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당권을 놓고 당내 친노 진영이 ‘김종인 역할론’에 힘을 실으면서 ‘친노 세력화’가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또 다시 ‘친노 딜레마’에 빠졌다.

여야 모두 20대 총선 이후 차기 당권을 놓고 물밑 신경전이 한창인 가운데, 더민주에서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거취가 논란의 핵심이다. 일각에서는 ‘김종인 합의추대’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일궈낸 배경에 김 대표의 공이 컸다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이같은 ‘김종인 역할론’이 역설적이게도 친노 진영에서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인 대표는 더민주에 입당하면서부터 친노패권 문화를 수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

범친노계로 꼽히는 박범계 더민주 의원은 21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김 대표가 우리 당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기업의 구조조정이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 경쟁력이 만만치 않다고 본다”면서 김종인 대표의 역할론에 힘을 실었다. 박 의원은 이어 “김종인 대표가 경선 출마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고 권유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대표는 영입인사 출신으로 당내 세력이 없는 만큼 당 대표 경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낮다. ‘합의추대’가 논의된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당내 다수인 친노 세력이 김 대표를 지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박범계 의원은 이어 “(김종인 대표의 당내) 뿌리가 약하다는 것은 기성 관념”이라며 김 대표가 경선에서도 얼마든지 경쟁력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친노계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김종인 대표 체제가 대선 때까지 이어지는 게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당의 외연 확장 가능성을 넓히는 동시에 ‘경제정당’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친노가 목소리를 높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총선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가 ‘호남 참패’라는 결과를 받아든 이유가 친노·친문으로 분류되는 계파 패권의식에 있었다는 해석이 이를 뒷받침한다. 더민주가 원내 1당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새누리당 내분에 따른 반사이익 때문이지 당내 계파 청산에 성공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앞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더민주를 탈당하고 야권이 분열한 데에도 당내 패권주의가 작용했다는 평이 많았다. 이후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 대표를 당시 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한 것도 이런 당 체질을 개선하겠다는 인식에서부터였다.

그러나 친노 세력은 여전히 야권의 기득권으로 건재했다. 더민주가 국민의당에게 호남 1당의 자리를 내주고 호남 민심 잡기에 실패한 배경이다. 때문에 친노가 ‘김종인 역할론’을 중심으로 다시 세력화에 나서는 것이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할 우려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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