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민주를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한 현역 17명 가운데 11명의 지역구가 바로 호남이다. 이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당내 신인들은 안철수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제 호남에서는 큰 흐름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자신감은 넘쳤다. 정동영 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상임고문의 합류로 광주·전남에 이어 전북까지 주도권을 잡게 됐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공천이다. 호남이 다른 지역보다 높은 당 지지율을 보이는 데다 현역 의원들에 대한 물갈이 요구가 큰 만큼 당내 호남 지역 출마를 준비하는 예비후보들이 상당수다. 실제 21일 마감한 공천 신청에서 야권의 심장부인 광주는 3.5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북과 전남에서도 각각 3.45대 1과 3.27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공천을 둘러싼 호남 지역의 총성 없는 경쟁이 시작됐다.

◇ 천정배의 현역 컷오프 시사에 반발 “공천 발언 신중해 달라”

현 상황으로선 현역 의원들의 타격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를 탈당하고 국민의당에 합류한 현역 17명 가운데 11명의 지역구가 바로 호남이다. 이들의 아성에 도전하는 당내 신인들은 안철수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로 알려졌다. 더욱이 안철수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을 이끌고 있는 천정배 공동대표는 ‘뉴DJ론’을 설파한 데 이어 현역 컷오프를 시사하면서 호남의 현역 의원들의 반발을 샀다. 이들의 항의는 지난 17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첫 의원총회에서 터져 나왔다.

이날 주승용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천정배 대표에게 “당의 대표이면서 광주에 지역구를 갖고 있는 의원이기 때문에 광주에 내려가서 언론인과 접촉하는 과정에 있어 신중히 말씀해주셔야 한다”고 지적한 사실을 밝혔다. 일부 의원들은 “잘못된 말씀이 많은 분에게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본인이 어떤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씀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요구에 천정배 대표는 수긍했다는 후문이다.

▲ 안철수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과 당내 경선을 벌여야 하는 호남 현역 의원들로선 부담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공천 혁신과 물갈이를 명분으로 측근 인사들이 전진 배치된 게 아니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공천 과정에서 갈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안철수 대표가 측근들을 직접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안철수 대표는 경기도 군포에 출사표를 던진 정기남 예비후보 사무실을 찾아 “제가 신세를 갚아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이외에도 경기도 남양주을 표철수, 서울 관악을 박왕규 예비후보의 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했다. 안철수 대표는 표철수 후보를 향해 “존경하는 선배”라고 말했고, 박왕규 후보에겐 “의리의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세 사람 모두 2012년 대선 당시 이른바 ‘진심 캠프’에서 안철수 대표를 도왔다.

안철수 대표가 움직이면서 그의 측근들과 경합을 펼쳐야 할 호남 현역들로선 부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당장 김동철(광주 광산갑)·장병완(광주 남구)·김승남(전남 고흥·보성)·임내현(광주 북구을) 의원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 현역 대항마로 떠오른 ‘진심 캠프’ 출신… 사당화 논란 여전

김동철 의원은 진심 캠프에서 기획팀장을 지낸 김경록 당 대변인과 경선을 치러야 한다. 당에서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장병완 의원은 안철수 대표의 수석보좌관 출신 서정성 전 광주시의원, ‘안철수와 함께하는 광주전남시민정책포럼’ 소속 정진욱 새정치경제아카데미원장과 맞붙게 됐다. 김승남 의원은 진심 캠프에서 대외협력위원을 지낸 김철근 전략홍보본부 부본부장이 대항마로 나섰다. 임내현 의원은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과 경합이 예고됐다. 그는 김대중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박선숙 사무총장과 가깝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 안팎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이번 총선에서 공천 혁신을 명분으로 현역 의원들을 물갈이하기 위해 안철수 대표가 자신의 측근들을 전진 배치한 게 아니냐는 것. ‘안철수 사당화’ 논란이 끊이질 않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향후 공천 시행세칙이 마련되고 공천 절차에 돌입하게 되면 당이 중대 고비를 맞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최악의 경우 현역 의원들이 탈당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얘기다. 당내 고민이 적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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