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당초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인하를 발표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경기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기준금리를 0.25% 인하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당초 동결될 것이라는 예측을 깨고 사상 초유의 1%대 기준금리시대를 열었다. 내외경제지표의 악화에 마지막 카드까지 꺼낸 셈이다.

지난해 말 깜짝 상승세를 보였던 경제지표는 1월 답보상태를 보이더니 2월부터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해 12월 전년동기 대비 1.3% 올랐던 물가는 올해 1월 0.8% 상승에 그쳤고, 2월에는 0.7%로 더 악화됐다. 생활물가지수도 1월 -0.3%를 기록한데 이어 2월에는 -0.5%를 기록했다. 물가상승률 저하에 따라 산업생산과 설비투자가 모두 부진의 늪에 빠졌다. 이 같은 경제지표들을 종합하면 극도의 내수위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 내외경제지표 악화, 디플레이션 위기

대외적인 여건에서도 불황의 기류가 감지된다. 무역수지는 지난 2월까지 37개월 흑자를 이어갔지만 뜯어보면 상황이 좋지 않다. 흑자폭은 유지되고 있지만 상품 수출입이 모두 줄어드는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완만한 곡선으로 경제규모를 계속 확대해야 살아남는 자본주의에서 현상유지는 도태고 마이너스는 곧 위기다.

일본에서 시작해 유로존을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저금리 기조로 악화된 대외수출 환경이 그 원인이다. 특히 엔화와 유로화의 저공비행에 타격이 컸다. 달러강세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우리 입장에서 장단점이 모두 존재하지만, 엔화와 유로화는 다르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경제모델에 자동차·전자·석유화학 등 수출품목까지 다수가 겹친다. 무역비율이 9%나 차지하고 있는 유로존의 싼 유로화 정책은 한국 수출기업들의 수익률 감소를 강제했다.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무역수지와 전년동월비 물가상승률. 경상수지는 흑자규모는 유지되고 있지만, 수출입 현황을 보면 점차 작아지는 불황형 흑자다. 물가상승률도 전년대비 큰 상승을 보이지 못하는 등 극심한 내수부진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통계청>
결국 경제사령탑인 최경환 부총리가 ‘디플레이션’까지 언급하게 된 배경이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자였던 최 부총리는 막판까지 몰리자 임금인상과 금리인하라는 마지막 카드까지 꺼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금통위 회의에 앞서 금리인하를 강하게 주문하고 나서기도 했다.

예상을 깨고 금통위가 초유의 1%대 금리를 선택한 이유다. 이주열 총재는 “국내경제를 보면 수출이 감소하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경제주체들의 심리도 회복되지 못했고, 당초 전망했던 성장경로에서도 하회할 것으로 보인다”며 금리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물론 금리인하 카드가 경기회복의 만능열쇠는 아니다. 금리인하와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금리인하로 시장에 흐르는 자금이 자칫 부동산으로 흐를 경우, 전월세 가격을 크게 올려 소비진작 효과는 없고, 빈부격차만 늘릴 수 있다. 가뜩이나 지난해 4분기 1,000조를 넘어 1,100조 가까이로 추정되는 높은 가계부채는 금리인상 국면에서는 핵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세계의 촉각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의 입에 모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는 빠르면 6월, 늦어도 9월 정도로 관측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금리인하 결정에 대해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인하를 한 것으로 이해한다”면서도 “금리인하가 자칫 가계부채를 늘리거나 부동산으로 자금이 몰릴 경우, 서민의 주거난을 더 가중시킬 수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 연준에 쏠리는 전 세계의 이목

금리인하의 또 다른 변수는 자금 엑소더스(대탈출)다. 미국 기준금리와의 차이가 줄어들면서 한국에 투자된 외국자본의 이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만약 금리인하로 부채를 크게 늘려놓은 상황에서 외국자본의 급격한 이탈이 있다면, 이는 우리경제에 재앙일 수밖에 없다.

무제한 양적완화를 통해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던 일본은 물론이고 유로존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은 오는 17일(현지시간)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그 시기를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미 미국의 경제지표가 궤도에 오른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기정사실이다. 언제, 어떤 속도로 인상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연준이 금리의 ‘금’자만 꺼내도 세계 환율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연준은 ‘considerable(상당기간)’, ‘patient(인내심을 갖고)’ 등의 단어를 써가며 금리인상의 신호 강도를 점차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 총재 역시 연준의 금리인상을 가장 큰 위험요소로 파악했다. 그는 “중요한 변수는 연준의 금리인상이 언제, 어떤 속도로 이뤄질 지 여부다. 면밀히 보고 대응하겠다”며 “하반기에는 미국연준이 금리인상을 시작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세우고 대비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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