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표가 시작되자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자율권은 없었다. 지난 6월 서울대 특강에 나선 김무성 대표는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 다 똑똑하다. 그런데 배지만 달면 욕을 먹는다”며 당이라는 집단의 수직적 관계를 이유로 제시했다. 공천권을 가지고 의원 개인에 대한 자율권을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아주 타당한 분석이었다. 그런데 김무성 대표가 가장 우려하던 문제가 6일 벌어졌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는 다소 이례적인 모습이 연출됐다. 여당 소속의 국회의원이 본회의에는 출석한 채, 투표에는 아예 불참한 것. 이를 보고 정의화 국회의장 “정말 이례적이고 국회의장으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말할 정도였다.

◇ 새정치 “반대도 좋다, 투표하시라”, 새누리 “뭐하러 듣고 있어, 다 나가”

새누리당 의원들이 표결에 불참한 이유는 상정된 국회법 개정안 재의 투표 정족수를 미달시켜, ‘불성립’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법상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국회에서 재의결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 150명의 의원들이 투표해 3분의 2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 투표를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향해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앞서 새누리당에서는 표결에 참가해 모두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160석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모두 반대표를 던지면 부결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무기명 투표라는 점에서 혹시 모를 이탈표를 우려했던 김 대표와 새누리당 지도부는 결국 투표 불참을 선언했다. 다만 이날 본회의에서는 국회법 개정안뿐만 아니라 타 법안처리 문제도 남아있어 참석은 하되 투표는 하지 않는 기이한 결정을 하게 됐다.

국회법 재의 투표 전까지 자리를 꽉 채웠던 새누리당 의원들은 투표가 시작되고 다수는 자리를 이탈하거나 투표가 끝날 때까지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등 시간을 보냈다. 이를 보다 못한 야당의원들은 친분이 있는 여당의원들을 찾아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평소 소신발언을 했던 이재오 의원 중심으로 이언주·인재근 의원이 접근해 설득했으나, 결국 이재오 의원의 투표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다른 쪽에서는 이종걸 원내대표 등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공개적인 투표독려가 이어지자, 한선교 의원이 큰 소리로 “여기서 뭐해, 다들 나가”라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세연·하태경 의원 등 새누리당 소신파 의원들에게도 투표설득이 이어졌으나, 이들은 끝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 6일 국회 본회의장에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 상정으로 많은 취재진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러나 이날 방청객석에는 취재진 외에도 민주정치를 배우고자 관람 온 여학생들과 대학생들도 있었다.
◇ 대학생 방청객 “오더가 내려온 것인가요?”

새정치연합은 일부 투표를 마치지 못한 의원들의 투표를 지연시키며 투표시간 연장을 노렸으나, 결국 정의화 의장은 의사봉을 두드리며 ‘불성립’을 확정지었다. 마지막 유효투표수는 정족수에서 20표 모자란 130표 였다. 의원들의 소신투표를 막은 새누리당의 사실상 승리였다.

한편 이날 국회 본회의장에는 언론 외에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바로 단체관람을 온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2학기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모의국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회를 직접 눈으로 관찰하기 위해 찾아온 서강대학교 학생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눈에 투표를 거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은 어떻게 비춰졌을까. 한 학생은 “오더가 내려온 것이냐. 당이라는 것이 정말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똑똑한 의원들이고 당연히 소신투표를 할 줄 알았는데”라고 정당정치에 의문을 표시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이런 일이 흔하냐”고 반문하면서 “단편적인 뉴스로 봤을 때는 잘 몰랐는데, 우리나라의 정당정치가 이런 식인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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