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제주공항에 발생한 사상초유의 대혼란은 저가항공사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 사진은 25일 낮 12시 제주공항 항공기 운항이 사흘만에 재개된다는 소식을 들은 승객들로 공항 대합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시사위크=조지윤 기자] 최근 제주공항에 발생한 사상초유의 대혼란은 저가항공사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됐다.

지난해 말 제주항공, 진에어 등 저가항공사들은 잇따라 항공기 결함이 발견되며 안전문제가 불거졌다. 이런 가운데 제주공항 사태로 저가항공사들의 대응 시스템 부재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승승장구하던 저가항공사들은 위기를 맞게 됐다.

◇ 저가항공사 측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찾겠다”

지난 23일 제주공항은 폭설과 강풍으로 활주로 운영이 중단돼 오후 5시 50분부터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됐다. 항공기 이착륙이 통제되면서 제주에 발이 묶인 체류객은 당시 공항공사 추산 23일 2만여명, 24일 4만여명, 25일 2만9,000여명 등 총 8만9,000여명에 달했다.

제주시내 숙소가 모자라 수천명의 체류객이 공항 대합실에서 종이상자를 깔고 잠을 청하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제주공항은 흡사 난민수용소와도 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25일 정오부터 제주공항의 운항제한이 해제되면서 각 항공사들은 임시편을 투입하고 가능한 빠른 시간에 체류객들을 목적지로 이동시키기 위해 방편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저가항공사들의 부실한 대응 시스템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제주항공과 진에어, 티웨이항공 등 대부분의 저가항공사들은 승객들에게 ‘대기표’를 발급해 불편을 키웠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들 저가항공사는 창구에 먼저 나온 승객들의 순서대로 탑승 대기표를 나눠줬고, 오랜 시간 기다림에 지친 승객들이 대기표를 먼저 받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면서 줄이 공항 밖으로까지 이어지는 등 혼란이 초래됐다.

반면 대형항공사인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예약 순서에 따라 남는 좌석을 자동배정하고 탑승 3시간 전에 문자로 승객에게 공지해 안내했다. 이에 두 항공사의 승객들은 대기표를 받기 위해 발권 창구 앞에서 마냥 기다리는 불편을 크게 겪지 않았다.

▲ 각 저가항공사의 항공기 모습.
이미 저가항공사들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기체 결함으로 인한 항공편 지연 논란 등 몸살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발생한 제주항공 급강하 사고와 진에어 출입문 고장 등이 모두 인재로 밝혀지면서, 현재 저가항공사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들 사고 원인에 대해 조종사와 정비사의 과실로 판단했고, 이들 항공사에 ▲최대 운항정지 7일 ▲또는 과징금 6억원 ▲조종사와 정비사에게 자격정지 최대 30일 처분을 내릴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이날 국토부는 앞으로 저가항공사들이 안전운항을 위한 조종사 인력과 대체기를 충분히 갖추지 않으면 운수권 배분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저가항공사에 대한 불시 현장 안전감독을 강화하고 안전도 평가 결과를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다.

제주항공과 진에어는 29일 안전조치 강화 방안을 내놨다. 제주항공은 3월까지 200억원을 투자해 항공기 예비엔진 2대를 구매하고 올 하반기 150억원을 투자해 조종사 모의훈련장치를 직접 구매해 운용한다고 밝혔다. 진에어는 지난해 60억원 규모였던 안전 관련 투자비용을 올해 100억원 이상으로 늘리고 안전 시스템 정비, 교육·훈련 강화, 안전 조직 강화 등에 배정키로 했다.

출범 이후 지난 10년간 저가항공사는 급격히 성장해왔다. 28일 국토부는 지난해 저가항공사의 여객은 총 2,425만9,000여명이라며, 올해는 3,000만명을 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국제여객과 국내여객의 수송 분담률 모두 전년 대비 증가했고, 국내선에서는 이미 2014년 50%를 넘게 됐다.

비교적 저렴한 항공요금과 파격적인 할인 이벤트 등은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각각의 저가항공사들이 벌인 폭탄세일 이벤트에는 수많은 접속자가 몰려 홈페이지가 마비되는 소동까지 빈번히 벌어져왔다.

하지만 부실한 안전관리 논란과 매뉴얼 부재가 계속된다면 저가항공사를 즐겨 이용했던 승객들조차 외면하게 될 것이라는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모 저가항공사 측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대기표를 발급하는 시스템은 사실 저가항공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항공사들이 해온 시스템”이라며 “대기표 시스템자체가 (요새 언급되는 것처럼) 굉장히 잘못된 시스템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일반적인 지연 상황이었다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제주공항 사태가 며칠에 걸친 대혼란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이번 사태와 같은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대기표 시스템이 아닌 보다 적절한 시스템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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