠다. 같은 해 티이에스글로벌도 301억원의 내부거래 수익을 올렸다.
 
팬택이 경영위기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박병엽 전 부회장은 이들 회사로부터 지난 3년간 83억원의 배당을 챙겼다. 이로 인해 “제 뱃속만 채우고 있다”는 비판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후에야 이들 회사들은 팬택과의 관계 청산 수순에 들어갔다. 최근 라츠는 팬택 관련 사업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라츠는 그간 팬택에 배터리와 이어폰을 납품하고 스마트폰 유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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