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 건물 옥상에 420톤 냉각시설 설치, 일부는 신고도 누락
정밀안전진단 결과 이상 無… 신고 의무 못 챙긴점은 아쉬워

▲ KT가 옥상에 불법 시설물을 설치해 안전 논란을 빚은 한솔필리아.
[시사위크=한수인 기자] 2014년은 유독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대형사고가 많았다. 2월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 중이던 리조트 강당 건물이 무너졌고, 4월엔 세월호 참사가 국민을 울렸다. 환풍구에 올라간 사람들이 추락해 숨지는 초유의 사고도 있었다.

이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충격적인 사고가 잇따르자 국민들의 불안감은 자연히 높아졌다. 언제 어디서 사고의 주인공이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고층 아파트 사이에 위치한 한 상가건물이 안전 논란에 휩싸였다.

소식이 전해진 것은 KBS의 단독보도를 통해서다. KBS는 지난달 28일 KT가 역삼동의 한 건물에 입주해 옥상에 420톤 규모의 시설물을 증설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입주민과 인근 주민들의 ‘붕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온라인상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보도를 통해 해당 건물의 벽면이 갈라진 모습 등이 전해지고, 삼풍백화점이 언급되면서 우려는 더욱 커졌다.

▲ 한솔필리아 주변에 부착된 현수막들.
◇ 평범한 상가건물에 무슨 일이?

기자는 지난 11일 직접 해당 건물을 방문했다. 역삼동에 위치한 한솔필리아다. 한솔필리아는 주변이 모두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인 5층짜리 상가건물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안전 논란에 휩싸였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무척 평범했다.

건물에 가까이 다가서자 여러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솔필리아 건물은 지난 8월 건축물 정밀안전진단결과 건물 사용에 안전하다는 진단 평가를 받았음을 알립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이 걸린 날짜는 지난 5일로, KBS 보도 이후 높아진 우려에 대한 해명으로 보였다.

▲ 한솔필리아 3~5층엔 KTsDSC가 입주해있다.
건물 안은 대체로 한산했다. 우선 이 건물 지하에는 대형마트가 있었고, 1~2층엔 여느 아파트 인근 상가처럼 각종 상점과 은행, 병원, 학원, 미용실, 헬스장 등이 입주해있었다. 건물 내부 곳곳에 위치한 게시판에는 ‘건물이 안전하다’는 내용의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허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하의 대형마트와 은행, 학원 등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대체로 휑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특히 각종 상점 등이 들어서 있는 건물 1층은 빈 공간도 많이 눈에 띄었다. 건물 안전에 대한 우려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 듯 했다.

실제로 이날 이 상가의 은행을 찾은 한 시민은 “건물이 안전하다고 공지했지만, 불안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은행을 안 올수도 없고 걱정이다. 특히 이 건물에 병원이나 학원 등 아이들이 이용하는 시설도 많아 주민들의 걱정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안전에는 이상 없다”

그렇다면 한솔필리아는 ‘붕괴 위험’을 걱정해야할 만큼 위태로운 상태인걸까. 만약 그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라면 당장 건물 출입을 막고 조치를 취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우선 한솔필리아는 지난 7~8월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한 결과 중대결함은 없었고, 안전성평가는 ‘A등급’, 상태평가와 종합평가는 ‘B등급’을 받았다. ‘B등급’은 경미한 손상 또는 결함이 있지만, 구조물의 내구성에는 문제가 없는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건물관계자에 따르면 한솔필리아는 당초 수영장 시설이 포함돼있었다. 그만큼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게 지어졌다는 것이다. 건물 관계자는 “건물 안전에 크게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불안감이 조성됐다. 보도에 나간 건물 균열은 외장재가 조금 갈라진 정도일 뿐이다”며 “정밀안전진단 결과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왔는데도 뉴스가 나간 이후 사람들 발길이 뚝 끊겼다. 입주자들의 불만과 원성이 엄청나다”고 토로했다.

강남구청 관계자 역시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건물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최소한 시민들의 우려대로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한솔필리아가 안전하다고 밝힌 강남구청의 공문.
그러면 왜 이런 논란과 우려가 발생한 것일까. 여기엔 KT의 작은 ‘실수’가 있었다.

한솔필리아 3~5층엔 KT의 자회사인 KTsDSC가 입주해있다. 그런데 통신설비가 많다보니 냉각시설 규모도 상당했다. 처음엔 245톤이었던 것이 2003년 65톤 증설됐고, 2007년엔 110톤이 추가로 설치됐다. 총 420톤 규모에 이른다.

문제는 지난 2007년 이뤄진 증설에 있다. KT는 당시 옥상에 냉각시설 110톤을 증설하면서 제대로 된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이 빌미가 돼 다른 입주자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복수의 건물 관계자에 따르면, KT가 고소를 당한 데에는 이 건물 입주자들 사이의 내부갈등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어 강남구청 역시 지난 4월 KT와 책임자에 대해 고발조치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양식을 갖춰 신고하도록 조치했다”며 “처벌이 내려지더라도 벌금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KT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냉각시설 설치를 담당한 시공사에서 신고절차까지 마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절차에 따라 신고를 마칠 예정이다”라고 해명했다.

결국 한솔필리아를 둘러싼 안전 논란은 작은 해프닝 수준으로 보인다. 하지만 7년 동안이나 신고 의무를 지키지 않고, 이로 인해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불안에 몰아넣은 KT는 꼼꼼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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