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위안부 관련 한일합의에 항의하며 일본을 찾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25일, 스스로 거동조차 쉽지 않은 두 할머니가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여든 아홉과 아흔에 달하는 나이에도 두 할머니의 얼굴에선 절실함과 단호함, 그리고 결연한 의지가 고스란히 피어났다.

두 할머니는 강일출, 이옥선 할머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죄 하나로 참혹한 만행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고작 10대 중반의 나이에 겪은 일이었다.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인생의 한 페이지다.

두 할머니는 빼앗겼던 나라를 다시 되찾았다. 그리고 그 나라는 할머니들이 치욕을 겪어야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행복하지 않다. 아니, 불행하다. 범죄를 저지른 일본은 줄곧 할머니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고, 우리 정부 역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할머니들이 고령의 나이에 무리를 하면서까지 일본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해 말 이뤄진 위안부 관련 한일합의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할머니들은 ‘적당한 말’과 ‘돈’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진상 규명에 따른 범죄행위 인정과 법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두 할머니가 고령의 몸을 이끌고 일본으로 향한 그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에 대한 2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뇌물 공여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정준양 전 회장은 이날 출석하지 않았다. 그리곤 1차 공판준비기일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향한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정준양 전 회장과 함께 기소된 핵심인물은 이명박 정권의 ‘실세’였던 이상득 전 의원이다. 검찰은 정준양 전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에게 고도제한 문제 해결을 청탁하고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수사를 결론짓고 이들을 기소했다.

특히 뇌물의 경로로 지목되는 수법이 아주 교묘하다. 과거처럼 돈상자를 건네는 방식을 한참 뛰어넘는다. 포스코를 움직일 수 있게 된 정준양 전 회장이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이다.

또한 정준양 전 회장은 포스코를 통해 부실기업을 평가금액보다 2배 높은 가격에 사들인 배임 혐의도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포스코가 부실기업을 사들인 대상 역시 이상득 전 의원의 최측근이라는 것이다.

사실, ‘포스코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는 개운치 않게 끝났다. 수사가 진척되는 듯 하다가도 보이지 않는 벽이 등장하곤 했다. 마치 영화처럼 말이다. 그래서 세간의 시선은 더 냉정하다. 전형적인 정권유착형 비리로 바라보고 있다.

▲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사진=뉴시스>
◇ 포스코, 민족기업이라 불리는 이유

두 가지 다른 이야기를 통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포스코가 마땅히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감, 그리고 그것을 잊은 정준양 전 회장의 태도다.

포스코가 설립된 것은 1968년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며 일본으로부터 받은 식민 피해 보상금이 포스코 설립의 기반이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더 나아가 우리 국민들은 또 하나의 상처를 입어야 했다. 식민지 시절 우리가 받았던 막대한 피해가 너무도 허술한 절차와 금액으로 ‘해결’됐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시급한 시대이긴 했지만, 우리가 겪은 온갖 고초와 남은 상처를 생각하면 아쉬움이 짙게 남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 선택의 주체가 포스코인 것은 아니다. 또한 포스코는 설립 이후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포스코 설립 근간에 우리 민족의 고통과 눈물이 깃들어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포스코엔 그 어떤 기업보다 엄격한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설립배경은 물론이고, 국내 경제계에서의 입지와 영향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철강업계, 더 나아가 경제계의 맏형으로서 경제발전을 이끄는 것이 역사적 책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준양 전 회장이 연루된 비리 사건을 바라보면 더욱 씁쓸하다. 정준양 전 회장의 재임기간, 다시 말해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지목된 기간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시기이자 철강업계의 위기가 임박한 시기였다. 그 시기를 현명하게 보내지 못한 포스코는 지난해 역사상 첫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피해를 상징하는 위안부 할머니들은 또 다시 분노하고 있고, 그 피해의 대가를 바탕으로 세워진 포스코는 검은 비리와 적자 위기에 휩싸여있다. 2016년 우리가 사는 곳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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