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구조조정’을 전면에 내걸면서 재계는 물론이고 정치권의 이목이 더민주에 집중되고 있다. 김 대표의 ‘아젠다 리더십’이 진가를 발휘했다는 평이 뒤따른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60년 야당사에서 보기드문 일이다. 여당보다 앞서 야당에서 ‘경제’를 말하기 시작했다. 특히 20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 자리를 꿰찬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제 프레임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 많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구조조정’을 전면에 내걸면서 더민주는 본격적인 ‘경제정당’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했다.

그동안 ‘프레임 전쟁’은 언제나 여당에 승리를 안겼다. 여당은 선거때마다 명료한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애국보수 대 종북좌파’, ‘경제 살리는 여당 대 발목 잡는 야당’ 프레임은 뚜렷한 대립 구도를 만들었다. 여당이 만든 프레임에 휘둘리기 바빴던 야당은 선거에서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내걸었던 ‘일하는 국회’ 역시 ‘경제’를 내세워 ‘반대만 하는 야당’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꾸려지게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총선 민심은 정부·여당을 심판했다. 경제를 심판해달라는 민심을 확인한 야당은 일제히 ‘경제 프레임’ 선점에 앞장섰다. ‘반대만 하던’ 야당에서 정책을 주도하는 야당으로 탈바꿈에 나선 것이다.

◇ 김종인의 ‘아젠다 리더십’… 새누리 제치고 경제 주도권 잡기

그 중심에는 김종인 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도 그간의 정부 정책과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이는 향후 경제정책과 관련해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선거는 ‘프레임 싸움’이다.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가 제1당으로 올라선 데에는 ‘경제 이슈’ 선점이 결정적이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공천 파동’으로 인해 상당수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반사이익을 본 측면도 없지 않지만, 공허한 심판론만으로는 1당을 얻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김종인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 민주화’가 더해지면서 더민주는 ‘대안정당’으로서의 이미지 부각에 성공했다.

김종인 대표의 이런 ‘아젠다 세팅’ 능력은 당내에서도 인정받는 모양새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게 된 이철희 당선자는 더민주가 김 대표 체제로 들어서면서 뿌리 깊은 계파 갈등에서 벗어나 ‘경제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당선자는 총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종인 대표의 강점은 정치적 리더십이 아니라 ‘아젠다 리더십’”이라고 김 대표를 평했다. 아울러 김 대표의 ‘경제민주화’는 현 정부에 대한 심판론일 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캐스팅 보트’ 자처하던 국민의당… ‘제3당 존재감’ 어디로?

더민주의 ‘태세 전환’으로 야당발 구조조정에는 가속이 붙었다. 정부가 해운분야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속도를 높이면서 조선과 철강 등 나머지 취약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 밑그림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권의 이목까지 집중시키면서 국민의당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졌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 대표는 김종인 대표의 구조조정 발언 직후 “미시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거시적 관점에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큰 틀에서 구조조정에 동의하는 셈이다. 국민의당이 내놓은 경제공약도 대부분 더민주와 대동소이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눈에 띄는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편, 김종인 대표는 안철수 대표의 구조개혁 발언과 관련해 “그 사람이 말한 구조개혁이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구조조정은 강도의 높고 얕음이 있을 수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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