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멕시코를 방문해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60억 인구의 얼굴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은 고유의 필체를 갖는다. 전문가의 필적대조 감정결과는 법적증거로 채택될 정도다. 그만큼 손 글씨는 개인마다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각양각색인 필체에는 그 사람의 성격과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다. 그래서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필적학’이라는 학문영역도 존재한다.

한자문화권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서체’라는 개념이 비교적 현대에 도입된 서구와 달리, 한자문화권에서는 다양한 서체를 개발하고 발전시켜왔다. 예로부터 서예가 고상함과 교양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등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이유다. 글의 모양을 통해서 자신의 기상이나 성격, 느낌을 표현하거나 또 받아들이는 데 보다 익숙하다는 얘기다. 부모님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글씨 또박또박 쓰라’고 타박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 각양각색 필체, 성격과 심리 그대로 반영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역대 대통령들 역시 문화의 선도자로서 명필이 많았다. 유학을 공부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군인 출신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서예를 공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명필로 꼽힌다.

▲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자필로 작성한 방명록.
꼭 붓글씨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에게 좋은 글씨는 중요한 덕목이다. 외교문서에 서명을 하거나, 특정 장소에 방문했을 때 방명록을 자필로 글을 남기는 일은 기본이다. 또한 후보시절에는 저서나 옷 등에 친필사인을 함으로서 지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유력 정치인의 친필사인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요 기제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짧은 글에 담긴 내용도 중요하지만, 글씨체 자제에서 오는 느낌도 중요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차기 대권주자들의 자필글씨는 어떤 특징을 담고 있고,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또한 자필에서 드러나는 성격도 궁금한 대목이다. 이희일 국제법과학감정연구소장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글씨크기에 따라 외향적 성격과 내향적 성격이 나뉜다. 글자모양이 대체적으로 곡선형이라면 사교적이고 친절한 성격으로 판단하고, 각이 정확한 필체를 가진 사람은 다소 냉정하지만 참을성이 강한 성격으로 풀이한다. 또한 글을 쓸 때 힘을 주는 정도에 따라 이성적인지 사교적인지를 나누기도 한다.

◇ 글씨크기·모양·필압이 일반적인 판단 기준

이런 기준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글자는 세 사람 가운데 비교적 글자크기가 큰 축에 속했다. 자음이 다소 곡선형태를 띄고 있는 것과 달리, 가로세로 획들은 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는 게 특징이다. 사교적인 면이 있는 반면, 단호함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전 대표의 자필서명은 누리꾼들 사이 일명 ‘철수체’라고 명명될 만큼 유명하다. 흘림이나 멋스러움을 따로 강조한 부분 없이 정자체로 쓴 것이 특징이다. 전체적으로 둥근 글씨체로 담백한 느낌을 주지만, 문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단호함도 엿보인다. 일부 누리꾼은 ‘디지털 시대의 상징’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실제 의사출신의 안 전 대표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세 사람 가운데 글자크기가 가장 작은 축에 속했다. 글씨를 작게 쓰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겸손함과 자기절제가 뛰어나다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반 총장의 글자 역시 정자체로 쓰였고, 가로세로 획이 대체적으로 곧게 뻗어 있다는 평가다. 물론 사람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거나 단적으로 나눌 수 없듯이 필체를 가지고 성격을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더구나 방명록이라는 짧은 글로 특징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 소장은 “방명록이라는 것은 공개되고 보여지는 글이다. 방송에 나갈 때 분장을 하고 좋은 면을 보여주려 하지 않느냐. 세 분 모두 정자체로 어떤 측면에서는 비슷한 필체들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공개될 것을 감안하고 작성한 글에서는 자신의 평소 필체나 습관이 잘 나오지 않는다. 평소 메모장 같은 데에 쓴 글자를 보면 보다 분명한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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