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철단익강(鐵鍛益强). 지난해 이맘때 고재호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새해를 맞아 내건 기치다.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엔 불황에 대한 위기의식과 함께, 그런 위기 속에서도 수주목표를 달성한 데 따른 무언의 자신감이 담겨있었다.

그럴만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149억달러를 수주하며 조선 3사 중 유일하게 수주목표를 달성했다. 조선업계에 심각한 불황이 불어 닥친 후 최고 실적이었다. 특히 2014년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과 비교되며 대우조선해양의 실적은 더욱 빛났다.

그로부터 1년. 고재호 전 사장은 완전히 대우조선해양을 떠났다. 퇴직 임원이 의례 맡곤 하는 고문직에서조차 물러났다. 그리고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의 현대중공업보다 더 큰 적자를 기록하며 침몰 직전의 위기에 내몰려있다. 불과 1년 만에 180도 달라진 상황이다.

◇ 사장 바뀐 대우조선해양, ‘견실→적자덩어리’ 급반전

다시 1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고재호 전 사장을 둘러싼 최대 이슈는 ‘연임 여부’였다. 2012년 취임한 고재호 전 사장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상황은 묘하게 흘러갔다. 먼저 고재호 전 사장은 여러모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업계가 위기에 빠진 가운데서도 수주목표를 초과달성했고, 노사관계도 원만한 편이었다. 실적과 리더십 모두 연임에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고재호 전 사장의 연임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종후보군엔 올랐지만 다른 모든 후보와 함께 부적격 처리됐다. 결국 후임 사장 인선이 미뤄지면서 고재호 전 사장의 임기도 2개월 연기됐고, 4월이 돼서야 정성립 사장이 내정됐다.

문제는 그 이후다. 9년 만에 대우조선해양으로 돌아온 정성립 사장의 행보엔 사뭇 긴장감이 묻어났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실적 초과달성을 기뻐했던 대우조선해양이지만 정성립 사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정성립 사장은 정식 취임 한 달 전부터 분주한 행보를 보였다. 물론 이는 그간의 수장 공백 사태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대우조선해양에서는 우려스러운 이야기들이 하나 둘 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심각한 부실이 방치돼있었고,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정성립 사장은 그동안 방치됐던 손실과 부실을 탈탈 털었다. 이에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2분기 3조원이 넘는 영업손실과 2조3,000억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현대중공업의 2014년 어닝쇼크보다 더욱 충격적인 실적이었다. 폭발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3분기에는 1조4,000억원대 영업손실과 1조6.000억원대 당기순손실을 거뒀다. 2분기 만에 쌓인 손실이 수 조원에 달한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실적이 나오진 않았지만 4분기 역시 크게 다르진 않을 전망이다.

▲ 대우조선해양. <사진=시사위크>
◇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 “고재호 전 사장 조사해 달라”

2015년 1월과 6월. 대우조선해양은 6개월 만에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됐다.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실적을 달성한 회사에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방치해온 회사, 적자투성이 회사로 전락했다.

두 시기의 차이점은 사장이다. 고재호 전 사장이 떠나고 정성립 사장이 취임하자 ‘실적 좋은 회사’가 ‘적자 회사’로 급변했다. 실제로는 거꾸로다. 회사는 그대로였다. 새로운 사장이 손실을 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손실과 부실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바뀐 것은 사장이다. 고재호 전 사장은 손실에 눈을 감았지만, 정성립 사장은 손실을 끄집어냈다.

때문에 고재호 전 사장은 ‘연임’을 목적으로 손실을 방치하고, 실적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퇴직금으로 수십 억원을 챙기고, 수익이 쏠쏠한 고문역까지 차지했던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적자로 여론이 악화되자 고문역에서 물러나야 했다. 지난해 국감에서도 고의적인 부실 은폐 여부에 대한 질문과 질타가 쏟아졌다.

고재호 전 사장의 답변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을 파악하지 못했으며, 연임을 목적으로 회계에 간섭한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마어마한 적자의 규모를 감안하면, 수장으로서 이를 몰랐다는 입장을 이해하긴 어렵다.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심각한 능력 부족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고재호 전 사장을 둘러싼 의혹은 법적으로 가려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우조선해양 감사위원회는 최근 창원지검에 고재호 전 사장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감사위원회는 사외이사 4명으로 구성돼있으며, 여기엔 경영학 교수와 국회의원을 지낸 법조계 전문가도 포함돼있다.

검찰은 진정서 내용을 검토한 뒤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관계자는 “부실 발생 원인이 고재호 전 사장에 있다기보단, 천문학적으로 쌓인 손실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겉으로는 견실해보였고, 실적 초과달성을 강조했던 대우조선해양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적자를 품고 있었다. 특히 시기적으로도 석연치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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