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모습. 대한민국의 안전시계는 여전히 이날에 멈춰 서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데자뷰’. 처음 보는 장면인데도 언젠가 보았던 것 같은, 혹은 겪었던 것 같은 착각, 그런 기분.

지난 1일 발생한 사조산업의 원양어선 침몰사고를 접한 기분을 단 세 글자로 표현한다면 꼭 그랬다. ‘데자뷰’. 사조산업의 원양어선 ‘501오룡호’가 러시아 베링해에서 침몰했다는 내용의 뉴스 속보를 보고 있으면서 마치 언젠가 본 듯한, 익숙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기억은 자연스럽게 ‘4월 16일’로 돌아갔다.

1일 러시아 베링해에서 발생한 사조산업의 원양어선 침몰사고는 지난 4월 16일을 연상케 한다. 그만큼 많은 것이 닮아있다. 물론 아직까지 사고에 대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들을 종합하면 ‘예상 밖의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부디 그것이 트라우마로 인한 선입견이길 간절히 바라지만,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고 있는 분위기다.

일단 사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정황들을 살펴보면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인다. 우선, 사고 당시 해역은 파도의 높이가 6m에 달하고 풍속도 25~30m/s에 달하는 등 기상여건이 ‘최악’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최대풍속 17m/s 이상을 ‘태풍’으로 부르는데, 이를 감안하면 이날 바람의 세기는 태풍 이상의 수준이었던 셈이다.

배가 기울기 시작해 완전히 침몰할 때까지 4시간 이상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지만 선원들은 대부분 구조되지 못했다. 퇴선명령이 제 때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골든타임’을 놓쳤을 가능성이 높다.

36년이나 된 선박을 ‘최악의 해역’으로 불리는 러시아 베링해로 내보낸 것도 사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조산업은 침몰한 501오룡호가 2003년 리빌트(개조)해 ‘새 배’나 다름없다고 하지만 여객선 면허의 선령 기준이 20년 이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걸 감안할 때, 오룡호는 장기 조업을 하기엔 너무 낡은 배다. 오히려 리빌트 과정에서 구조변경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로 인한 파공이 침몰의 원인이 된 것 아닌지 의심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결국 이번 사고는 ‘인재(人災)’일 가능성이 높다. ‘인재’는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와 달리, 충분히 예방하고 방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프다. 게다가 이번 사고는 모든 퍼즐이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다.

기상악화 상황에서의 출항, 무리한 선박개조, 노후한 선박, 놓쳐버린 골든타임, 그리고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들까지… 오룡호 침몰사고는 지난 4월 16일 그날과 꼭 닮아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은 ‘악몽의 데자뷰’라는 점에서 치명적이고 참담하다.

분명 우리는 지난 4월 16일 벌어진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개조’라는 말까지 언급하며 ‘안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자고 했다. 정부는 ‘국가안전처’라는 것도 만들며 국민들이 다시는 그런 아픔을 겪게 하지 않겠다고 강한 의지를 내보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나, 지난 12월 1일 사조산업 원양어선 침몰사고 때나, 심지어 지난 200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2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대형 사고를 잇달아 겪으면서도 당국이나 관련 부처는 조직적인 구조체계를 전혀 갖추지 못했고, ‘안전불감증’에 대한 우리들의 반성 역시 그 순간뿐이었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안전사회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지난 8월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들은  우리사회 안전의식을 100점 만점에 17점으로 평가했다.

또, 최근 통계청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가 불안하다고 느낀 응답자 비율이 2012년 37.3%에서 올해 50.9%로 껑충 뛰었다. 불안 요인으로 ‘인재’를 꼽은 사람이 21%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국가 안보와 자연재해 등이 꼽혔다. 미래도 어둡게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년이 지나도 안전에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0%에 달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번 오룡호 침몰 사고는 분명 세월호 참사와 닮아 있다. 과거의 잘못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비극은 되풀이된다. 고통은 커지고 미래는 없다. ‘안전’에 관한 대한민국의 시계는 ‘4월 16일’ 그날에 멈춰서 있는 것은 아닌지, 오룡호 침몰사고 사고는 우리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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