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서울 삼청동길을 걷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여혐’(여성혐오)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가운데 삼성물산이 여직원 차별로 구설에 올랐다. 육아휴직을 희망하는 여직원에게 부당한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강요한 것으로 밝혀져서다.

◇ 출산휴가 갔다 오니 인사평가 ‘최하위’

지난 14일 ‘JTBC’ 단독 보도를 통해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했던 한 여직원의 사연이 알려졌다. 주인공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에 재직 중인 조모씨. 출산이 임박한 조씨는 잠시 일을 쉬기로 하고 육아휴직 신청서를 받아들었다.

신청서를 받아든 조씨는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육아휴직을 위해선 앞으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휴직으로 인해 발생하는 인사상의 불이익에 대해 어떤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서약서에 동의할 것을 요구했다.

지난 2014년 한 차례 육아휴직을 사용했던 조씨는 그해 인사평가에서 최하위를(5등급)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시를 제외하면 조씨는 매년 2등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보였다.

조씨의 법률대리인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문제의 소지가 담긴 서약서를 강요했다는 것 자체가 여직원에 대한 불이익이며, 실제로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하향고과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의 이 같은 조치는 “사업주는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남녀 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 지원법’에 위배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지난 5월 말경 삭제한 상태”라며 “조씨에 대한 인사고과는 평가자와 사내 기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 앞에서는 ‘여성우대’, 뒤에서는 ‘불이익’

‘육아휴직 서약서’ 논란에 휩싸인 삼성물산은 그간 보수적인 국내 기업들 가운데 ‘여성복지가 잘된’ 기업 중 하나로 꼽혀왔다.

삼성물산은 임산부를 대상으로 모성보호실 운영·휴일근무 제한·근로시간 단축·태아검진 휴가 등 국내에서는 다소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하며 “여성친화경영을 선도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삼성물산은 ‘남초’ 업종인 건설업 가운데서도 여성 직원의 수가 가장 많은 기업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삼성물산은 여성 정규직의 비중이 13%를 차지하며 국내 주요 10대 건설사 중 1위에 올랐다. 국내 10대 건설사들의 정규직 여직원 비중은 8%에 불과하다.

여성친화 기업 이미지를 쌓아온 삼성물산은 이번 육아휴직자에 차별 논란으로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전망이다.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굴지의 대기업에서 서약서까지 받아가며 명백히 불법으로 규정된 육아휴직자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삼성물산 외에도 육아휴직 복직자에게 최하위 고과를 부여하는 상담 사례가 많은 게 국내 기업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많은 기업들이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과 육아가 여자들만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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