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와 자금흐름을 엄밀히 살펴보겠다고 나섰다. 롯데가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정부가 사정의 칼을 빼든 모양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롯데가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베일에 쌓여있는 롯데의 지배구조를 낱낱이 파헤치겠다는 방침이다. 정치권에서는 상법을 개정해 해외법인을 이용한 상호순환출자에 제약을 가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6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국내 5대 그룹인 롯데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 정부가 이번 롯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롯데그룹의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자금흐름을 관계기관이 엄밀히 살펴볼 방침”이라고 강도 높은 사정 의지를 밝혔다.

이에 앞서 새누리당에서는 김정훈 정책위의장을 중심으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살펴보고 위법사항이 있다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새정치연합에서는 이번 기회에 상법을 개정해 해외법인을 이용한 상호출자에 제한을 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려 416개의 계열사를 이용한 롯데그룹의 상호출자에 일본 등 해외법인이 이용됐을 거라는 심증이 작용한 결과다.

◇ 롯데가 경영권 분쟁 압박하는 정부와 정치권 ‘왜’

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롯데그룹의 홍보기획을 주로 맡아온 계열사 대홍기획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에 정부와 정치권이 개입해 대대적인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롯데그룹에 대한 이 같은 압박 이면에는 이번 사건이 국내 재벌구조의 전반적인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하반기 박근혜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는 노동개혁이다. 그러나 롯데사태 장기화될 경우 노동개혁의 동력은 상실되고, 오히려 재벌개혁의 목소리가 탄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번 신동빈·신동주 경영권 분쟁에서 롯데그룹의 상호순환출자 기업이 416개에 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내 상호출자기업이 450개 수준인데 90%가 롯데그룹이었던 셈이다. 또 신격호 총괄회장이 고작 0.05%의 지분을 가지고 법적 절차도 무시한 채 롯데그룹 전체를 좌지우지 했다는 이른바 ‘황제경영’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민여론은 더욱 싸늘해지는 분위기다.

같은 유통업계는 물론이고 재계 전체가 이번 롯데사태를 불편하게 보는 이유다. 경제재도약을 위해 재계의 도움이 필수적인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도 사태 장기화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전방위적인 사정을 통해 국민여론을 달래고, 분쟁의 조기종결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섰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롯데그룹에 대한 사정이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재벌구조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아닌 조기종결에 급급해 변죽만 울리는 ‘여론몰이’ 사정에 그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한·일 양국에 걸쳐있는 롯데가의 화려한 정관계 인맥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신격호 회장이 일본에서 롯데그룹을 일궈낸 배경에는 유력 정관계 인사와의 친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인맥의 중요성을 신 회장이 잘 알고 있는 만큼, 롯데가의 한일 양국에 걸친 혼맥은 화려했다.
◇ 한일 양국에 걸친 롯데가의 화려한 인맥, ‘용두사미’ 사정 우려

실제 신격호 회장이 롯데그룹을 일구는 데는 한일 양국에 걸친 정관계 인맥이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신 회장의 부인이 일본 내 전범가문 출신이라는 논란은 둘째 치고라도, 신 회장 본인이 기시 노부스케나 후쿠다, 나카소네 전 일본총리 등 일본의 유력 보수정치인과 절친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센징’이라는 굴레에도 일본에서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신동빈 회장의 부인인 오고 미나미 여사도 일본에서 대단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미나미 여사는 일본 최대 건설회사 중 하나인 다이세이건설 오고 요시마사 회장의 딸로 한 때 일본왕가의 며느리감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신동빈 회장의 결혼식에는 나카소네 등 전·현직 일본 총리들이 주례와 축사를 하는 등 화려함 그 자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공개되지 않은 일본 기업들에 대한 조사가 쉽지 않을 것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롯데가의 국내인맥도 만만치 않다.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고 신철호 씨의 자녀들은 주로 법조계 인사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조용완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사위로 맞았고,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의 이혼소송을 맡아 화제가 됐던 정승원 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도 신철호 씨의 며느리다.

신 회장의 또 다른 동생이자 일본 산사스 식품을 맡고 있는 신선호 사장의 장녀 신유나 씨의 남편은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이다. 신 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정숙 씨는 최현열 전 NK회장과 결혼했고, 신씨의 두 딸은 한진그룹·KCC와 각각 인연을 맺었다.

신 회장과 형제간 분쟁으로 현재는 완전한 분리를 이룬 상태지만, 뿌리가 같은 농심과 푸르밀까지 포함하면 롯데가의 정재계 인맥은 더 넓어진다. 농심은 아모레퍼시픽 등과 혼맥을 맺고 있으며, 친박계 핵심인사로 청와대 정무특보를 역임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은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사위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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