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은 입법 지연에 대한 손실을 근거로 사실상 ‘야당심판론’을 제기했으나,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참패로 정권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국민의 선택은 현명했다. 20대 국회에서 180석을 넘보던 집권여당의 오만함에 회초리를 들었고, 제1야당의 침몰을 막으면서도 제2야당에게 힘을 실어 견제를 지켰다. 그 결과,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형성됐다. 4·13 총선에서 122석을 차지한 새누리당은 원내 1당의 자리마저 더불어민주당에게 내줬다. 더민주는 123석을 확보했다. 창당 두 달 만에 선거를 치른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어 캐스팅보트를 쥐었다. 이외 정의당과 무소속은 각각 6석, 11석을 얻었다. 과반 확보에 실패한 새누리당은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 친박계, 무릎까지 꿇었지만 대통령 레임덕 막지 못해

임기 1년8개월을 남겨둔 박근혜 대통령으로선 최악의 상황이다. 이번 총선이 사실상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 강한 만큼 새누리당의 참패는 곧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로 해석됐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공천을 앞둔 지난해 말부터 선거에 개입해왔다. 공식석상에서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말하며 친박계의 ‘진박 마케팅’에 빌미를 제공했다. 정치권에선 김무성 대표의 ‘옥새투쟁’으로 비화된 대구지역의 공천 파동에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봤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일하는 국회’를 내세워 입법 지연에 대한 손실을 야당 탓으로 주장해왔다. 선거 전날인 12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도 “북핵 문제와 대내외적인 경제여건 악화를 비롯해 우리가 당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에 매진하는 새로운 국회가 탄생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선거 당일엔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재킷을 입고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 선택은 엄중했다. 정부여당의 ‘야당심판론’이 아닌 야당의 ‘정권심판론’을 택한 것. 무엇보다 기존 여권 지지층이 등을 돌리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레임덕을 예고했다. 이는 투표율 수치에서도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지역 투표율은 54.8%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여권의 텃밭으로 불리는 부산(55.4%), 경북(56.7%), 경남(57.0%)도 전국 평균 투표율 58.0%를 넘기지 못했다. 친박계가 무릎까지 꿇으며 “박근혜 대통령을 도와 달라”고 읍소했지만, 이탈된 여권 지지층의 마음을 되돌릴 순 없었다.

▲ 청와대는 새누리당의 참패에 대해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며 기존과 같은 입장을 내놨다. <사진=뉴시스>
이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구상에 차질을 빚게 됐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은 불투명해졌고, 노동관계 4법과 서비스발전기본법 등 쟁점 법안 및 노동·금융·공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잃었다. 뿐만 아니다. 여당이 공약으로 내세운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은 제동이 거릴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산업금융채권과 주택담보대출증권을 직접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야당은 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 뒤숭숭한 청와대, ‘일하는 국회’ 기존 입장 되풀이

‘경제민주화’를 주창하고 있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14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경제실패 책임을 준엄하게 심판했다”면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는 투표로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총알보다 강한 투표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며 기존과 같은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청와대 분위기는 종일 뒤숭숭하다. 정국 수습 차원의 참모진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게 내부의 공통된 판단이다. 당장 정무라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새누리당 의석수를 145석 가량으로 예상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데 대한 문책이다. 일각에선 현기환 정무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이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힌데 이어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도 자리에서 물러설 뜻을 주변에 밝혔다는 후문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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