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 체어맨 W 카이저(왼쪽)와 현대차 아슬란이 기대만큼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요즘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신차’다. 신차는 늘 주목을 받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혜성처럼 등장해 쌍용자동차에 ‘봄’을 가져온 티볼리다. 올해는 SM6와 올 뉴 말리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모든 신차가 잘 나가는 것은 아니다.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다 슬그머니 종적을 감추는 신차도 있다. 그중 안타까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게 쌍용차의 ‘체어맨 W 카이저’와 현대자동차의 ‘아슬란’이다.

◇ 쌍용차의 고육지책 “안 통하네”

쌍용차 체어맨 W 카이저는 엄밀히 말해 ‘신차’라고 하긴 어렵다. 기존의 체어맨 W를 부분적으로 변경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내·외부에 한층 고급스러운 소재와 디자인을 적용했고, 다양한 편의사양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나 풀체인지는 아니다.

쌍용차가 체어맨 W 카이저에 건 기대는 신차만큼 컸다.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라는 이름을 붙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실 쌍용차에게 ‘체어맨’이란 존재는 이중적인 측면이 있다. 먼저 ‘자존심’이다. RV계열에 주력하고 있는 쌍용차의 유일한 세단 모델이자 ‘국산 플래그십’ ‘회장님 차’의 원조다. 현대차 에쿠스보다 먼저 태어났고, 한때 연간 1만대를 훌쩍 넘는 실적을 기록하며 위상을 자랑했다.

▲ 체어맨 W 카이저 출시 효과는 미미하다. <쌍용차 제공>
하지만 쌍용차가 경영 위기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는 사이, 너무 ‘올드한’ 차가 됐다. 신형 모델을 내놓을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지금의 체어맨 W는 지난 2008년 선보인 2세대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이후 조금씩의 변화는 있었지만, ‘풀체인지’ ‘3세대’ ‘신형’ 등의 수식어를 붙일 만한 변화는 없었다. 어느덧 그 세월이 8년이다.

이런 상황에서 쌍용차가 지난 2월 체어맨 W 카이저를 내놓은 까닭은 ‘라이벌’ 현대차 에쿠스의 등장도 상당 부분 작용했다. 현대차가 지난해 론칭한 고급화 브랜드 ‘제네시스’는 첫 주자로 에쿠스를 계승한 ‘EQ900’을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가격이 상당한 최고급 차량임에도, 사전계약 첫날에만 4000대가 넘는 실적을 기록했다.

쌍용차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 하지만 쌍용차에겐 이에 맞서 신형 모델을 내놓을 여력이 없었다. 이러한 복잡한 속사정 속에 탄생한 것이 바로 체어맨 W 카이저다.

체어맨 W 카이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차가 출시된 2월 이후 월간판매량은 2월 65대, 3월 126대, 4월 103대, 5월 74대로 평균 100대에도 미치지 못한다. 같은 시기 제네시스 EQ900이 월 3000대 안팎의 견고한 판매량을 기록한 것과 비교해 초라한 성적표다.

◇ 현대차의 골칫거리 아슬란

제네시스 EQ900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미소 짓고 있는 현대차도 아슬란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야심차게 아슬란을 출시했다. 중·대형 세단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현대차의 자신감이 묻어나는 행보였다. 현대차는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아슬란을 투입하며 기업들의 ‘임원 차량’ 시장 공략과 다른 차량과의 시너지효과 등을 노렸다.

하지만 헛된 기대였다. 아슬란은 그랜저와 제네시스 사이에 끼어 전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출시 첫 달인 2014년 11월 1320대가 아슬란의 최대 월간판매 기록이다. 이후 아슬란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포기하지 않았다. 파격적인 가격 혜택과 적극적인 마케팅에 이어 지난해 12월엔 ‘2016년형 아슬란’까지 출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아슬란의 행보는 이러한 노력을 무색하게 만든다. 아슬란은 1월 266대, 2월 151대, 3월 168대, 4월 176대, 5월 176대로 이젠 월 200대 조차 넘기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회생을 기대하기 힘든 처지다.

▲ 아슬란은 2014년 11월 출시 이후 줄곧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시사위크>
◇ 팔리지는 않고, 거둘 수도 없고

이처럼 나란히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체어맨 W 카이저와 아슬란. 둘은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까지 닮았다.

우선 쌍용차는 티볼리의 흥행 덕에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체어맨의 풀체인지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렇다고 자존심이 걸린 체어맨을 놓아버릴 수도 없다. 현대차 역시 아슬란의 실패를 인정하기 쉽지 않다. 아슬란의 현 상황은 출시 전부터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로 이어진 것이지만, 당시 현대차는 이를 일축하며 자신감을 나타낸 바 있다.

쌍용차 관계자는 “현재로선 체어맨 풀체인지 모델 출시에 대해 계획하고 있는 것이 없다”며 “다만, 체어맨이라는 브랜드는 계속해서 가지고 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슬란 판매 증가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아슬란의 단종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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