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최근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개헌을 위한 논의가 화두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혁신을 강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장 마지막에 있는 혁신인 개헌이 물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때문에 큰 그림을 그리는 대권주자부터 정치적 사명감으로, 혹은 시류에 편승하려는 정치인까지 모두 한발 담그는 분위기다.

특히 개헌논의가 불편할 수 있는 현 정부의 주류세력 조차도 “시기가 문제”라고 주장할 뿐 개헌논의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는 않다. 즉 정치권 모두 헌법 개정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87년 체제라고 불리는 현행 헌법은 그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 ‘독재’라는 악에 맞서 전 국민이 쟁취한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는 YS정부를 탄생시키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DJ정부에서는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숙제도 해결했다.

▲ 87년 체제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 여러 언론사들의 국회의원 여론조사 결과 93%의 의원들이 개헌을 찬성하는 등 여의도 정치권도 개헌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는 듯하다.
그러나 현재는 정치의식의 성숙과정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5년 단임제의 말기에는 반드시 ‘신세를 갚는다’는 의도로 낙하산 인사와 친인척 비리가 이어지는 등 책임정치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또 대통령 1인에게 막대한 권력이 주어지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대통령이 곧 나랏님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에도 충분했다.

여기에 승자독식 선거제도까지 겹치면서 49% 국민의 의사는 무시되어 다양한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려운 것도 맹점이다. 독재에 맞서 국민적 총의를 담아내기 위한 87년 체제가 이제는 수명을 다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DJ정부시절부터 정치권에서는 개헌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헌을 하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국회의원 2/3의 찬성과 국민투표라는 절차적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개헌에 대한 합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김대중 전 대통령부터 현 박근혜 대통령까지 모든 대통령들은 후보시절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음에도 결국 실패했다. 막상 집권을 하면, 초기에는 5년 단임제라는 시간적 제약으로 정치적 성과를 내야한다는 강박에 개헌 논의는 뒷전이었다. 집권말기에 이르러서는 차기 대선준비에 바쁜 대권주자들의 반대에 또 미뤄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개헌 역시 ‘찻잔 속 태풍’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적기다. 정치권은 1년 6개월동안 큰 선거가 없고 여야 모두미래권력이라 할만한 차기 대권후보가 정해지지 않았다. 비록 박 대통령이 “지금은 경제살리기에 전념할 때”라며 개헌 논의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지만, 세월호 참사로 국가혁신이 주요 과제로 오른 지금 명분도 적절하다.

한국 사회는 현재 ‘초 갈등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상태다. 지역갈등과 세대갈등, 이념갈등과 빈부갈등까지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87년의 선악구도에 머물러 상대편을 악으로 매도하는데 익숙할 뿐이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 통합과 혁신을 외친들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보다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더 많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고 합리적 대안으로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국가적 사명이요 미래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부 정치인들의 의지와 목소리로는 절대 이뤄질 수 없고 개헌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이번 개헌 논의가 대권 주자들의 담론 놀이터가 되거나 ‘찻잔 속 태풍’이 되어서는 안 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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