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총선에서 3당 자리를 꿰찬 국민의당이 연정론을 거듭 제기하면서 ‘캐스팅보트’로서의 입지 굳히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연정론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본말전도.’ 20대 국회의 원 구성 협상도 이뤄지기 전에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된 ‘연립정부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총선이 치러진 지 한 달도 안 돼 국민의당이 들고 나온 연정론에 정치권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 ‘호남 자민련’ 아니라더니… 연정은 ‘양날의 칼’

국민의당은 연정론에 연일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국민의당은 ‘연정상대’를 따로 정해놓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입장이다. 이상돈 전 국민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정권에서 연정을 제안해야 한다”며 현 내각에 야당 인사들이 참여하는 형태를 제안했고, 같은 당 주승용 의원도 “유럽에서는 연합정부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도 그런 것(연립정부)을 전향적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박지원 원내대표까지 “대통령이 요청한다면 새누리당 국회의장 선출에 협력할 수 있다”고 거들면서 연정론에 더욱 힘이 실렸다. 과거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의 DJP 연대를 직접 겪은 그가 국민의당 원내대표에 추대되면서 정계 개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연정론의 근간에는 국민의당의 정치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중심제를 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연립정부가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청와대도 연정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국민의당이 연정론 카드를 꺼내드는 것은 ‘몸값 높이기’를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총선으로 38석을 얻은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 요건은 채웠지만, 독자적인 법안처리를 하는 등 실질적인 실력행사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신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2당인 새누리당 모두 과반이 넘지 않아 국민의당의 도움이 절실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연정론은 실현 가능성을 떠나 캐스팅보트로서 실리를 챙기고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정치적 포석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국민의당이 더민주와 새누리당 사이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사이, 당 정체성에는 금이 가고 있다는 점이다. 호남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제3당으로 도약한 국민의당이 호남 민심을 차기 국회에서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은 뒤로 하고 존재감 부각시키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새천년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손을 잡고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당시 김대중 새천년국민회의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총리에 임명하는 이른바 DJP 연합이 꾸려진 것. 1여2야 구도로 쉽지 않은 싸움을 준비하던 김대중 총재는 자민련과의 연대에 힘입어 15대 대선에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진보 성향인 새천년국민회의와 보수 성향인 자민련의 ‘동거’는 오래가지 않았다. 16대 총선에서 자민련의 의석이 17석에 그치면서 DJP 연합은 파경을 맞았다. 이후 ‘충청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은 한나라당에 흡수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다 할 ‘정체성’이 없었던 정당의 한계였다.

당시 DJP 연합을 두고 ‘대권을 위한 정치공학적인 이합집산’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이는 국민의당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체성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사안에 따라 이익만 좇는 국민의당의 최근 행보에서 자민련이 연상된다는 일각의 비판을 새겨들어야 할 이유다.

연정은 ‘양날의 칼’이다. 지금은 국민의당이 칼자루를 쥐고 있지만, 오히려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총선 민심이 내년 대선까지 이어지리란 보장도 없다. 당의 근간까지 흔들릴 공산도 크다.

일단 국민의당은 연정론으로 ‘정치판 흔들기’에 성공했다. 차기 대통령이 어느 당에서 나와도 여소야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연정론은 내년 대선까지 꺼지지 않는 불씨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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