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 화상경마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마사회는 지난 23일 ‘용산 장외발매소(렛츠런CCC, 문화공감센터) 개장’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지난 22일 용산 장외발매소 개장식을 가졌으며, 6개 층(2~7층)의 문화센터에서 노래교실, 한국무용, 요가, 탁구교실 등의 문화강좌가 처음으로 진행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보도자료 내용 중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다.

「용산 렛츠런CCC 문화센터(2층∼7층)는 월∼일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문화강좌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금∼일 9개층(10∼18층, 총1,218석)은 쾌적하게 경마를 즐길 수 있는 장외발매소로 이용하게 된다.」

바로 이 부분이다. 마사회 측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총 9개층은 장외발매소, 즉 화상경마장으로 이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마사회 관계자 역시 보도자료 발표 직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당장 장외발매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 문제는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아직 어떠한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반대 주민과 마사회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서울시는 물론 국회에서도 개장에 반대하는 의견이 쏟아진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장외발매소로 이용하게 된다”고 당당히 밝힌 것이다. ‘지역 주민과의 합의를 거쳐’라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렇게 마사회는 용산 화상경마장 개장을 향한 ‘야욕’을 또 다시 드러냈다. 애초 계획보다 1년 넘게 개장이 미뤄지고 있으니 속이 탈 법도 하다. ‘포기를 모르는’ 마사회의 용산 화상경마장을 둘러싼 논란. 그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진단해본다.

◇ 주민 무시한 마사회, 주민 반발에 ‘쩔쩔’

▲ 용산 화상경마장 갈등 관련 주요 사건.
마사회가 용산 지역에 화상경마장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이다. 이 화상경마장은 용산역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규모와 시설에 부족함을 느낀 마사회는 2010년 새로운 건물 신축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현재 논란을 빚고 있는 용산 화상경마장 건물이다.

마사회는 당초 2013년 9월에 기존 용산 화상경마장을 이곳으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새로운 용산 화상경마장이 주택가, 특히 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마사회는 2014년 1월 재차 이전을 시도했으나, 이때부터 반대 주민들은 건물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마사회는 또 다시 개장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갈등이 빚어진 것은 2014년 6월이다. 마사회는 토요일이었던 6월 28일, ‘시범개장’이란 명목으로 용산 화상경마장을 기습 개장했다. 이날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제지로 경마객 대다수가 입장하지 못했지만 이튿날인 6월 29일엔 달랐다. 반대주민과 마사회 직원, 경마객, 그리고 경찰 등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됐다. 실신한 주민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긴박한 상황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이처럼 큰 충돌이 벌어지자 용산 화상경마장 문제는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 할 나위 없이 평온했던 용산의 주택가는 이렇듯 건물 하나 때문에 갈등으로 점철됐다. 마사회는 ‘영업 방해’라며 반대 주민들을 고소·고발했고, 이후 그 숫자는 22명까지 늘어났다.

마사회의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법원이 내놓은 화해권고는 ‘임시개장’이었다. 임시개장을 거쳐 이를 평가한 뒤 정식개장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마사회는 7월 중순부터 9월말까지 임시개장을 진행했고, 평가위원회를 구성했다.

하지만 마사회와 반대 주민 사이의 갈등은 좀처럼 봉합되지 않았다. 반대 주민들은 평가위원회에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고, 마사회는 임시개장 평가 결과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며 정식 개장을 향한 갈증을 드러냈다. 마사회는 ‘개장’, 반대 주민들은 ‘개장 불가’를 내세웠기 때문에 중간지점을 찾기도 어려웠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지적도 제기됐다. 마사회가 건물 신축 허가를 받을 당시 ‘화상경마장’이란 용도를 숨겼다는 것과 전과자를 경비원으로 배치하고, 그들을 ‘화상경마장 개장 찬성’ 집회에 동원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반대 주민과 시민단체 등은 이 문제를 정식으로 고소·고발했다. 특히 마사회는 경비원 문제와 관련해 최근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기도 했다.

반대 주민들의 목소리는 해를 넘겨서도 계속됐다. 지난해 연말 집회에 이어 지난 11일엔 기자회견과 108배를 갖는 등 개장을 막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 용산 화상경마장 앞에서 반대 집회 중인 주민들.
◇ 현명관 회장의 선택은?

2015년은 용산 화상경마장의 운명을 좌우할 가능성이 높은 해다. 마사회 입장에선 더 이상 개장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적잖은 비용을 들인 건물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으니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또한 갈등이 지속될수록 마사회의 이미지도 악화될 뿐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올해 안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좋다.

반면 반대 주민들은 주택가와 학교 근처에 화상경마장을 들일 수 없으며, ‘개장 불가’ 외에 다른 것은 필요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마사회의 일방적인 태도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입지 선정 단계에서 주민과의 협의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용도를 은폐해 일단 건물을 짓는 데만 집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용산 화상경마장은 두 차례 용도변경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으며, 주민들이 용산 화상경마장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건물이 다 지어질 무렵이었다.

▲ 용산 화상경마장이 기습 개장으로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던 지난해 7월 현장을 찾은 박원순 서울 시장(왼쪽)과 현명관 마사회 회장.
서울시와 정치권 역시 개장 반대에 무게를 싣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심각한 것은 물론 과정상에서도 적잖은 문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11월 “주민들이 반대하는 용산 화상경마장은 개장해선 안 된다”며 “만약 권한이 있었다면 진작에 폐쇄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다만, 마사회는 형식적인 절차는 모두 마쳐 놓았다. 임시개장 당시 개장을 위협할만한 심각한 사건·사고가 없었고, 유해성 관찰조사 결과 4.10점을 기록했다. 이 조사는 각종 안전과 교통 혼잡 등을 평가하는 것으로 1~9점 중 낮을수록 유해성이 적다는 의미이며, 보통 5점이 유해성 여부의 기준이 된다.

이처럼 나름의 ‘명분’을 갖춰 놓은 상황에서 현명관 마사회 회장이 힘을 쓰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현명관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의 일원으로 지난 2013년 12월 취임했다. 그런 그에게 용산 화상경마장 문제는 취임하자마자 들이닥친 골치 아픈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현명관 회장이 우호적인 정치세력의 지원 속에 연내 개장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마사회와 반대주민 사이에 작은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지난 13일 마사회는 고소·고발했던 주민 22명을 모두 취하했다고 밝혔다. 물론 지난 9일 있었던 경찰의 마사회 압수수색(경비업법 위반 관련)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지만, 대화를 위한 벽 하나가 해결된 것 또한 사실이다.

2015년, 용산 화상경마장의 운명은 어디로 향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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