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안개 속에 사노라면/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귀는 자꾸 커진다/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같은 사람들이/ 안개의 나라에 산다” 김광규 시인의 <안개의 나라>라는 시일세. 요즘 내가 사는 세상이 ‘안개의 나라’ 같아서 이 시를 자주 읽게 되는구먼. 도시의 안개는 노인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데…

안개는 기온이 이슬점 아래로 내려갈 때 대기 중의 수증기가 응결하여 지표 가까이에 부옇게 떠 있는 자연 현상인데, 가시거리가 1km 미만일 때만 ‘안개’라고 부른다는군. 그럼 1km가 넘으면 뭐라 부르나? 나이가 들면서 어린이들처럼 궁금한 게 많아지는군. 안개는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지표 가까이에 있는 찬 공기와 만나거나 주변에 수증기의 공급원이 많을 때 잘 발생한다네. 또 수증기의 응결을 촉진시키는 먼지 같은 응결핵이 많으면 상대적으로 낮은 습도에서도 안개가 낀다는군. 공장지대에 안개가 많이 끼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  안개는 본질적으로 구름과 같은 것인데, 땅 가까이에 있어서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구별된다네. 스모그(smog)는 이런 안개(fog)가 도시나 공장지대의 매연을 포함한 각종 오염물질(smoke)을 만났을 때 발생하는데, 1952년 런던에서는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지. 우리나라도 수도권에서는 거의 일 년 내내 스모그를 볼 수 있네. 많은 공장과 자동차들이 각종 오염물질을 내뿜고 있는, “언제나 안개가 짙은/ 안개의 나라”에서 사는 게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지?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안개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보이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하고 있네. 심지어 그 나라 사라들은 너무 안개 속에서 오래 살아서 '안개에 익숙해져/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게' 되었다는군.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습 같지 않은가? 지난 4월 16일에 진도 앞 바다에서 300명이 넘는 생명들이 우리들 눈앞에서 수장되고 있을 때 이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7시간 동안 뭣을 했는지 아직까지 우리는 모르고 있네. 그래서 그날 구조작업이 왜 늦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나 지나가자고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자 하는데, 정부 여당과 보수 언론들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반대하고 있네. 그런 논리에 넘어간 국민들도 많고. 그런 분들은 보이지 않는 것은 보려고 하지 않는 걸 국민의 당연한 도리라고 믿고 있는 것 같더군.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보안사항이라나… 그러니 어쩌면 이 정권에 가장 우호적일 수도 있는 일본의 극우신문인 <산케이신문>이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라는 옛날 ‘엘로우 페이퍼’에서나 볼 수 있는 기사를 쓰게 되었던 거지.

이 시의 화자는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보려고 하지 말고/ 들어야 한다”고 말하네. 자본주의 체제는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시각’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눈’이 가장 피로한 사회라는 건 자네도 알지? 그런 곳에서 보지 못하니 안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아마 점점 소비가 위축되는 이유들 중 하나도 안개 때문에 보지 못해서 사람들의 소비욕구가 위축된 결과일지도 몰라. 거울을 한 번 보게나. 우리 얼굴에 두 개씩 있는 건 눈과 귀이지. 코와 입은 하나밖에 없고. 우리 얼굴이 이런 식으로 생긴 건 눈과 귀가 하는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지 못하면 그 대신 ‘더 많이 더 정확하게’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우지.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귀는 자꾸 커지고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토끼같은 사람들이” 사는 안개나라가 되는 거지. 우리 한반도 모양이 토끼처럼 생긴 건 알지? 그래서 토끼들의 왕국을 만들려고 보지 못하게 할까? 안개의 나라에 오래 살다 보니 이렇게 별 쓸데없는 생각들만 자주 하게 되는구먼.

사람들이 보지 못해 귀가 커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귀가 커지면 더 많은 것을 듣고 싶어 하고 또 듣게 되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네. 그래서 생기는 게 이른바 ‘유언비어’이지. 유언비어(流言蜚語)가 뭔가? 아무 근거 없는 뜬소문이라는 뜻이네. 그럼 왜 근거 없는 뜬소문이 생기고 사람들이 그걸 믿게 될까? 사람들이 직접 보지 못하니 아무리 믿기 어려운 뜬소문이라고 해도 귀가 솔깃하게 되는 거지. 말길이 막히고 숨기는 것이 많을수록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유이네. 앞에서 말한 <산케이신문>의 보도 내용도 시중에 나도는 뜬소문을 짜깁기한 기사라고 하더군. 그래서 그냥 놔두면 사라지는 게 뜬소문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기사에 대한 청와대나 정부의 과잉반응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아서 걱정이네.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된 원인을 고칠 생각은 못하고 무조건 단속만 하려고 하니 급기야는 사이버 망명이라는 희한한 일도 생기고 있네. 안개를 걷어내야 하는데 더 짙게 만들고 있는 형국이지. 공적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국민들에게 더 투명해져야 유언비어가 줄어드는데 더 부옇게 색칠을 하고 있으니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사실 난 아직 <산케이신문>의 그 기사를 직접 읽어보지도 못했네. 유명인들의 스캔들 기사에는 별 흥미가 없거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썼기에 이렇게 국제적인 이슈가 되었는지 궁금해서 검색해보지 않을 수가 없구먼. 예전 우리가 대학 다닐 때 고속버스 안에서 함께 읽으며 시시덕거리던 엘로우 페이퍼 기사 수준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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