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매각조차 난항을 겪고 있는 대한전선이 이번엔 분식회계 적발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오너 일가의 ‘개인회사’가 이번 분식회계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욱 곱지 않다.

◇ 50년 흑자 이어온 탄탄한 회사, 10년 만에 와르르

▲ 대한전선.
대한전선은 한국 최초의 전선 생산업체로 지난 1955년 고(故) 설경동 창업주가 설립했다. 이후 고 설경동 창업주와 장남 고(故) 설원량 회장이 회사를 이끌면서 탄탄한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2009년까지 54년 동안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았을 정도다.

하지만 지난 2004년 고 설원량 회장이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면서 불운이 찾아왔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역점을 두고 시작했던 신사업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야할 시점에 수장을 잃고만 것이다.

이후 전문경영진 체제를 도입하고, 오너 3세 설윤석 전 사장이 어린 나이에 경영에 나서기도 했지만 10여년 만에 과거의 영광을 모두 지워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회사를 이끌던 전문경영인이 공금횡령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결국 꾸준함과 안정성을 자랑하던 대한전선은 회복이 어려운 상태가 됐고, 설윤석 전 사장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온 경영권을 지난해 10월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 대한전선 매각 작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마지막 뒷모습도 개운치 않은 대한전선 오너 일가

▲ 설윤석 전 대한전선 사장.
이런 상황에서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3일 ‘제22차 정례회의’를 통해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하고, 허위공시를 한 6개 회사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엔 대한전선 이름이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됐다.

대한전선은 지난 2011년과 2012년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한 매출채권을 회수가 가능한 것처럼 꾸며 매출을 부풀리고, 대손충당금을 과소계상해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을 부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재고자산의 평가손실도 실제보다 적게 잡았고, 증권신고서도 거짓으로 기재한 점도 적발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분식회계의 원인을 오너 일가 개인회사가 제공했다는 점이다.

그 회사는 다름 아닌 대한시스템즈다. 지분은 설윤석 전 사장이 53.77%를 보유 중이며, 설윤석 전 사장의 어머니와 누나가 각각 9.26%, 36.97%를 보유하고 있다. 설윤석 전 사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오너 일가 개인회사인 셈이다. 대한시스템즈는 과거 내부거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빈축을 샀던 곳이기도 하다.

대한전선 분식회계 내막에는 이 대한시스템즈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한시스템즈는 2011년과 2012년 대한전선을 상대로 수천억원 규모의 매출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워낙 재무상태가 좋지 않아 갚을 능력은 없었다. 당시는 설윤석 전 사장이 대한전선을 이끌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즉, 대한전선은 오너일가 개인회사에 내준 ‘빚’을 받지 못한 채, 분식회계로 ‘눈 가리고 아웅’을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 피해는 다른 투자자들에게 이어졌다.

증선위는 이번 분식회계와 관련해 대한전선에 20억원, 대표이사에 1,600만원의 과징금 및 해임권고 조치를 내리고, 담당 미등기 임원은 검찰에 고발했다. 아울러 대한전선은 향후 3년간 정부가 지정한 감사인으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 또한 대한전선을 감사한 안진회계법인도 향후 3년간 대한전선에 대한 감사 업무가 금지된다.

설윤석 전 사장은 지난해 경영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선대부터 일궈온 회사를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제가 떠나도 임직원 여러분이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보여준 역량과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50년 간 이어진 영광의 세월을 10여년 만에 무너뜨린 대한전선 오너 일가는 퇴장 이후에도 개운치 않은 오점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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