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민원 제기한 소액주주 및 삼성테크윈 사찰 정황 포착

▲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워있는 관계로 차기 삼성그룹을 이끌 이재용 부회장 체제에서 처음 열린 주주총회 날인 지난 13일 '삼성 사찰' 파문이 불거졌다.
[시사위크 = 이미정 기자]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주주총회가 열린 지난 13일 소음피해 민원인과 노조 간부를 사찰한 정황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앞서도 비슷한 사건이 불거졌던 만큼 조직 내 ‘사찰 문화’가 만연한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드리워지고 있다.

◇ 삼성물산 직원들, 일거수 일투족 감시해 정보 공유 

지난 13일은 삼성그룹 내 주력 계열사들이 일제히 정기주주총회를 열었던 날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재 속에서 열린 첫 주총이었던 만큼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런데 정작 이날 삼성 내에선 ‘글로벌 기업’의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각이 드러났다. 삼성물산 직원들이 각각 민원인과 삼성테크윈 노조원을 조직적으로 미행하고 감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지난 14일 <경향신문>은 이런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문자를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삼성물산 고객만족팀(CS) 직원들은 13일 주총에 참석할 예정인 소액주주인 강모 씨의 실시간 동태를 27명 직원이 모인 단체 카톡방에 올렸다. 서울 길음동 삼성래미안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강씨는 5년째 아파트 주차장 소음과 관련해 민원을 제기해온 인물이다. 

이날 삼성물산 직원들은 주요 동선에 배치돼 강씨의 집에 불이 켜진 시각, 강씨가 입은 옷, 이동 경로, 주총장 도착 예정시간 등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카톡방을 통해 정보를 공유했다.

주주총회가 열린 양재동 aT센터 인근에 강씨가 나타나자 자연스럽게 대기하던 직원이 강씨를 주총장으로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강씨가 “돌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지시도 주고받았다. 이 같은 조직적인 감시와 미행은 주총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이뿐만 아니라, 삼성테크윈 노조 간부를 사찰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날 삼성에스원 직원은 오전 7시 48분 카톡방에 “윤종균 삼성테크윈지회장 등 노조 간부 8명이 테크윈 주총 장소인 성남 상공회의소에 도착해 피켓 준비중”이라고 보고했다. 이후에 주총장 입실 등 상세한 동향도 카톡에 올렸다. 삼성테크윈지회 조합원들은 한화로의 매각에 반대하며 주총장 앞에서 1인 시위 등을 벌인 바 있다. 

논란이 커지자 삼성물산 측은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물산 측은 블로그를 통해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성물산 직원들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무엇보다 당사자 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즉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관련 임직원들에 대해 엄중한 조치를 취해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물산 측은 이번 사건이 회사 차원의 지시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지 않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어느 정도 ‘윗선’에서 관여를 했는지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확인 중에 있다”고만 말했다. 아울러 삼성에스원 측도 “사찰 파문과 관련이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에스원은 삼성물산과 포괄적인 경비 용역계약을 맺고 있다. 그래서 그쪽 요청에 의해서 주총 현장에 파견 나가 질서 유지, 안전관리, 보안 등의 업무를 제공했다”며 “이 과정에서 물산 측의 요청에 의해서 주총 현장 주변의 특이사항들을 공유한 것이지, 본사 차원에서 사찰이나 미행 등을 한 적은 절대 없었다”고 밝혔다.

그릇된 조직문화에서 벗어날 때

문제는 삼성의 사찰 파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2012년 삼성물산 감사팀 직원 4명은 대포폰과 렌터카를 이용해 CJ그룹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사실이 검찰 조사로 드러났다. 이외에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노조를 결성하려는 직원들을 사찰한다는 의혹도 수차례 제기돼왔다. 또 지난 2007년 삼성SDI가 노조 설립을 막으려고 직원들을 사찰한 문건이 지난달에 공개되기도 했다. 논란이 일 때마다 삼성 측은 엄중한 관리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계열사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경제시민단체에선 이번 문제가 결국엔 삼성그룹의 ‘구시대적인 조직 문화’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사찰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것은 삼성 내에 그릇된 과잉충성과 인센티브 문화가 여전히 만연하다는 증거”라며 “이번 일들을 그룹 차원에서 일일이 지시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실무자들이 문제가 안 생기게 알아서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직문화가 그만큼 왜곡돼있는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주주의 이익을 실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을 도모했을 때 성과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안 생기게만 관리했을 때 칭찬을 받는 성과구조가 박혀 있는 탓에 실무에서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이런 관행을 없애기 위해선 최고결정권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또 “왜곡된 구조는 실무자들이 바꿀 수 없다. 결국엔 최고결정권자의 의지만이 이를 바꿀 수 있다”며 “원칙에 어긋난 일을 했을 때 엄격하게 문책하고, 이를 계속 실천해 조직 문화에 이식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이는 삼성을 이끌어갈 이재용 부회장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지적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 체제 내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고속 성장했다. 하지만 눈부신 성장 속에서 온갖 불법과 편법 등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체제’를 준비하면서 격동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 속에서 처음으로 치뤄진 이번 주총에서 삼성은 사찰 파문으로 망신을 당했다. 첫 걸음부터 삐거덕거리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의 관행들로부터 벗어나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는 문화를 이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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