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러방지법 처리로 제2의 사이버망명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7일 기준 텔레그램은 앱스토어 인기차트 5위에 랭크되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좌진들이 앞다퉈 가입하는 등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이른바 ‘제 2의 사이버 망명’ 사태가 발발하고 있다.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개인들이 국가의 감청우려가 있는 카카오톡을 피해 안전한 텔레그램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정부여당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의 민간인 사찰 우려 때문이다. 테러예방을 위한 입법이 엉뚱하게 IT업계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실제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기자들 사이에서는 테러방지법이 통과한 지난 4일 이후 ‘00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자주 받는다. 정보유출에 민감한 기자들은 물론이고 정치권 관계자들의 가입이 부쩍 늘었다. 이 가운에는 야당 보좌진들 뿐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여당 보좌진들도 있다.

◇ 테러방지법 처리, 제2의 텔레그램 망명사태 촉발로 IT업계 불똥

나아가 테러방지법이 촉발한 사이버 망명사태는 민간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7일 기준 텔레그램은 앱스토어 인기리스트 5위에 올라있다.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으로는 1위다. 플레이스토어에서도 22위를 기록,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관련 앱을 제외하면 8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정부여당과 국정원이 거듭 “민간인 사찰은 없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대다수 이용자들은 이를 믿지 않는 눈치다.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이주가 이뤄지면서 카카오톡과 라인 등 국내 업체들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물론 눈에 직접 보이는 타격은 없으나, 이 같은 이용자 엑소더스(대탈출)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경우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앞서 2014년 수사기관의 ‘사이버검열’ 논란으로 제1차 사이버 망명사태 당시, 이석우 다음카카오 의장이 “더이상 수사기관의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테러를 방지하겠다고 내놓은 법이 국내 IT기업들의 목줄을 움켜진 셈이 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정부여당의 규제입법이 IT업계 발전에 직격탄이 된 것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시행된 게임 ‘셧다운제’가 거론된다.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시간 게임을 제한하는 제도다.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PC온라인 게임이나 오프라인 게임 등에 적용되며, 모바일 게임은 산업발전을 위해 일단 유예했다.

좋은 입법취지였으나 게임 셧다운제가 IT업계에 미친 악영향은 작지 않았다. 한국경제연구소(한경연)가 2월 발표한 게임 사업체 및 종사자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2009년 3만개를 넘어섰던 업체 수는 2014년 1만4,440개로 반토막 났다. 업계 종사자 역시 줄어드는 양상이다. 한경연은 가장 큰 원인이 게임을 일종의 ‘중독’으로 파악한 셧다운제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 이명박 정부 당시 시행된 게임 셧다운제로 게임산업계는 직격타를 맞았다. <데이터=한국경제연구원>
◇ 정부규제로 IT업계 고사직전, 사회적 경제적 파장 고려한 입법 필요

국내 업체들이 주춤한 사이 빈 자리는 외국산 게임이 채웠다. 과거 국내산 게임들을 복사하는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 업체들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셧다운제 이후 국내 게임계는 중견 게임업체 등 허리가 무너지고, 급속도로 부익부빈익빈 구조로 전환됐다는 분석이다. 벤처창업과 일자리 창출의 산실이었던 IT업계가 정부여당발 입법으로 한 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셧다운제에 대한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지난달 19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부모요청시 셧다운제를 배제하거나, 보드게임의 월 결제한도를 상향하는 규제완화안을 발표했다. 게임 셧다운제의 문제점을 자인한 셈이다. 그러나 뒤늦은 규제완화가 게임 및 IT업계를 과연 되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PC방 전면금연을 규정한 국민건강증진법도 IT업계에 직격탄이 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간한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PC방 금연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4년 PC방 매출은 -26%로 급감했다. 2015년에도 역시 -20% 축소했고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물론 피시방이 이른바 ‘게임폐인양산’과 ‘흡연조장’ 등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시방 문화가 국내 게임산업 중흥기를 이끌었고 IT발전을 견인해온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피시방은 프렌차이즈 가맹없이도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서민들의 영역이었다. 정부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서민 자영업자들에게 큰 피해로 돌아간 셈이다.

때문에 정부여당의 입법, 특히 정부의 감시와 규제가 들어가는 입법에는 더욱 신중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테러를 예방할 목적, 국민과 청소년의 중독예방 등 모든 입법의 목적은 타당하지만, 사회적 혹은 경제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이번 테러방지법이 촉발한 제2의 사이버 망명사태를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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