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제윤 금융위원장.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외환·하나은행 통합 절차가 노사 간의 갈등으로 파행을 빚고 있는 가운데,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금융위원회가 ‘오락가락 태도’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최근 외환-하나은행 통합 승인에 대한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렸다. ‘외환은행 노조의 합의’를 통합 승인 조건으로 내세워놓고, 노사 간 ‘합의 진통’이 길어지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입장을 선회한 것. 사실상 ‘노조 합의’ 없어도 승인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그동안 신 위원장은 하나금융지주가 2·17노사정 합의(5년간 독립경영 후 외환은행 통합 논의)를 깨고 ‘조기 통합’을 추진하는 것인 만큼, “노조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팽팽한 신경전 속에서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통합 논의를 위한 ‘대화기구 발족 합의문’의 세부 내용을 놓고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대화는 파행을 거듭했다. 특히 양측은 ‘외환은행 무기 계약직원’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입장차를 보였다.

이처럼 합의 절차가 길어지자, 금융위원회가 기존의 원칙을 깨고 태도를 바꾼 것이다. 합의 파행의 책임을 노조에게 떠넘기며, “노조가 통합 절차와 무관한 ‘정규직 전환’ 문제를 들고 나와 대화를 파행으로 이끌고 있다”는 식의 입장을 내보였다. 이는 그간 하나금융지주가 내세워온 주장과 같다. 

이처럼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지주의 편을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노사갈등은 더 극화되는 모습을 모양새다. 신 위원장의 오락가락 태도에 비판이 쏟아지자 금융당국은 “노조 합의 없는 승인은 확정된 게 없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러나 한쪽에게만 책임을 떠넘긴 듯한 금융위의 태도는 비난을 낳았다. 이에 대해 외환은행 노조는 “대화 파행의 근본 원인은 하나금융 경영진의 독단 경영과 불통에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 ‘외환은행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은 ‘노조의 일방적인 요구’라고 매도할 사안이 아니다. ‘새로운 요구사항’ 역시 아니다. 외환은행의 ‘무기계약직 정규직 6급 전환’은 노사가 2013년 10월 합의한 사항이다. 당초 작년 1월 시행하기로 약속이었으나, 사측이 이행을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임금 인상’ 등 세부조건의 내용을 두고 양쪽의 이견차가 심해 대화가 파행을 빚고 있지만, 노조가 정규직 전환 자체를 무리하게 요구했다고 보긴 어렵다. 은행 합병 이후 ‘인력 감축’ 등 구조조정이 이어질 여지가 높다는 점에서 외환은행 노조로선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제윤 위원장이 중심을 잃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노사간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불신만 날로 높였다. 외환은행 노조는 “사측이 노사합의 없이 통합승인을 진행할 경우 임단협을 통한 쟁의 행위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집회 등을 벌일 여지를 열어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금융권에선 신제윤 위원장의 리더십에 강한 의문을 보내고 있다. 작년 금융권이 KB 사태 등 대형 악재에서 휘청거릴 때에도 신 위원장은 오락가락 태도를 보여 빈축을 샀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내분 사태 관련 경영진의 징계 수위를 바꿔 혼란을 부채질했는 평가를 받았다. 

외환·하나은행 통합의 최종 키는 금융위원회가 쥐고 있다. 시간이 지연되고 있다고, 무조건 밑어붙이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다. 외환은행 노조와의 대화를 건너 뛰고, 통합을 하면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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